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낙관적으로 보였던 북미정상회담에 제동이 걸린 모양새다. 북한은 남북고위급 회담을 무기한 연기한 데 이어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명의의 담화를 통해 “일방적인 핵 포기만을 강요하려 든다면 조미수뇌회담을 재고려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이어 17일에는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단장으로 나설 예정이었던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엄중 사태를 해결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마주 앉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미협상의 중재자를 자처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다시 한 번 시험대에 오른 셈이다. ‘선 비핵화 후 보상’을 언급하던 미국도 일단 한 발 물러섰지만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예단하기 어렵다.

이날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유시민은 “북한 입장에서는 굉장히 위험한 도박을 하는 중이다”라며 “미국과 힘 한번 겨뤄보겠다고 몇 십년 걸쳐서 핵무기를 만들었는데 하루아침에 포기한다는 것이다. 핵을 버림으로써 체제 안정을 보장 받고,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북한 핵 폐기 후 나몰라라 한다면 어쩌나 북한은 무지무지하게 불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이 같은 불안심리와 다르게 그동안 미국의 구체적인 비핵화 대응조치는 언급되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상징적 의미에서 ‘미국기업의 직접투자’를 언급했을 뿐이다. 오히려 존 볼튼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리비아식 모델’ ‘선 핵포기 후 보상’ 취지의 발언이 나오면서 북한을 자극했다.

실제 김계관 제1부상은 담화문에서 볼튼 보좌관의 ‘리비아식 모델’을 콕 집어 “대국들에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라고 비난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난 이유로 리비아가 핵을 포기한 이후에 카다피 정권이 몰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리비아처럼 핵을 먼저 포기할 경우에 자신들의 체제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북미 양측이 협상의 문을 잠근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김 제1부상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은 자제한 채 “조미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가지고 조미 수뇌회담에 나오는 경우 우리의 응당한 호응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반발하자 미 백악관은 “리비아식이 아니라 트럼프식”이라고 한 발 물러서며 북한을 달래기도 했다.

아직 트럼프 모델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얘기하는지는 명확지가 않다. 결국 일단 리비아와 북한의 핵개발 수준과 단계의 차이를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선 핵폐기 후 보상'이라는 큰 틀은 그대로 유지하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사전 검증과 약속을 한 뒤에 단계별 추가 협상으로 북한 핵을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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