[이미영 기자]군 수사 축소 및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불법 변경 의혹을 받는 김관진 전 장관에 대한 두 번째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김 전 장관에게 적용된 혐의는 2013년에서 2014년 사이에 국군 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의혹 관련 수사가 축소되도록 국방부 조사본부에 지시한 혐의다. 김 전 장관은 사이버사 여론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한 차례 구속됐으나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석방됐다.

앞서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은 지난 2009년 합참의장을 마치고 떠난 미국 연수 시절 미국 대형 로비업체 직원에게서 억대 상당의 금품을 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지난달 28일 KBS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09년 8월 주미무관보좌관이 작성한 기무사 보고서에는 ‘재미교포 권모씨’가 김 전 실장에게 8만 달러(1억원 상당)를 전달한 로비 정황을 포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같은 정황은 국군기무사령부 보고서에서도 확인됐다.

그러나 무기사업과 관련해 그 중심에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김관진 전 국가안보실장이 있다는 의혹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이번에 밝혀진 김 전 장관의 '1억원 수수' 의혹은 단군 이래 최대 사업으로 불리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 선정 과정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의혹과 함께 '빙산비리'의 일각이 드러났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그런만큼 당시 차세대 전투기가 선정되는 과정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미주신문 선데이저널에 따르면 김관진 전 장관이 MB 정권하에 국가안보실장으로 재직하던 때  공군은 이명박 정권 때부터 차기 전투기 KF-X 사업을 추진해왔는데, 정권 말 사업을 계약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차원에서 사업을 박근혜 정권으로 넘겼다. 공군은 당초 미국 록히드 마틴의 F-35A가 아니라 보잉의 F-15SE를 염두에 두고 사업을 추진했었다. 2013년 9월까지만 하더라도 F-X의 단독 후보는 보잉의 F-15SE였다.

가격 입찰 결과 F-15SE가 유일하게 총 사업비 8조 3000억 원을 맞출 수 있었고, 이에 따라 2013년 9월24일 김관진 당시 국방장관 주재로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에는 ‘F-15SE 차기 전투기 기종 선정안’이 안건으로 상정됐다. 그런데 방위사업추진위는 북한의 비대칭 전력과 안보상황, 세계 항공기술 발전 추세 등을 감안했다며 F-15SE안을 부결했다.

이어 군 수뇌부가 노골적으로 F-X 기종으로 스텔스 기능이 뛰어난 F-35A가 적격이라는 논리를 펼치더니, 이듬해 3월 24일 방위사업추진위는 F-X 기종으로 F-35A를 낙점했다. 김관진 전 장관은 그날 방위사업추진위에서 “(F-35A 결정에) 정무적 판단을 해야 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전투기를 고르는 데 전혀 필요 없는 정무적 판단이 F-X 기종 선정에 결정적이었다는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멀쩡하게 방위사업청의 평가를 단독으로 통과하고 국회가 사실상 동의한 안이 정무적 판단에 따라 백지화됐다. 예산을 초과하는 초고가 F-35A를 선택한 탓에 도입 대수는 계획했던 60대에서 40대로 줄었다. 무기를 사면서 손바닥 뒤집듯 결정을 번복하고 도입 대수를 대폭 축소한 사례는 F-X 사업이 유일했다.

총 사업비가 8조 원대이고, 도입 이후 유지보수에 그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사상 최대의 무기 도입 사업이 이렇게 파행을 겪었다. 게다가 록히드마틴은 전투기 핵심 기술 4가지를 한국에 이전하는 것조차 거부했다. 보잉 측은 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결국 한국형 전투기 KF-X 사업 핵심기술 이전도 백지화됐다.

F-X 사업 때 록히드 마틴의 경쟁사였던 유로파이터의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은 완전한 기술 이전을 약속했고, F-15SE의 보잉은 핵심기술을 해외에서 사서라도 주겠다고 우리 측에 약속한 바 있다. 록히드 마틴은 애초에 핵심기술 이전을 하지 못한다고 선언한 터라 F-35A를 골랐다는 것은 핵심기술을 포기한다는 뜻이었다.

핵심기술을 받을 생각이 있었다면 록히드 마틴을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지만 이 과정에서 또 최순실이 우병우와 김기춘을 앞세워 수백억원의 커미션을 챙기기 위해 깊숙이 개입 압력을 행사한 정황도 포착됐다.

 
2015년 10월 한국형 전투기 KF-X 핵심기술 이전 거부 사태가 터지자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진상파악을 위한 조사에 착수했다. 우병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으로 있을 때였다. 국방부와 방위사업청의 항공기 사업 관계자들을 두루 불러들여 핵심기술 이전이 안 되는 이유를 캤을 텐데 조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민정수석실은 당연히 KF-X 기술 이전 거부 파문의 전말을 알기 위해 어떤 정무적 판단으로 록히드 마틴의 F-35A를 선정했는지를 조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민정수석실은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역시 우병우 전 수석의 힘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박근혜 정권은 방위사업비리 수사 후 방산비리를 예방한다는 의미에서 방위사업청 내부에 방위사업감독관실을 신설했으나 무늬만 감독관실이지 실상은 이를 합법화시키기 위한 기구였다. 2015년 12월 방위사업감독관실이 신설되는 과정에서 한국형전투기 사업자체에 무리가 있다고 반대했던 고위 공무원 2명을 강제로 퇴직시키는 일도 벌어지기도 했었다.

방사청이 “당시 방사청장이 민정수석실에 인사재고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고위직 2명이 나간 자리에 앉은 인물이 바로 우 전 수석 라인의 인물이었다. 조상준 방위사업감독관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2부 부장검사 출신으로 우 전 수석이 대구지검 특수부장이었던 시절 평검사로 함께 일한 경력이 있어 ‘우병우 라인’으로 분류된다.

그는 방위사업감독관실 설치 직후인 2016년 1월 중순 방위사업청으로 파견됐고, 4월 감독관실이 공식 출범하면서 감독관(국장급)에 정식 임용됐다. 조 감독관은 임용 후 매주 수요일, 방사청장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업무 내용을 보고했다고 한다. 통상 방위사업청 보고, 또는 업무 공조 등은 외교안보수석실이나 국방비서관실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국내 방위사업 전반을 감독하는 방위사업감독관이 이례적으로 업무와 특별히 관계가 없는 민정수석실에, 그것도 청장에게도 알리지 않고 업무 내용을 보고해 왔다는 것이다. 사전 내부 보고나 허가 없이 외부 기관에 보고하는 것은 방사청 내부 규정 위반으로 징계사유에 해당된다.

문제는 조 감독관이 민정수석실을 드나들던 때가 F-X사업으로 논란이 한참이었던 시점이라는 것. 우 전 수석은 조 감독관에게 관련 사업에 대한 내용을 꾸준히 보고받았으나 결국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우 전 수석이 F-X사업을 뭉갰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최순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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