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한국당 초선의원인 김성태(왼쪽부터)·성일종·정종섭·김순례·이은권 의원이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 10년간 보수정치의 실패에 책임이 있는 중진들은 정계 은퇴하고 당을 제대로 이끌지 못한 중진은 당 운영의 전면에 나서지 말고 국민이 원하는 책임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사기(史記)에 나오는 ‘곡학아세(曲學阿世)'의 뜻은 “학문을 굽혀 이 세상 속물들에게 아첨한다”는 뜻이다.

정종섭은 서울대 법학과에서 헌법을 가르쳤다. 지방재정이나 지방행정에 문외한이다. 그런 그가 2016년 행자부에선 전례가 없는 장관 이력이었다.

2016년 5월 '슬로우뉴스'의 글을 인용하면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을 하기 위해 정종섭을 장관으로 임명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다."라고 썼다. 글쓴이는 실명을 밝힐 수 없는 한 로스쿨 교수가 정종섭 ‘교수’를 평한 게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헌법학을 전공한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참여정부까진 ‘진보’인 양 하고 다니더니 이명박 정부 들어서자마자 ‘보수’로 확 돌아섰다. 한자리 해보려고 이리저리 바깥으로 다닌다. 자리 욕심이 대단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종섭 ‘교수’는 한때는 책임총리제, 특별검사제, 재정법률주의 등을 주창했던 분이라고 했다.

해당 글을 좀더 인용하면 어쨌든 그는 장관이 됐다. 하급직원들 사이에선 인기가 괜찮았다. 하급직들 신경을 많이 써주려 했다. 회의를 줄여서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줬다. 실·국장들 브리핑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도 좋은 편이었다고 한다. 한국 권력층에게 만연한 고질병인 ‘우리가 남이가’에서 벗어나 지역균형 인사에 노력한 대목은 평가할 만 했다.

경주 명문가 출신인 그는 서울대 재학시절 친하게 지낸 동기 덕분에 그 여동생과 결혼했다. 그 덕에 영호남 결합이 됐다. 그는 고시공부를 고창에 있는 문수사라는 절에서 했고 첫 검사 부임지는 군산이었다.

내부 운영과 비교하면 행자부가 추진한 정책은 대체로 청와대가 제시한 방침을 구현하기 위한 무리수의 연속이었다. 이명박근혜 정권은 대체로 지방자치단체에 갑질하는 걸 기본방침으로 하는데 행자부는 지자체 팔 비틀기의 선봉이 돼 버렸다. 재정을 지방에 떠넘기는 행태는 행자부가 왜 필요한지 존재 이유까지도 생각하게 했다.

지방공기업 사업이 민간경제를 침해하고 위축시킨다며 장난감도서관을 민간에 넘기라고 했던 건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행자부는 공립 장난감도서관이 180개가 넘는다는 건 아는지 모르는지 ‘장난감 대여업’을 문제 삼았다. 경남 진주시가 운영하는 장난감도서관이 행자부 장관 표창을 받은지 반년도 안된 시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대외적으로는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국회에서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하는 바람에 주민세 인상 법 개정이 물 건너간 것은 작은 사례일 뿐이다. 대표작은 2015년 8월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만찬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친 게 아닐까 싶다. 당시 야당에선 정종섭 ‘장관’ 해임결의안까지 추진했을 정도로 후폭풍이 상당했다.

당시 정종섭 ‘장관’은 새누리당 연찬회에 초대받지도 않았다. 제 발로 찾아갔다. 그것도 비서실에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며 수행비서 없이 혼자서 찾아갔다고 들었다. 공식 해명은 ‘의원들이 건배사를 시켜서 당황해서…’였지만 다른 증언도 있다. ‘뒤풀이 자리에서 지역구별로 있는 자리에 자기가 먼저 와서는 건배사를 제창했다.’ 그는 파문이 확산되고 며칠이 더 지난 금요일(28일) 아침 8시쯤 대변인에게 전화를 걸어 “11시에 기자회견 준비해라”고 시켰다.

그날 ‘긴급’ 기자회견에서 나는 ‘국회의원 출마 의지’를 재차 물었다. 그는 그때 분명히 대답했다. 자신은 국회의원 출마할 생각 없다고. 물론 그 말을 믿는 기자는 아무도 없었다.

