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10·26 사건(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사진>의 사진이 다음 달 국군기무사령부 후신으로 창설되는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내걸릴 것이라고 7일 경향신문이 보도했다.

매체는 잘못된 역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앞서 역대 사령관 사진 중 제16대 보안사령관을 지냈고 10·26 사건을 일으킨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것은 없다. 기무사는 2월 초 정치중립 준수를 선언하면서 김재규 전 사령관 사진을 부대 내에 다시 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프레스 가이드라인’(PG)을 작성해 국방부에 보냈다. 이 내용이 한 언론에 보도된 후 기무사 예비역 장성들의 시비성 전화가 잇따랐고, 기무사는 “김재규 전 사령관 사진을 거는 방안을 검토한 바 없다”고 입장을 180도 뒤집었다.

하지만 국방부는 역대 지휘관 사진물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담은 ‘국방장관 및 장성급 지휘관 사진 게시’ 규정 등 부대관리훈령 개정(안)을 장차관 보고를 거쳐 이달 중 시행할 것으로 6일 알려졌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역사적 사실의 기록 차원에서 역대 지휘관 사진은 전부 게시하도록 했다”며 “군 역사를 군 일부 세력의 입맛대로 재단하는 것을 방지하면서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자 하는 차원”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기무사 전신인 육군 보안사령부의 제16대 사령관을 지낸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은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걸리게 됐다. 김 전 중정부장이 지휘했던 육군 3군단과 6사단 등 부대들도 역대 지휘관 명단에 그의 사진을 걸 수 있게 됐다.

군은 전두환 군부 반란세력이 실권을 잡은 12·12 사건 이후 김 전 중정부장 사진을 전 군부대에서 떼어냈고, 김 전 중정부장이 거쳤던 부대의 기록물에서도 그의 이름을 삭제했다. 기무사는 지난 2월 초 정치중립 준수를 선언하면서 보안사령관을 지낸 김 전 중정부장 사진을 부대 내에 다시 걸려고 했으나, 기무사 예비역 장성들의 반발이 잇따르자 이 같은 결정을 철회했다. 그러다 보니 영관장교들조차 김 전 중정부장이 장군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인 줄 아는 경우가 많다.

국방부는 또 예우 및 홍보 목적의 경우 ‘부패 및 내란·외환죄 등으로 형이 확정된 지휘관’ 사진의 부대 홍보관 게시는 금지한다는 방침이다.

20대, 21대 보안사령관을 각각 지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사진의 군사안보지원사령부 홍보관 게시는 금지될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 모두 내란죄로 형을 살았기 때문이다. 다만 재임 기록의 의미로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역사관이나 회의실 등에 걸어둘 수는 있다.

한편 일제 헌병경찰 통치의 대표적인 ‘앞잡이’로 악명높은 인물이 바로 김창룡 예비역 육군 중장이다. 그는 1941년 일본 관동군 헌병보조원으로 근무하다 나중에 헌병 오장(伍長)으로 특진했다. 해방 이후에는 김구 선생 암살범 안두희 배후로 거론됐고 특무부대장(현 국군기무사령관)을 지냈다. 안양 사설 묘역에 있던 그의 묘는 1998년 기무사 노력으로 대전국립묘지로 이장됐다.

김창룡 예비역 중장 사진은 국군기무사령부에 5대 사령관 자격으로 역대 사령관 사진(존영)과 함께 걸려 있다. 기무사에는 부부 사기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장영자씨의 남편 이철희씨(11대 사령관·육군방첩부대장), 전역 후 사학비리를 일삼다 구속된 백인엽씨(2대 사령관·특무부대장) 등도 걸려 있다. 대법원이 반란수괴, 내란 목적 살인 등을 저지른 것으로 판결한 전두환(20대 사령관)·노태우(21대) 전 대통령의 사진도 나란히 내걸려 있다.

장군 수에 목숨 거는 육군총장

▲ 경향신문 캡쳐
최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육군 6사단장과 3군단장을 지냈다. 그가 거쳤던 부대의 역대 부대장 사진에서도 그는 빠져 있다. 부대 역사 문서에서도 그의 이름을 ‘파버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 보니 요즘 영관장교들조차 김 전 중정부장이 장군이 아니라 민간인 출신인 줄 아는 경우가 태반이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도 김 전 중정부장 사진이 시사하는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육군은 철저히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역시 신군부 반란이 역사적 흐름에서 불가피했다고 여기는 선배 장군들을 의식한 탓이라는 게 중론이다. 아마도 육군 수뇌부는 김 전 중정부장의 사진이 다시 내걸리면 ‘군이 정권을 창출했다’는 자부심과 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으로 간주하는 듯싶다.

육군은 개혁차원에서 아직도 일제강점기 헌병을 떠올리게 하는 ‘헌병’ 명칭을 바꾸겠다고 나섰다. 일본군 헌병으로 인해 사찰 등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는 ‘헌병’이라는 병과 명칭을 군경(軍警)·군경찰(軍警察)·경무(警務) 등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무’라는 명칭은 육군본부의 한 고위 장성이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군경찰이라고 하면 일반인도 쉽게 그 고유 업무를 이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경무’를 선택하려 하는 것은 무언가 특수한 조직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군기무사령부도 마찬가지다. ‘기무’라는 명칭은 조선말기 고종이 국정을 총괄하기 위해 설치한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과 갑오개혁(1894) 당시 정치·군사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맡아보던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서 가져온 용어다. 이 관청은 군국 기밀과 일반 정치를 총괄하던 관청으로, 그 장관을 총리대신으로 했다. 기무사 홈페이지에서 밝히고 있는 ‘중요하고도 기밀한 정무(政務) 등의 의미’는 오히려 기무는 모든 업무를 다 관장한다는 의미로도 읽혀진다.

이처럼 육군은 과거 유산에서 온고지신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과거 영화에 집착한다는 인상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육군사관학교는 최근 개교 이래 처음으로 연구실적 미흡을 이유로 교수를 해임했다. 육사가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했고, 군 개혁 차원에서 의미 있는 조치였다. 그러나 육군은 이 같은 육사의 조치를 지지하기보다는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려 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요새 육군 기류는 국방개혁에 관한 사항은 참모총장 혼자만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로 읽혀진다. 아마도 육군 수뇌부는 국방개혁의 주요 핵심 사항이 해·공군보다는 육군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중구난방식으로 개혁 얘기가 나오면 불리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육군 개혁의 최종 타깃은 육군 장성 수 줄이기로 귀결된다고 여기는 듯싶다. 육군 내부에서는 육군 장성 숫자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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