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의겸 대변인이 20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계엄령 문건'의 세부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손에 쥔 계엄 대비 세부계획 문건에는 단순한 계획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담겨 있었다.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가 계획했던 계엄 선포에 따른 군병력 이동 계획에는 탱크와 장갑차는 물론, 특전사 등 대규모 무장병력 투입이 담겨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다.

특히 실행을 전제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는 보수야당의 논리가 상대적으로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20일 오후 긴급브리핑을 열고 국방부가 추가 제출한 '계엄 대비계획 세부자료' 문건을 일부 공개했다. 해당 문건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는 별도로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된 '액션플랜'(실행계획)이라 할 수 있다.

 김 대변인에 따르면 해당 문건은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에 대한 선고를 앞둔 시점에 작성됐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공개된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과 비슷한 시점에 작성이 이뤄졌다. 상위 문서를 실행에 옮기기 위한 하위 문서쯤이라 할 수 있다.

'전시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이 계엄에 필요한 전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총론 성격의 최상위 문서라 한다면, 이번에 청와대가 공개한 '대비계획 세부자료'라는 이름의 문건은 실행에 옮기기 위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청와대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총 69페이지로 이뤄진 해당 문건 속에는 ▲단계별 대응 계획 ▲위수령 ▲계엄선포 ▲계엄 시행 등 4가지의 큰 주제 아래 21개의 세부 항목으로 이뤄졌다. 계엄이 선포되면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받고, 국정원 2차장이 계엄사령관을 보좌한다는 구체적인 내용도 담고 있다.

계엄령 선포 이후 국회가 헌법에 따라 계엄 해제를 시도할 것을 대비해 당시 여당이던 자유한국당 의원의 표결을 불참시키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포함돼 있고, 국가정보원 통제, 언론사 통제 등 국가 권력에 대한 세부 장악 방법까지 담겨있다는 점에서 실행을 목표로 작성된 문서로 평가된다.

다만 김 대변인은 '이 문건이 단순한 검토가 아니라 실행을 염두에 뒀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언론인이 알아서 판단해 달라"라며 청와대 차원에서 별도의 가치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계엄사령부 설치 장소는 물론, 군이 위치할 국가중요시설 494개소까지 구체적으로 적시 돼 있고, 탄핵 기각 시 대규모 집회가 예상되는 광화문과 여의도에 각각 기계화사단·특전사령부 등을 편성해 전차·장갑차까지 신속하게 전개한다는 계획까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애초부터 실행을 목적으로 작성된 문서라는 시각에 무게가 쏠린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을 비롯한 일부 보수 야당의원들은 그동안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에 구체적인 무기에 대한 동원 계획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근거로 단순히 비상상황에 대비한 차원의 문서로 평가했었다.

특히 헌법 77조에 명시된 국회의 계엄 해제 권한을 비켜갈 방법까지 담고 있는데, 이는 문서 작성의 의도를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단순히 비상상황을 대비해 작성된 차원의 문서라면 군이 자체적으로 계엄 해제 방법까지 모색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김 대변인은 "'국회에 의한 계엄해제 취소시 조치 상황'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내용에는 여소야대의 20대 국회 상황을 감안해 표결을 막기 위한 방안이 담겼다"면서 "당정 협의를 통해 여당(한국당) 의원이 표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있으며,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통해 의결정족수 미달 유도 계획을 수립했다"고 전했다.

계엄사령부가 '집회 시위 및 반정부 정치활동 금지 포고령'을 선포하고, 이어 이를 위반할 경우 구속 수사 등의 엄정 처리방침을 담은 경고문을 발표한 뒤, 이를 어긴 국회의원은 집중 검거한다는 시나리오까지 마련했다는 게 김 대변인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계엄에 반대하는 국회의원은 모조리 구속시켜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할 수 없도록 원천봉쇄할 방안을 기무사가 세워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절차상 흠결이 없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웠음을 알 수 있다.

김 대변인은 "문건의 중요성과 관심에 비춰볼 때 국민에게 신속하게 공개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 생각했다"며 "이 문건의 위법성과 실행계획 여부, 배포 단위 등에 대해 국방부 특별수사단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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