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자택 인근에서 '재판거래 의혹'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영 기자]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지난 2월 6일 삼성 이재용 부회장에 집행유예를 선고한 정형식 2심 재판부인 형사 13부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재용 부회장 2심 재판을 염두에 두고 기획 신설한 재판부이며 정형식 부장판사의 경우에서 ‘제척 사유’가 있는 법관으로 의심이 간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박 의원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전날 이 부회장에 대한 2심 선고와 관련 “지금 이 정형식 판사에 대한 특별감사 청원 운동까지 일고 있는데 약 4만 명 이상이 서명했다. 그래서 이 재판의 후유증이 조금 갈 것 같다”며 “왜냐하면 이재용 재판부를 만든 형사 13부에 대한 여러 가지 구설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양승태 대법원장이 이재용 부회장의 1심 판결이 나올 때쯤에 신설된 재판부이고 여기에 정 판사가 임명됐고 이재용 2심이 여기에 배당됐다”며 “기획됐다고 말하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지만 지난번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깨끗하지 못한 시선들이 있어 국민들로부터 의심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가운데 '사법농단 의혹' 중심에 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이재용 경영권 승계의 ‘일등공신’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8일 미주신문 선데이저널은 "박근혜 정부와 대법원은 서로 정권의 안위와 법원의 이득을 위해 더러운 거래를 한 사실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다. 그 핵심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정권과 재판을 거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하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발행 유죄반대

2008년 대법원은 이른바 삼성에버랜드 사건과 삼성SDS 사건을 심리했다. 삼성그룹의 3세 승계작업을 위해 삼성그룹 임원들이 관리자의 임무를 저버리고 회사에 손실을 입혔다고 기소된 사건이다. 검찰은 삼성그룹 오너 일가는 제외한 채 경영진만 기소했으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 이후 조준웅 특별검사가 이건희 회장을 기소했다.

두 사건 모두 삼성그룹을 순환지배 할 수 있는 주식을 이재용 부회장 등에게 헐값에 넘긴 혐의다. 2009년 대법원은 에버랜드 사건을 무죄로, SDS 사건을 유죄로 결론 내렸다.

유무죄가 엇갈린 이유는 에버랜드는 주주 배정 방식, SDS는 제3자 배정 방식이라는 점이었다. 두 회사의 주식은 모두 삼성그룹 3세들에게 주어졌는데 형식이 다르다고 대법원은 설명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주주에게 싸게 살 기회를 주었지만 인수하는 사람이 없어 3세에게 갔고,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는 처음부터 3세에게 싸게 배정됐다는 이유다.

기존 주주에게는 싸게 추가 주식을 팔아도 회사에 손해가 없지만, 제3자에게 주식을 헐값에 파는 것은 기존 주주의 이익을 해쳐 회사에도 손해가 된다는 것이다.

반대의견은 에버랜드 전환사채는 주주 배정의 외양이지만 실제로는 제3자 배정과 다르지 않다며 에버랜드 사건도 유죄라고 했다. 주주 배정 방식을 전제로 싸게 발행된 주식이 기존 주주에게 인수되지 않아 제3자에게 넘기게 됐다면 발행가격을 시가로 올려야 했다는 것이다.

반대의견의 대법관들은 “대량의 실권주를 불공정한 발행가격으로 제3자에게 배정한 이사들로 인해 회사에 자금이 덜 유입되는 손해가 발생했다면 업무상 배임죄가 성립한다”고 설명한다.

양승태가 사실상 무죄 논리 마련

그런데 두 사건 모두 무죄라는 별개 의견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다. 지금 재판거래의 당사자로 의심받고 있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다. 당시 그는 대법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아무리 헐값에 주식을 넘겼다고 해도 얼마라도 회사에 돈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배임이 되느냐”고 했다. 주주에게 불이익일 수 있지만 회사에 대한 배임은 아니라고 했다. 이런 논리라면 경영권 이전이나 주주들의 증여세 탈세를 위해 주식을 저가나 무상으로 발행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SDS 사건만으로 이건희 회장에게 유죄가 확정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같은 해 그를 사면한다.

이듬해에는 삼성그룹의 전면 무죄를 주장한 양승태 대법관을 대법원장에 임명한다. 세월이 흘러 지금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건희 회장을 사면해주고 대가를 받았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원세훈 국정원장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두고 청와대와 거래했다는 의혹이 있다. 에버랜드 사건에서 무죄의견을 낸 차한성 전 대법관은 이재용 부회장 변호인으로 나섰다.

박근혜 이재용게다가 이재용 부회장의 고법 담당 재판부서였던 형사 13부는 이재용 재판 1심이 주어질 그 무렵에 신설된 부서였고 이 부서를 만든 이가 바로 양 전 대법원장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 부회장 재판을 이 부서에 배당하고 여기에 정형식 판사를 임명했다.

이런 정황들은 보수성향을 보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정치권과 꾸준하게 재판을 거래해온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기에 충분하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는 본국의 시민단체도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달 16일 위계에의한공무집행방해·특가법상 뇌물 혐의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이재용 부회장 항소심을 맡았던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이재용 부회장 등 15명에 대한 추가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한 바 있다. 센터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이 각종 법원 인사를 통해 친삼성 인물을 주요 자리에 앉혀 이 부회장의 집행유예를 준비했다고 주장했다. 센터는 “양 전 대법원장 등은 이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도록 만들었고, 여론이 나빠지자 1심에서 징역 5년에 처하게 만든 뒤 추후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여지를 조성했다”고 주장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유독 원세훈 관련 재판에 집착했던 것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이번에 드러난 재판 거래 문건을 보면 이런 사실이 잘 드러난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 지난 25일 조사보고서를 통해 공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판결 선고 관련 각계 동향’(2015년 2월10일 작성) 문건은, 청와대와 법관 사이 ‘금기의 벽’이 전화 한통으로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당시 기획조정실장)은 판사 출신인 곽병훈 법무비서관(2015년 2월~2016년 5월)과 국정원 댓글사건 항소심 선고 과정에서 긴밀하게 내부 정보를 공유했다.

청와대 법무비서관실 대법원 재판까지 개입

원세훈 전 원장이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박근혜 정권은 조작된 댓글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에 그 어느 판결보다 정권의 정통성이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은 2005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심의관(임종헌), 담당관(곽병훈)으로 한솥밥을 먹었다. 선고 방향에 대해 “항소기각 기대”라는 ‘불순한 희망’까지 거침없이 주고받은 것은 이런 관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은 청와대 기대와 달리 1심에서 무죄로 판단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정치 개입 혐의까지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 선고 이후 법원행정처와 곽 비서관의 의견 교환은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문건은 ‘우병우 민정수석이 사법부에 큰 불만 표시. 향후 결론에 재고의 여지가 있는 경우 상고심 절차를 조속히 진행, 전원합의체 회부 희망’ ‘법원행정처→법무비서관 통해 사법부 진의가 곡해되지 않도록 상세히 입장 설명. 법무비서관→행정처 입장을 BH 내부에 잘 전달하기로 함. 향후 내부 동향 신속히 알려주기로 함’ 등 청와대가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대법원 재판까지 개입하려 한 정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법원 3부에 배당됐던 이 사건은 나중에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는데, 핵심 증거를 인정할 수 없다며 대법관 13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파기환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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