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각료회의에서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는 아니다"라고 언급하면서, 싱가포르가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사실상 굳혀지는 분위기이다.

CNN은 이날 미국 관리들이 북미정상회담의 싱가포르 개최 계획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보도했고, 폭스뉴스도 6월초 싱가포르에서 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도했다. 특히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회담 개최지로 싱가포르와 DMZ 즉 판문점 두 곳을 언급했는데, 이번에 DMZ를 제외한 만큼 싱가포르만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미국 관리들이 싱가포르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행정부 관리들은 북미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는 것 자체가 북한에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크고 회담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경우 정치적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을 우려해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미 앞선 남북정상회담 개최지로 세계인의 눈길을 끈 판문점이 자신의 최대 치적이 될 수 있는 북미정상회담 개최지로는 '신선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렇다면 왜 유력시됐던 판문점이 아닌 싱가포를로 급선회 한 걸까

첫 번째 이유로 지리적으로 미국과 북한 모두가 접근하기 쉽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가 일찌감치 평양을 후보지에서 제외한 데다가 이번에 판문점까지 제외한 만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전용기를 타고 중간 급유없이 제3국으로 가려면 거리상 싱가포르가 적절하다는 것이다.

둘째, 싱가포르는 미국과 북한 모두 대사관을 두고 있는 국가로 중립국 이미지가 강하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들 모두 북한과 수교관계를 맺고 있지만,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은 친북한 성향으로 분류된다. 반면 필리핀은 친미성향 국가다. 이에 비해 싱가포르는 미국과 북한 모두에게 거부감이 적은 국가로 꼽힌다.

세 번째, 싱가포르는 친 중국 성향 역시 상대적으로 적은 국가다. 작은 규모의 국가이지만, 싱가포르는 리콴유 전 총리 시절부터 미국 등 서방과 중국, 북한과 한국을 넘나드는 외교 강국으로 평가받아왔다. 중국계 인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중국과는 1990년에야 수교했을 정도로 거리를 둬왔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리셴룽 총리가 대대적인 수행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해 "하나의 중국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네 번째, 싱가포르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회의를 개최하는데 경험이 많은 국가이다. 다자회의는 물론 역사적 의미를 갖는 은밀한 양자회담도 여러번 유치한 경력이 있다. 이는 싱가포르가 외교 강국인데다가, 강력한 경찰국가로서 보안 유지가 철저하다는 점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싱가포르는 지난 2015년 11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당시 대만 총통 간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을 개최한 적이 있다. 중국과 대만 최고 지도자가 만나기는 1949년 대만이 본토로부터 분리된 이후 이때가 처음이었다. 당시 회담 장소는 샹그릴라 호텔이었다. 만약 트럼프와 김정은이 싱가포르에서 만난다면, 그 장소는 또다시 샹그릴라 호텔이 될 가능성이 있다.

싱가포르는 북한과 한국 관리들 간의 비밀스런 접촉을 중재한 경험도 있다. 지난 2009년 10월 임태희 당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이 남북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싱가포르에서 김양건 당시 북한 통일전선부 부장을 만나 회담을 가졌다.

국립싱가포르대학 산하 동아시아연구소의 림 타이 웨이 박사는 최근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의 중립성이 양 쪽(미국과 북한)을 끌어당기고 있다"며 "두 나라가 여기에 대사관을 두고 있는 데다가 미국은 명성과 화려함을 가진 장소(a location with prestige and glamour)를 선호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정부가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회담 개최 요청을 정식으로 받았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리셴룽 총리는 지난 4월말까지만해도 양국으로부터 요청을 받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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