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 차기 서울대 총장 후보로 최종 선출됐던 강대희(55)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가 과거 성희롱 ·성추행 등 의혹으로 6일 전격 사퇴했다. 대통령 임명이 예정됐던 20일을 불과 2주 앞두고 터진 논란은 무서운 기세로 번졌고, 강 교수의 해명은 도리어 불씨를 키웠다.

강 교수는 이날 '서울대학교 총장 후보자 사퇴의 글'을 발표해 "지난 며칠간 언론보도로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 참담한 심정으로 제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며 "이제 후보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저의 부족함을 깨닫고 여러 면에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면서 "저로 인해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전했다.
 
◇성희롱·성추행에 논문 표절까지 '3대 의혹' 공론화

강 교수는 지난 2011년 6월께 다른 교수와 기자들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모 언론사 여기자에게 스킨십을 요구하는 성희롱 발언을 했던 사실이 뉴시스 최초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뉴시스는 해당 여기자로부터 사건 경위와 발언 내용을 구체적으로 확인했지만 피해자 보호를 위해 기사에는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이 기자는 강 교수 사퇴 직후 공개한 입장문을 통해 "(당시 강 교수가) 맞은 편에 앉은 제 차례가 됐을 때 저를 부른 후 웃으며 'O 기자, 우리 뽀뽀 한 번 할까?'라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강 교수는 당시 서울대병원 대외정책실장과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설립준비위원회' 내에 설치된 법인설립추진단의 부단장 등 주요 보직을 맡고 있었으나 이 사건으로 동시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강 교수에게 제기된 성폭력 의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학내 여교수 성추행 제보를 받은 서울대 여교수회에서 총장추천위원회(총추위)와 이사회에 잇따라 문제를 제기했다.

해외에 머물고 있던 전화숙 서울대 여교수회 회장은 지난 5일 뉴시스와의 단독 통화에서 "피해 여교수의 제보를 직접 받았고 심층 사실이 분명히 있어 성추행이 있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피해 여교수가 제보한 내용은 언어적 성희롱 수준이 아니라 신체 접촉이 수반된 성추행이라는 게 전 회장 설명이었다. 서울대의 공적인 행사에서 뒤풀이로 1차 저녁식사 후 2차로 노래방을 갔다가 성추행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 강 교수는 최근 본인 논문에 대한 표절 의혹이 제기돼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 조사를 거치기도 했다. 강 교수의 논문 6건 가운데 참고문헌까지 똑같은 이중게재 등 '자기표절'을 한 의혹이 있어 연구진실성위원회 예비조사위가 꾸려졌다.

연구진실성위원회 관계자는 "논문 표절 여부에 관해 예비조사위 검토를 거쳤고 문제는 있지만 당시로서는 비교적 경미하다는 내용으로 며칠 전 교육부로 관련 자료를 넘긴 상황"이라며 "예비조사위에서 중복 게재가 맞다고 판단했다"라고 뉴시스 기자에게 밝혔다.

◇피해자들을 화나게 한 강 교수의 해명

강 교수는 해당 의혹들이 보도되자 적극적으로 해명하기 시작했다. 그와 측근 교수들은 일관되게 "모두 오해이며 소명이 끝난 문제들이고 음해하는 공작이다"라고 취지로 주장했다.

여기자 성희롱 사건으로 주요 직책에서 보직해임됐던 사실에 대해 강 교수나 측근들은 "(성희롱) 발언에 대해 사실 여부가 굉장히 갈린다" "회식에서 술을 마시던 중 남자 기자와 러브샷을 한 것을 보고 건너편에 여기자가 불쾌감을 느꼈던 것" "보직해임 된 게 아니라 스스로 물러난 것"이라고 해명해왔다.

