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재계의 큰 별이 졌다.

'정도경영'을 내세우며 23년간 LG그룹을 이끈 구본무 LG회장이 20일 오전 만 73세로 별세했다. 고인은 지난해 4월 건강검진에서 뇌종양을 발견하고 몇 차례 수술을 받았다. 뇌종양을 조기에 발견한 한큼 수술 후 의사소통이나 건강상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수술 등에 따른 후유증으로 최근 상태가 악화돼 서울대 병원에 입원했다.

구 회장은 1년간 투병을 하는 가운데, 연명치료는 하지 않겠다는 평소 뜻에 따라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영면에 들어갔다. LG가(家) 3세인 구 회장은 LG 창업주인 고(故) 구인회 회장의 손자이자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구 회장은 집안의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1995년 2월 나이 50세에 경영 승계를 받았다.

당시 구 명예회장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지만, 그는 한국 기업사에서 이례적으로 일찍이 경영권을 넘겨 승계 리스크(위험)를 최소화했다. 구 명예회장이 일선에서 후퇴했을 때 지금은 고인인 허준구 LG전선 회장, 구평회 LG상사 회장, 구두회 호유에너지 회장, 허신구 LG석유화학 회장 등 창업세대들도 함께 물러났다.

1945년 2월10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난 고(故) 구본무 회장은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LG그룹의 현대사를 쓴 오너 3세 경영자다. 고 구인회 LG 창업 회장의 장손으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2대 그룹회장)이 부친이다.

서울 남선고 졸업 후 미국으로 건너가 애슐랜드대 경영학 학사, 클리블랜드주립대 경영학 석사를 취득한 고인은 1975년 (주)럭키(현 LG화학) 심사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금성사(현 LG전자) 이사,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기획조정실 전무, 부사장 등을 거쳐 1989년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1995년 2월22일 LG그룹 회장에 취임한 그는 '럭키금성' 대신 'LG' 라는 새로운 CI를 앞세워 새로운 기업 만들기에 앞장섰다.

이미 국내에서 '럭키금성'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에 주변의 반대가 심했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뚝심 있게 밀어붙여 오늘의 LG를 만들어 냈다. 2003년에는 국내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지배구조를 지주회사와 자회사간 수직적 출자구조로 단순화했다. 이로써 자회사는 사업에 전념하고 지주회사는 사업포트폴리오 등을 관리하는 선진적 지배구조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는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 20년간 철저한 경영수업을 받고 회장직에 올랐다. 그의 아버지인 구 명예회장은 은퇴 배경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구본무 회장이 주력회사인 LG화학과 LG전자의 경영·심사·수출·기획 업무 등을 두루 거치면서 20여 년간 다양한 실무경험을 쌓은 데다 젊은 만큼 강한 추진력을 갖고 일을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평소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제시했고, 실력을 키워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정도경영'을 강조했다.

사업 측면에서도 눈부친 성과를 거뒀다. 그는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군을 집중 육성하는 한편, 자동차부품,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에너지, 바이오 등 성장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LG를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냈다.

또 GS, LS, LIG, LF 등을 순차적으로 계열분리하는 과정에서 고인의 리더십이 빛을 발했다. 이같은 계열분리에도 불구, 구 회장 취임 후 LG그룹 매출은 1994년 말 30조원대에서 2017년 말 160조원 대로 5배 이상, 해외 매출은 약 10조원에서 약 110조원으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1999년 외환위기 당시 반도체 빅딜로 현대전자에 어쩔 수 없이 LG반도체를 넘기는 아픔을 겪었던 고인은 이후 정·재계와 거리를 두고 그룹 경영에 몰두했다.

고인은 출장 때마다 세계 각국의 조류관련 서적을 구입해 집무실을 가득 채울만큼 '새'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다.'조류 관찰'이 취미였던 그는 한반도에서 관찰된 조류 450종을 망라한 조류도감 '한국의 새'를 발간하기도 했다.

사회공헌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고인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의인에게 보답한다'며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는 LG복지재단을 통해 2015년 'LG 의인상'을 제정했고, 지금까지 총 72명을 선정했다.

▲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20일 서울 대학로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다.
조용한 빈소, 상주 구광모 자리 지켜…문재인 대통령 조화, 이재용 박삼구 조문

한편 이날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서울대병원 빈소는 여느 재벌가와는 달리 차분하고 조용했다.

고인과 유족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조화도 안받고 외부 조문도 최소화하기로 했지만 재계의 거목이었던 고인을 추모하는 외부 인사들의 발길은 이어지고 있다.

현재 빈소에는 부인 김영식 여사와 장남 구광모 LG전자 상무, 장녀 구연경씨, 차녀 구연수씨 등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LG그룹 후계자이자 구 회장의 아들인 구 상무가 상주로서 외빈을 맞이하고 있다. 구본무 회장의  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은 워낙 고령인지라 거동이 편치 못해 천안 자택에 머문 것으로 전해졌다.

구광모 상무는 이날 오후 2시께 부인인 정효정씨와 나란히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구 상무는 살짝 목례만 하고 곧바로 3층 빈소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구 회장의 유족은 구 회장의 장례식을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해 원칙적으로 외부 조문은 받지 않고 있다. 조화도 정중히 사절했다고 한다. 빈소에는 범 LG가에 포함되는 LS그룹, GS그룹을 비롯해 LG임직원일동 명의로 된 조화 3개만 있다. 

오후 들어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구자극 엑사이엔씨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구본완 LB휴넷 대표,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등 범 LG가가 대다수다. 구씨가와 사돈 지간인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도 고인을 추모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오후 4시께 빈소를 찾아 상주인 구 상무를 비롯한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도 빈소를 방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구 회장 빈소에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낸 데 이어 장하성 정책실장을 보내 조문하게 했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전했다.

고인의 장례 절차는 허례허식을 피하고 검소하고 소탈한 생활을 했던 고인의 삶의 방식이 죽음 이후에도 이어졌다는 평가다. 천안 자택에서 불편한 몸으로 아들의 부음을 접한 구자경 명예회장의 상황도 배려한 조치로 읽힌다.

LG그룹은 이날 "생전에 소탈했던 구 회장의 삶의 궤적대로 장례도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르기를 유지로 남겼다"며 "고인의 유지와 유족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하며,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