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마솥 더위가 이어지는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물줄기가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다.
[신소희 기자]지난 12일부터 하루 최고기온 33도 이상의 폭염이 8일째 이어지면서 각종 사건사고가 잇따르고 관련용품 매출이 늘어나는 등 일상생활이 뒤바뀌고 있다.

지난 20일 기상청이 오후 4시까지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측정한 낮 최고 기온은 창녕이 39.3도로 가장 높았다. 이러한 무더위는 전국적으로 장마가 평년보다 일찍 끝나면서 폭염과 열대야 현상이 일찍 시작됐기 때문이다.

기압계 흐름이 매우 느린 상태에서 뜨거운 공기가 ‘열돔’에 갇혀 쉽게 빠져나지 못해 더위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특히 주말인 21일과 22일부터는 제10호태풍 암필의 영향을 받아 더욱 무더위가 심해질 전망이다.

'더우면 즐겨라'라는 옛말은 이제 사라진지 오래, 한낮 더위를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전철이나 마트, 커피숍, 복합쇼핑몰 등으로 피하는 ‘몰캉족’, 시원한 사무실이나 안방에서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는 ‘배달족’이 늘고 있다. 늦은 저녁에 운동을 시작하는 ‘올빼미족’도 많아졌고, 아예 텐트를 들고 도심 계곡으로 떠난 ‘출퇴근 텐트족’도 등장했다. 축제를 연기하거나 무더위 낮을 피해 밤에 축제를 여는 곳도 늘고 있다. 

간단한 가재도구를 챙겨 도심 계곡에 텐트를 치고 출퇴근하는 텐트족이 생겨났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와 파계사, 도학동 일대에는 100여 개의 텐트가 등장했다. 이들은 찜통더위와 열대야를 피해 텐트 생활을 하면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서울 한강 주변에도 텐트족이 늘고 있다. 에어컨이 없는 집에서는 열대야를 피해 차에서 에어컨을 틀고 자는 사람도 있다.

인천에서는 낮 시간대 전철을 타는 노인이 부쩍 늘었다. 올해 전철 무임승차권을 받은 김모(여·65) 씨의 경우, 또래 친구들과 오후 시간을 에어컨이 나오는 전철을 타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심에서는 26도로 냉방을 조절하는 공공기관이나 백화점·은행보다 더 시원하게 냉방을 하는 카페나 마트에 손님이 몰리고 있다.

운전자들은 부풀어 오른 아스팔트에 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조심이다. 지난 16일 서해안고속도로 서울방향 순산터널 부근에서는 폭염 탓에 콘크리트가 팽창, 도로가 솟아오르는 현상이 발생해 이곳을 지나는 운전자들은 운행 속도를 줄이고 있다. 평소 서해안고속도로를 자주 운행하는 최모(65) 씨는 “더위 탓에 언제 어느 곳의 노면에 이상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보다 운행 속도를 늦추고 있다”고 말했다.

저녁은 배달음식이나 외식으로 해결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사는 서모(37) 씨는 “폭염과 열대야로 아내가 ‘뜨거운 열기가 나오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요리를 못 하겠다’며 파업을 하다시피 해 배달음식이나 외식이 잦아졌다”고 말했다.

20일 문화일보는 늦은 밤에 운동하는 올빼미족도 부쩍 늘고 있다며 "울산 남구 최모(47) 씨는 평소 저녁 운동으로 오후 6시 30분쯤 자전거를 탔지만, 최근에는 너무 더워 운동을 포기하거나 기온이 30도 이하로 떨어지는 8시 이후로 운동시간을 늦췄다. 광주 동구 운림중학교 운동장에도 열대야로 저녁 늦은 시간 걷기운동을 하는 주민 수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 연일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고 있는 17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수성못에서 시민들이 분수쇼를 보며 무더위를 식히고 있다.
사건 사고와 에피소드도 속출

최악의 무더위에 사건 사고와 에피소드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의 한 버스에선 더위를 참지 못한 승객이 신발과 양말을 모두 벗는 바람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아무리 더워도 공공장소에서 맨발은 너무한 것 아니냐”는 항의가 쏟아졌지만, 맨발 차림의 승객은 “내가 내 양말 벗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적반하장으로 반응했다. 지하철에서는 약한 냉방차 칸을 피하기 위한 눈치 싸움도 치열하다.

그러나 계곡과 바다 등 피서지를 찾은 행락객과 더위에 약한 노인들의 인명피해도 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온열질환 감시체계 운영결과'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16일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총 633명으로 이 중 65세 이상이 26.4%(167명)였다. 사망자는 총 6명 발생했는데 이 중 5명(83.3%)이 70~80대 노인이었다. 더위가 계속되면서 계곡과 바다로 떠난 피서지에서 인명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9일 오전 6시 27분께 강원 인제군 북면 원통리에서 동료들과 텐트를 치고 야영하던 40대가 하천에 빠져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날 오전 4시 18분께 속초시 대포동 대포항에서도 20대가 수영을 하다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지난 15일에도 양양군 손양면 석계리에서는 80대 노인이 개울로 수영하러 갔다가 물에 빠져 숨졌다.

폭염이 계속되면서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일선 학교에서는 단축수업도 이뤄지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19일 기준 단축 수업을 한 학교는 중학교 29곳과 고등학교 9곳을 포함한 총 38개교에 달했다.

이는 지난 16일 14개교에서 세 배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17일에는 28개교, 18일에는 31개교로 단축수업 학교가 늘어났다.

소비자들의 구매패턴도 뒤바꼈다. 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주요 편의점들의 심야시간 얼음컵 매출은 전주 대비 평균 40% 이상 증가했다. 생수·탄산음료도 두자릿수 이상 뛰었으며 아이스크림과 맥주도 20% 이상 늘어났다.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의 24시간 운영 매장 매출도 15%에서 20% 가까이 뛰었다.

인터넷쇼핑에서는 더위를 식히기 위한 쿨링 제품들의 판매가 늘어났다. 얼굴과 목 등에 붙이는 다이소 쿨링 시트는 지난 한주간 1000개씩 팔려나갔다. GS홈쇼핑과 마블이 공동으로 출시한 ‘어벤져스 손풍기’도 벌써 10만대 판매고를 기록했다.

21일 한 네티즌은 "이달말에서 내달초에 더 더워질 것이란 예보를 들었다"며 "지구를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재미있는 글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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