또 여교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는 "해당 여교수가 누구인지 모르고 기억할 수도 없는 일" "사실무근" "총장 선거를 둘러싼 음해세력의 주장일 뿐" 등으로 전면 부인해왔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들의 분노와 강력 반발을 초래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고 말았다. 불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강 교수의 해명을 접한 전화숙 서울대 여교수회 회장은 뉴시스 취재에 응하면서 "해당 여교수나 여교수회가 뭐하러 이유 없이 음해를 하겠느냐. 여교수회 회장의 이름을 걸고 (성추행 사실을) 100%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전 회장은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도록 제보했더니 그걸 이용해서 (강 교수가) 계속 성추행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분명히 성추행은 있었다"고 거듭 단언했다.

피해 여기자 역시 강 교수의 해명 내용에 대해 어이없다는 입장을 뉴시스에 지속적으로 밝히며 "거짓말에 대해 더 이상 침묵하지 않겠다"고 전했다. 입장문을 통해 그는 "이 일로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아 언론 취재 요청을 거절했다"며 "하지만 최근 강 교수의 해명을 보며 더 이상 침묵하지 않기로 했다. 진정한 반성 없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거짓말을 하며 2차 피해를 입히는 것은 성희롱에 버금가는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결국 6일 "상처받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지난 3일 첫 보도로 공론화가 된 이후 불과 나흘 만이다.
 
◇총장 선출 다시 해야 하는 서울대, 부실 검증 방지책은

이번 서울대 총장 선거는 개교 72년만에 최초로 학생들까지 직접 정책평가단으로 참여한 선거여서 학교 안팎의 관심이 더 쏠렸다. 평가단에 등록한 학생 총 8029명 중 60%가 넘는 4846명이 한 표를 행사했으며, 교원은 등록자 387명 중 99%에 달하는 384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이 결과를 토대로 총장추천위원회가 후보를 5명에서 3명으로 압축한 후, 이사회 면접으로 최종 1명이 선출되는 과정을 거쳤다.

서울대 이사회는 지난달 18일 총장 후보자별 면접과 토론을 거쳐 투표를 실시했다. 결선투표에 오른 강 교수와 이건우 교수가 전체 15표 중 각각 8표와 7표를 득표해 강 교수가 1표 차이로 최종 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최종 선출까지 다 끝나고 뒤늦게 강 교수의 여러 의혹이 언론의 추적 보도를 통해서야 공론화한 것은 결국 선거 과정에서 충분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고 검증되지 않은 데서 생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5000명이 넘는 학생과 교원들이 성희롱, 성추행, 논문 표절 의혹 등에 관해 전혀 모른 채 후보 공약만 놓고 투표를 했던 것이다.

특히 총추위 단계의 검증에서 제보나 문제 제기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등, 제도적 부실 탓에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지 못했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 설명이다. 총추위의 역할이 선거관리위원회에 그치지 않고 평가단의 일원도 겸임한 부분이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김명환 서울대 인문대 교수는 "선거관리위원회 역할에만 충실해야 할 총장추천위원회가 25%의 평가 점수를 반영할 권한을 가지도록 한 규정으로 인해 간선제의 폐해만 두드러졌다고 본다"며 "강 교수에 대한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결국 검증도 부실하게 됐다는 뜻이기 때문에 더욱 문제"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서울대 관계자는 "총추위는 이번에 실명 제보만 허용했다. 이건 잘못이고 검증이 부실하게 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학생들 역시 강 교수에 대한 이슈 등이 사전에 알지 못했던 정보인 데 대해 "학생들 입장에서는 정보를 알 수 없었다" "직선제에 가깝다고 학교 측이 말하지만 정작 중요한 정보는 몰라 권리를 침해당한 기분"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총학생회도 공식 회의를 거쳐 입장을 밝히기로 했었지만 강 교수가 전격 사퇴하는 바람에 내부 논의를 다시 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 당국은 이날 저녁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번 사태에 관한 학교의 입장을 정리하고 사과 및 수습책, 재발 방지 방안, 총장 후보 재선출 과정 등을 집중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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