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으로 출근을 하고 있다.
[김홍배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13일 "(김 원장의 국회의원 시절 의혹 중) 하나라도 위법사실이 있으면 해임하겠다"는 공식입장을 서면으로 표명한 직후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입을 꾹 다물었다.

야당의 갖가지 의혹제기와 사퇴압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버티던 김 원장은 여론이 악화됨은 물론 그 화살이 청와대까지 향하자 태도를 바꾼 것으로 풀이된다.

공교롭게(?) 이날 선관위의 적법성 판단과 별개로 김 원장을 향한 검찰의 수사도 시작됐다.

서울남부지검 형사6부(김종오 부장검사)는 서울 한국거래소 사무실과 우리은행 본점, 더미래연구소, 세종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 수색했다. 모두 김 원장이 국회의원 재직 당시 해외 출장을 지원한 기관이다. 검찰은 김 원장과 피감기관 사이 대가 관계, 직무 관련성 등을 회계 및 증빙 자료 등을 통해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 원장은 1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투자협회에서 자산 운용사 대표와 간담회를 한 후 오후에는 금감원 서울 본원 집무실에서 보고를 받는 등 꿋꿋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14일 금감원에 따르면 다음주에도 외부 행사 등 업무 일정이 이미 잡혀 있다.  김 원장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저축은행중앙회에서 저축은행 최고 경영자(CEO)와 간담회를 할 계획이다. 오는 17일에는 오전 금감원 정례 임원 회의를 소화한 직후 베트남 재무부 장관과 비공개 면담하기로 했다. 18일 오후에도 금융위원회 정례 회의 참석이 예정돼 있다.

그동안 김 원장은 논란을 '회피'하기보다 '정면돌파'를 택했다. 야당에서 의혹을 제기할 때마다 해명자료를 배포해 반박했다. '포스코지원 해외연수'와 '국가보훈처 국외출장', '더좋은미래 추가후원' 등 여러 의혹에 대해 모두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반박했다.

출·퇴근길이나 공식일정에서 만난 취재진의 질문에도 하나하나 모두 답했다. 조현문 전 효성그룹 부사장에게 받은 후원금에 대한 의혹 등도 해명했다.

이 같은 해명에 그치지 않고 김 원장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는 "외유성 출장은 아니었다"고 선을 긋는 한편 "국민 눈높이에서 지적받을 소지가 있다는 점에 대해 죄송하다"며 사과할 부분은 사과하기도 했다.

업무와 관련해서도 지난 11일 오전에 열린 간부회의에서 금감원 경영 전반에 대한 혁신을 추진하겠다며 TF(태스크포스)를 꾸리고 개혁의지를 밝혔다. 같은 날 삼성증권 사태에서 촉발된 우리사주조합 배당시스템 문제점을 캐내기 위해 15개 상장 증권사 시스템 자체점검도 본격화했다. 그 전날에는 신한금융 채용비리 의혹 관련 조사에 착수할 것도 지시했다.

심지어 그 와중에 정계를 중심으로 김 원장이 사퇴를 고심한다거나 사퇴서를 쓰고 있다는 말이 돌았지만, 이런 소문이 무색할 정도로 그는 예정했던 공식일정을 모두 차질없이 수행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김 원장을 두고 야당 공세에 떠밀려 쉽사리 사퇴의지를 밝히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김 원장의 심경에 조금씩 변화가 감지됐다.

지난 13일에는 출근길에 만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지 않은 것이다. 이날 오전 서울 영등포구 금융투자협회에서 진행한 '자산운용사CEO' 간담회 이후 제기된 수많은 취재진의 질문에 단 한 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이 때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 원장의 국회의원 시절 의혹 중) 하나라도 위법사실이 있으면 해임하겠다"는 공식입장을 서면으로 표명한 직후여서, 취재진은 주로 야당의 사퇴요구에 대한 생각과 사퇴의사가 있는지 등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김 원장은 이 모든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3일 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간담회 이후 취재진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하며 해명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같은 김 원장의 변화는 '여론악화' 영향이 컸던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의 의혹제기와 사퇴압박은 야당을 중심으로 주로 제기됐다. 이에 김 원장은 근거를 들며 해명하는 편을 택했다. 하지만 야당과 시민단체의 검찰고발이 압수수색으로 이어지고 이후에 추가폭로가 계속되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특히 야권이 쏜 비난의 화살이 청와대까지 향하자 꿋꿋하게 버티던 김 원장이 조금씩 심적타격을 받는 것이란 분석이다.

게다가 김 원장에게 힘을 보태던 여당 내부에서도 김 원장 파문을 조기진화해야 한다거나, '김 원장 사퇴'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류가 포착됐다는 보도도 흘러나왔다. 해임하지 않겠다던 청와대에서 "위법여부나 도덕성이 평균 이하일 경우에는 해임하겠다"고 공식발표하자 김 원장의 심경이 복잡해졌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이같은 여론악화와 당·청의 변화 감지 등이 그의 태도변화를 일으킨 요인으로 봤다. 그렇다고 그의 태도변화가 사퇴를 고심하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 것 같다고 예측했다..

우선은 더 이상의 여론악화를 막기 위해 논란을 만들지 않으려고 말을 아끼는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있는 만큼, 청와대가 공식질의한 중앙 선관위 답변이나 검찰 특별수사팀의 수사결과가 나오기까지 김 원장 역시 사태를 묵묵히 지켜보는 쪽을 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청와대 역시 김 원장 임명 철회 가능성은 열어두면서도 야당의 사퇴 주장을 호락호락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금감원 한 고위 관계자는 김 원장의 거취 전망을 두고 “결국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아니겠냐”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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