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북한 외무성 관리들이 미국을 강경하게 비난한 것을 이유로, 6월12일로 예정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하겠다고 24일 밝혔다. 지난 23일 한-미 정상회담 이후 정상궤도를 회복하는 듯 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19일 앞두고 좌초함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다시 안갯속에 빠져들었다.

북한은 이날 앞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완전히 폐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 홈페이지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내는 공개서신에서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은 북한의 '엄청난 분노와 노골적인 적개심' 때문에 "적절치 않다(inappropriate)"면서 이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북한이 핵 능력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의 것은 거대하고 강력하다. 나는 이런 핵무기들이 사용되지 않기를 신에게 기도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는 당신과 함께 하려고 했다. 슬프게도 당신의 최근 성명에서 나타난 엄청난 분노와 노골적인 적개심을 근거로, 오랫동안 계획해온 회담을 여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세계에는 해가 되겠지만 우리 둘 모두를 위해 열리지 않으리라는 것을 이 편지로 알리고자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당신은 당신의 핵 능력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 것은 엄청나며 강력하다. 신에게 그걸 결코 사용할 필요가 없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적었다.

그는 이어 "나는 당신과 나 사이에 훌륭한 대화가 구축되고 있다고 느꼈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대화다. 언젠가 당신을 만나게 되기를 고대한다. 한편 당신이 인질들을 풀어줘 감사하다. 그들은 지금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있다. 그건 아름다운 제스처였고,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만약 이 중요한 회담을 가져야겠다고 당신 마음이 바뀐다면, 주저 말고 내게 전화하거나 편지를 써달라. 세계와 특히 북한은 지속적인 평화와 위대한 번영, 그리고 부를 누릴 수 있는 위대한 기회를 잃었다. 이 잃어버린 기회는 역사상 진정으로 슬픈 순간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서신에서 언급한 북한의 '커다란 분노와 드러난 적개심'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성명이다. 최 부상은 이날 앞서 조선중앙TV를 통해 공개한 담화에서 "미국이 우리의 선의를 모독하고 계속 불법무도하게 나올 경우 나는 조미수뇌회담을 재고려하는 것에 대해 최고지도부에 제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 부상은 이날 "미국이 우리를 회담장에서 만나겠는지 아니면 핵 대 핵의 대결장에서 만나겠는지는 전적으로 미국의 결심과 처신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최 부상은 "미국 부 대통령 펜스는 지난 2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조선이 리비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느니, 북조선에 대한 군사적 선택안은 배제된 적이 없다느니, 미국이 요구하는 것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라느니 뭐니 하고 횡설수설하며 주제넘게 놀아댔다"고 비난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21일 폭스뉴스 라디오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분명히 밝힌 것처럼 만약 김정은이 합의를 하지 않는다면 리비아 모델이 끝장난 것처럼 (북한도) 끝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최 부상은 이에 대해 ‘무지몽매한 소리’라면서 “리비아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우리 자신을 지키고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수호할 수 있는 강력하고 믿음직한 힘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핵을 보유한 북한과 핵개발 단계에서 포기한 리비아는 전략적 지위가 다르다는 주장인 것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4일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한다고 발표한 것과 관련해 "깊은 우려"를 피력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자의 회담의 철회에 크게 우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이날 성명을 통해 핵실험장 폐기를 선언하면서 "우리는 앞으로도 핵무기 없는 평화로운 세계, 인류의 꿈과 이상이 실현된 자주화된 새 세계를 건설하기 위해 세계평화 애호인민들과 굳게 손잡고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文대통령 북미 정상회담 관련 입장 표명

한편 청와대는 이날 밤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이 공개된 뒤 “트럼프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시도중”이라고 밝혔다.

지난 주 김계관 부상의 강경 담화와 남북 고위급회담 취소 등으로 경고등이 켜졌던 남북-미 관계는 지난 23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6월12일 북-미 정상회담이 차질 없이 진행되도록 최선을 다 한다”고 합의함에 따라 동력을 얻는 듯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 비핵화를 ‘단계적’으로 진행할 뜻을 밝혔고, 북한이 24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의 핵실험장을 외국 언론인들 앞에서 폭파한 것도 긍정적 신호로 여겨졌다. 이번 주말 싱가포르에서 북-미 고위급 접촉이 이뤄질 것이라는 보도까지 나오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취소를 선언함에 따라 올 들어 쌓아온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급속한 냉각기를 맞으며 다시 위기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다음은 문 대통령이 표명한 입장문 전문.

<북미 정상회담 관련 문재인 대통령 입장 표명>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6월12일에 열리지 않게된 데 대해 당혹스럽고 매우 유감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는 포기할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당사자들의 진심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의 소통방식으로는 민감하고 어려운 외교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정상 간 보다 직접적이고 긴밀한 대화로 해결해 가기를 기대한다

2018년 5월 25일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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