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쟈니 윤씨를 김막동 재담가가 어깨를 주물러 주고 있다
[김승혜 기자]“미국인을 처음으로 웃긴 한국인” “한국 토크쇼의 새 역사를 쓴 주인공” 등등의 화려한 경력을 지닌 쟈니 윤(82, Johnny Yune, 윤종승(尹宗承).

한때 “코미디계의 대부”로 불렸으며 화려한 스포트를 받던 쟈니 윤씨가 2016년 4월 13일 오전,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뇌출혈로 병원에서 치료받다 지난 2016년 7월 21일에 그의 제2의 고향인 LA로 건너가  현재까지 양로병원에서 외롭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양로병원에서 한방에 다른 두명의 노인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홀로 서지도 못한다. 흰 눈썹, 흰 머리카락,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 환자복 바지 차림은 이 양로 병원에 있는 다른 노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2년전만 하더라도 손목 잡기, 팔 들어 올리기, 양손으로 주먹치기, 발 들어 올리기, 발차기 등등까지 했었지만, 그의 손을 만지니 온기가 없었다"고 11일 선데이저널 기자는 근황을 전했다. 이어 그는 "2년전에는 손과 팔에 힘을 느꼈는데 이날 양다리는 가늘어져 있었다. 70대 때까지만 해도 배에 왕(王) 자 근육이 보일 정도였었다."고 덧붙였다.

쟈니 윤은 1936년 10월 22일 충청북도 음성군 출생으로 원래 1959년에 한국에서 방송인으로 데뷔한 후 한동안 MC생활을 하다가 1962년에 해군 유학생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갔다. 그리고 제대 후에도 그냥 미국에 눌러앉아 MC로 활약했다.

무명 생활을 좀 보내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알게 된 유명한 MC인 자니 카슨의 제의로 아시아인 최초로《투나잇 쇼》에 출연해 총 34번을 출연하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제일 처음 출연은 간단하게 스탠딩업 코메디만 하려고 했는데, 다음 출연인 대배우 찰턴 헤스턴이 갑자기 사라져서 대타로 20분 가까이 자니 카슨하고 시간을 끌어야 했다고. 나중에는 시간 끌려고, 어머니가 부르셔서 부를 줄 안다는 이태리 가곡 오 솔레미오까지 불렀다.

한국에서 배워서 그런지 중간 부분은 한국어로 부르기도. 이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잘 대처한 자니윤을 자니 카슨은 매우 마음에 들어 해서 무조건 한 달에 한번씩은 자니윤을 초청하라고 PD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물론 투나잇쇼 같은 유명쇼에 무려 20분 가까이나 게스트로 나온 것은 자니 윤으로서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다.
그 이후 명성을 얻자 NBC 방송국에서 ‘자니 윤 스페셜 쇼’를 진행하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1989년에 귀국하여 조영남을 보조 MC로 두고 자신이 메인 MC가 된 ‘자니윤 쇼’를 진행 했는데 이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인기로 인해 자니 윤은 한국에서도 스타덤에 올랐고 광고를 여러 개 찍었다. 자니윤 쇼로 한국에서 그의 이름이 알려졌을 때의 나이가 이미 50대 중반이었다. 쟈니윤 쇼는 미국의 자니 카슨 쇼, 데이비드 레터맨 쇼 형식을 그대로 들여온 토크쇼로, 진행자의 이름을 내걸고 매회 게스트를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본격적인 토크쇼로는 국내 최초였다.

그가 ‘쟈니’라는 애칭을 사용한 것은 미국에 건너갔는데 본명인 ‘종승’이 미국인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단어였기 때문에 발음하기 쉬운 비슷한 이름인 쟈니를 사용하게 되었다.

2014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한국관광공사 상임감사에 임명되었다.

2016년 4월 13일 오전,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했다. 2017년 12월 말에 언론에 보도된 바에 의하면, 치매 상태라고 알려졌다. 당시 보도에는 치매의 영향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조차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쟈니 카슨쇼는 기억한다는 걸 보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순간 만은 기억하는 듯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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