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변호사란 숙명적으로 남의 분쟁 속에 들어가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다보니 주위에서 화를 내는 사람, 화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사람, 화 때문에 파멸된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예전에 법원에 있을 때 담당했던 한 형사사건이 기억난다.

부부싸움을 하다가 남편이 화가 나니, 석유통을 들고 와 아내의 몸에 석유를 뿌리고는 라이터를 손에 들고 불을 붙이겠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는 이에 수그러들기는커녕 오히려 불을 붙일 테면 붙여보라며 대든다. 남편은 겁만 주려고 라이터를 켰으나 그만 아내 몸에 불이 붙어버렸다.

순식간에 아내는 불길에 싸이고, 놀란 남편은 두 손으로 불길을 끄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은 법. 결국 아내는 온 몸에 1도 화상을 입고, 남편도 두 손에 화상을 입는다. 그리고는 남편은 재판받는 내내 회환의 눈물을 뿌린다.

틱낫한 스님은 ‘화’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화는 마치 우는 아기와 같다. 아기가 우는 것은 무엇인가가 불편하고 고통스러워서일 것이고, 그래서 엄마의 품에 안기고 싶어 한다. 우리는 화라는 아기의 어머니다. 의식적인 호흡을 실천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에 우리에게는 그 아기를 품에 안고 어르는 어머니의 에너지가 생긴다.

화를 품에 끌어안은 채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만 해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아기가 이내 편안함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화를 끌어안는 것을 심리치료에서는 ‘화와 접촉하기’라고 한단다. ‘3초 법칙’이란 말도 있다.

화가 날 때 속으로 ‘1초, 2초, 3초’를 헤아리다보면 화가 가라앉는다는 것이다. ‘화’라는 것은 마음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격랑 같은 것이기에, 3초만 참아도 그 격랑이 가라앉는다는 것이리라.

위 사건에 있어서도 라이터를 켜려는 순간에 남편이 3초만 참으며 의식적으로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기만 했어도, 이런 참혹한 결과는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화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화가 폭발하려는 그 순간만 모면하자는 것이지, 화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화를 끌어안는다는 것은 화를 억누른다는 것이 아니라, 화를 아기처럼 끌어안고 어루만져서 화를 해소시킨다는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한참 동안 화를 끌어안고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떤 통찰이 생기고 화가 사그라들기 시작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러고 나면 기분도 한결 좋아질 것이고, 더 나아가 상대방에게 가서 그를 돕고자 하는 마음까지 생길 것이라고 한다.

나도 틱낫한 스님의 말씀을 듣고 의식적으로 이를 실천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정말 화가 몸 안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겠고, 상대방을 돕고자 하는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연민의 정까지는 조금 생겨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러분들도 화가 폭발하려고 할 때 3초만 참고 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화를 한 번 끌어안아 봄은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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