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  "김종필(JP) 전 총리 내외와 큰 영애(박근혜 대통령)의 관계가 별로인 것 같다고 했다."(368쪽)

지난 2016년 11월, 30여년의 신문사 기자생활 동안 정치현장을 지켜봐온 노진환 전 한국일보 주필이 자신의 저서를 통해 과거 김 전 총리를 취재하던 당시를 회고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노 전 주필은 김 전 총리의 청구동 자택을 왕래하던 당시 박 대통령을 비롯해 근령, 지만씨 등 육영수 여사의 소생들이 청구동을 찾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당시 JP의 공보업무를 돕던 인물의 말을 빌어 "청구동과 그쪽(박근혜, 근령, 지만)과의 관계가 그렇게 원만치 않은 것 같다고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김 선생(JP의 공보업무를 돕던 고 김석야씨)은 두 분 사이가 한때 퍼스트레이디(박 대통령)와 총리 부인(사촌언니 박영옥·JP의 부인) 사이에 무슨 모함인지 다툼인지가 있었던 것이 이유라고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총리이던 JP가 큰 영애를 배경으로 호가호위한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고 최태민 목사에 관한 건을 박 대통령(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진언한 것을 계기로 관계가 헝클어졌다고 했던 것 같다."

노 전 주필은 이어 "그런데 JP가 나중에 박 대통령으로부터 '제 마누라나 잘 간수하라고 해'라는 황당한 말을 듣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두 사촌 여형제 간에 무슨 오해나 갈등이 있었지 않나 하는 추측이 가능해진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래서일까 김종필(JP) 전 국무총리는 최순실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퇴진 압박이 거셌던 2016년 11월 당시 한 언론 인터뷰에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나쁜 점만 물려받았다."며 "박근혜 대통령은 죽어도 하야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밝힌 바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재임 중이던 2015년 2월 김 전 총리의 부인 박영옥 여사가 별세하자 빈소를 찾아가 조의를 표하기도 했지만, 그 이후 별다른 관계 진전이 없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 2007년 5월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5.16 민족상 시상식에 참석한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다.
김 전 총리가 23일 별세하면서 박 전 대통령과의 구원도 그대로 묻히게 됐다.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는 사촌 형부가 된다. 이렇게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두 사람은 지난 2007년 한나라당(자유한국당의 전신) 대선후보 경선을 거치면서 틀어졌다.

자유민주연합이 4석을 얻는 데 그친 2004년 17대 총선 이후 김 전 총리는 사실상 정계 은퇴의 길로 접어들었지만, 충청권 맹주로서 김 전 총리의 영향력은 크게 약화했지만 여전한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 전 대통령 모두 김 전 총리의 도움이 필요했다.

김 전 총리가 박 전 대통령과 혈연으로 맺어진 특수 관계라는 점에서 이 전 대통령보다는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은 같은 해 6월 김 전 총리 외손자의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한집안'임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총리는 이런 예상과 달리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 선언을 하지 않았다. 반대로 8월 경선이 끝나고 대선이 임박한 12월에 들어 JP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통령 측은 김 전 총리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졌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김 전 총리가 뇌졸중으로 건강이 악화됐을 때 박 전 대통령이 큰 관심을 두지 않고, 2012년 박 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앞서 김 전 총리가 새누리당을 탈당하면서 불화설은 더욱 확산됐다.

다만 당시 대선에 임박해 김 전 총리가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2013년 1월 김 전 총리의 미수(米壽·88세)에 축하 전화를 하면서 관계 개선 조짐을 보였다.

하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김 전 총리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결국 김 전 총리는 '처 사촌동생'인 박 전 대통령과의 앙금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았고, 박 전 대통령은 '영어의 몸'으로 화해를 위한 '사촌형부'의 빈소 방문이 어렵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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