정종섭 ‘장관’은 2015년 11월 8일 장관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또다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발전과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 할 수 있는 걸 다하겠다고 했다. 내년도 예산안 문제로 한참 바쁜 행자부는 말그대로 ‘멘붕’에 빠졌다. 총선 출마를 묻는 질문이 재차 나왔다. 그는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당시 정종섭의 행적에 대해 한국일보는 2016년 5월 25일자 논설에서 이렇게 썼다.

헌법학자인 정종섭 새누리당 당선자는 유신시대 법대를 다니면서 헌법의 정당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서울대 법대 졸업 후 유신헌법의 정당성에 동원된 독일 헌법학자 카를 슈미트의 결단주의 이론을 비판하던 소장학자인 허영 교수를 좇아 경희대로 대학원을 옮긴 것도 그런 이유다. 그는 서울대 법대 교수 시절 토론회에서 “법률지식과 이론을 동원해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는 데 앞장서는 것이 학자의 도리냐”고 질타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종섭은 지난해 행정자치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는 태도가 달라졌다. “5ㆍ16이 쿠데타가 맞느냐”는 질문에 “여기서 말하기 적절치 않다”고 모호한 답변을 늘어놓다가 손가락질을 받았다.

헌재 연구관, 서울대 법대 학장, 헌법학회장을 역임해 누구보다 헌법의 가치를 잘 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냈다. 제주 4ㆍ3 사건을 ‘공산주의자 세력의 무장봉기’로 비하하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해 “시대착오적 이념타령으로 나라를 망쳤다”고 했다. 학자로서의 보수적 견해는 그렇다 치더라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후 보여준 권력 추종 행태는 개탄스럽다. 새누리당 행사에 참석해 ‘총선 필승’ 건배사를 해 파문이 일었고, 총선 불출마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했다. 선거운동 기간에는‘진박 후보’답게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하며 “피를 흘리며 예수가 십자가를 지듯 어려운 언덕을 오르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해 유승민 원내대표가 축출된 국회법 파동 당시 행자부 장관인 정종섭은 학자의 소신마저 팽개쳤다. 자신의 저서 ‘헌법학원론’에 ‘대통령이 위법인 대통령령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경우 탄핵 소추할 수 있다’고 쓴 데 대해 의견을 묻자 침묵을 지켰다. 그는 이번에 국회 청문회 활성화법이 논란이 되자 위헌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05년 유사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 공청회에서는 정반대의 입장을 밝힌 사실이 드러나 구설에 올랐다.

정 당선자가 기자회견까지 자청한 것은 거부권 행사를 놓고 고민하는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다. 평생을 노력해 이룬 학문적 성과는 권력 앞에서 잡설이 됐다. 소신이나 철학 없이 세상이나 권력에 아첨하는 것을 ‘곡학아세(曲學阿世)’라고 한다. 값싼 지식인의 뒤틀린 지식은 세상을 어지럽힌다.

“진박 인증하던 정종섭, 보수 궤멸의 진짜 책임자”

전여옥 작가(전 한나라당 의원)는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당내 중진의원들의 정계 은퇴를 촉구한 친박계 초선의원들을 향해 쓴소리했다. 특히 정종섭 의원은 실명을 거론하며 “그대부터 그만두라”고 작심 비판했다.
  
전 작가는 “국회의원 그만둔 줄 알았던 초선들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정풍운동’을 하겠다고 한다”며 “이 정도면 역대급 철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그는 “홍준표 대표 시절 입 한번 뻥끗도 하지 않았던 이름만 초선인 사람들이 ‘갑자기 왜 저러지?’ 싶다. 분명히 뭘 잘못 먹었나 싶다. 어이가 없다 못해 ‘대단하다’하고 입이 다물어지질 않는다”고 작심한 듯 말했다.  

전 작가는 특히 정 의원을 두고는 “서울대 법대 교수에 헌법학책도 썼던 분이 ‘진박모임’ 인증사진 찍을 때 ‘저 사람 권력욕 참 대단한 사람이다’ 싶었다”며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행정자치부 장관도 했고, 홍 대표 이야기 중 해당 사항이 많은 의원”이라고 전했다. 이어 “죽은 듯이 있다가 홍 대표 물러나니까 중진 사퇴? 한국당 초선분들은 ‘중진 찜쪄먹는 노회한 초선’”이라고 했다.  

이어 전 작가는 “더 험한 꼴 보기 전에 그들의 파렴치함에 절대 속지 말라”며 “보수가 그렇게 걱정된다면 친박 초선부터 친박 중진 껴안고 같이 사라져 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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