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 지난 23일 첫 재판을 받은 이명박(77) 전 대통령의 향후 법정 전략에 관심이 쏠린다. 이 전 대통령은 첫 재판 모두 발언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형량 줄이기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열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 1차 공판에서 12분 동안 직접 입장을 밝혔다.

특히 그는 지난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이 제시한 증거를 전부 동의한 것에 대해 직접 배경을 밝혔다. 이는 형사사건에서 이례적인 모습으로, 이렇게 되면 증인신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 전 대통령은 증거 동의 배경에 대해 "국정을 함께 이끈 사람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건 저 자신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참담한 일"이라면서 "변호인은 만류했지만 고심 끝에 증거를 다투지 말고 나의 억울함을 객관적인 자료와 법리로 풀어달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 "그들을 법정에 불러 추궁하는 것은 가족이나 본인에게 불이익 주는 일이 될 수 있다"고도 말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40년 지기이면서 자신의 '집사'로 불리는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따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김백준을 가능한 보호해주고 싶은 심정"이라며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런 얘기를 했는지 궁금하지만 나는 보호하고 싶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전 기획관은 자신의 재판에서 진실 규명 협조를 다짐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전 대통령 재판에 증인으로 나설 경우 핵심적 증언을 쏟아낼 것으로 예상돼왔다.

김 전 기획관은 지난 3월14일 열린 자신의 특가법 위반(뇌물) 방조 등 혐의 1차 공판에서 "제 죄에 대해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을 것이고 여생을 속죄하며 살겠다"며 "사건 전모가 국민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성실하고 정직하게 재판에 참여하겠다"고 말했다.

증거를 다투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이 예상되는 증인들의 법정 출석을 사전에 차단해 재판을 최대한 신속하게 마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그들을 감싸주는 인상을 보여줌으로써 유무죄 다툼 외에 향후 양형까지 고려한 전략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이재용(50) 삼성전자 부회장도 지난해 12월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모든 법적 책임, 도덕적 비난 제가 받겠다. 최지성, 장충기 피고인에게는 최대한 선처를 베풀어 주시도록 진심으로 간청드린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이 전 대통령이 성공적이라고 평가 받은 평창동계올림픽 부분을 끄집어낸 것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이 전 대통령은 "사면대가로 삼성 뇌물을 받았다는 공소사실은 저에게 충격이고 모욕"이라며 "평창올림픽 유치에 세번째 도전하기로 결정한 후 이건희 회장 사면을 강력하게 요구받았는데 (이는) 정치적 위험이 있었다. 국익을 위해 이건희 삼성 회장이 아닌 이건희 IOC 위원의 사면을 결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노력으로 평창올림픽이 유치됐다"고 강조했다.

공교롭게도 평창올림픽은 박근혜(66) 전 대통령 국정농단 1심에서도 거론된 적이 있다.

박 전 대통령 국선변호인이었던 박승길(43·여·39기) 변호사는 지난 2월 결심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이 수년 간 올림픽 준비를 하면서 비용, 시설 문제 등을 고민했고 우리 문화와 과학기술을 세계에 알릴 기회로 여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래서 마음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했던 모든 일까지 없던 것으로 치부하고 감옥에 가두고 평가하지 않아야 가능하다는 것이냐. 실수가 있었더라도 대통령으로서 불철주야 노력한 점, 사적 이익을 취하지 않은 점을 부디 감안해 판결해주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형사 피고인 신분이 된 정치인이나 대기업 총수 등이 법정에서 자신의 업적을 부각시키는 건 쉽게 표현해 재판부 '점수 따기' 전략"이라며 "그건 결국 유무죄 판단뿐만 아니라 재판부 재량이 반영되는 양형까지 의식한 행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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