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북한이 오는 23~25일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폭파 폐쇄식 현장 취재에 한국·미국·중국·영국·러시아 등 5개국 취재진을 초청하면서 일본을 쏙 뺐다.

대신 영국을 집어 넣었다. 영국의 특정한 역할을 기대했다기보다는 이른바 ‘재팬 패싱’으로 일본을 빼려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12일 밤 북한 외무성이 이달 23∼25일 핵실험장 폐기를 예고한 공보를 발표하면서 "핵시험장이 협소한 점을 고려하여 국제기자단을 중국, 러시아, 미국, 영국, 남조선(한국)에서 오는 기자들로 한정시킨다"고 밝혔다.

일본 내에서 북한 문제는 연일 신문과 방송의 톱기사를 차지하는 소재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일본으로선 당혹해 하는 분위기다.

13일 일본 산케이신문은 ‘북한 핵실험장 23~25일 폐기 현장 취재서 일본은 제외’라는 기사에서 “북한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핵동결, 폐기의 자세를 어필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외국 언론 수용 명목으로 북한이 외화를 획득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핵실험장은 갱도 입구가 막혀도 전체를 폭파하지 않는 한, 간단히 복원할 수 있다”면서 “핵실험장 폐기 행사는 해외에 핵 포기를 보여주려는 퍼포먼스의 장이 될 가능성도 있다”면서 북한의 이번 폭파 행사가 실질적인 핵 폐기 절차가 아닌 보여주기식에 그칠 수 있다는 경계의 시선을 보냈다.

이 기사에 일본 누리꾼들도 “영국이나 미국에서 정보를 받을 테니 일본 언론이 제외돼도 문제 없다” 등 북한에 부정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이 같은 북한의 의도적 '재팬 패싱'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일 정상회담을 희망하는 일본을 겨냥한 압박 공세라는 것이 외교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실제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7일 '암담한 자기 신세나 돌이켜보는 것이 어떤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유독 일본만이 심사가 꼬여 독설을 내뱉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이 통신은 그러면서 "일본이 우리에 대해 짐짓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조선반도(한반도) 문제에서 배제된 궁색한 처지를 모면해 보려는 어리석은 모지름(모질음)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그에 하루 앞선 6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논평에서 일본을 향해 "운명의 갈림길에서 지금처럼 제재니 압박이니 하는 진부한 곡조를 외우며 밉살스럽게 놀아대다가는 언제 가도 개밥의 도토리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된다"고 주장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의 이런 논조는 9일 개최된 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일본이 대북 강경책을 주장하는 걸 경계하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확정된 후 북한 당국과 관영 매체들의 일본 패싱(배제) 제스처는 더 노골화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이 전날 밤늦게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일정 발표를 통해 참관 기자단에 일본을 배제한 데 이어 관영 매체들이 13일 일제히 일본을 비난하고 나섰다.

노동신문은 이날 '궁지에 몰린 자의 상투적인 수법'이라는 제목의 정세해설 기사에서 일본 정치권에서 일고 있는 중의원 해산 및 조기 총선 논란을 소개하면서 "아베의 과거 행태와 현재 그의 눈앞에 닥쳐온 위기를 놓고 볼 때 그가 중의원을 해산해 치우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대외선전용 주간지 통일신보도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치 난쟁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세계에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지만 일본 지배층과 같이 이웃 나라의 정세 긴장을 일구월심 바라며 그것을 저들의 불순한 목적 실현의 구실로 삼는 유치하고 사악한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고 맹비난했다.

북한 관영 매체들은 비핵화 이행 때까지 최대한의 압박을 유지해야 한다는 일본의 주장에 발끈하면서 "대결에 미쳐 날뛰는 자들은 영원히 평양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식의 경고 메시지를 거듭 발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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