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바람직하지 않다. 남녀를 떠나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걸 표현해야 한다."

미국 팝 신예 빌리 아일리시(17)는 새롭게 부상한 '걸크러시' 뮤지션이다. 열린 생각과 화끈한 발언 등으로 여성들의 환심을 사고 있다. 주로 박시한 옷을 입는 스타일로도 주목 받는다. 

15일 예스24 라이브홀에서 펼친 첫 내한공연은 매진됐다. 관객은 10, 20대 여성 팬들이 주축이다. 올해 한국을 찾은 걸크러시 뮤지션들인 팝스타 두아 리파(23), 할시(24)를 지지한 열기가 이어지고 있다. 

아일리시 역시 "젊은 여성 뮤지션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추세 같다"고 인정했다. 젊은 여성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지지해주는 팬들도 많은 반면, 한편에서는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경우도 많다고 봤다. "같이 힘을 합쳐야 한다. '여성 혐오'의 문제도 있는데, 서로를 비난하면 안 된다. 함께 일어나야 한다."

여전히 한국에서 여성들이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는 귀띔에 "정도의 차이지만 미국을 비롯해 어디서든 똑같이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아일시리시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무엇이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남들이 원하는대로만 산다면 얼마나 우울할까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죽고 혼자만 살아남았을 때 본인이 만들어놓은 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뮤지션인 어머니의 재능을 물려 받은 아일리시는 열한 살 때부터 재미 삼아 음악을 만들었다. 오빠와 함께 만든 '오션 아이스(Ocean Eyes)'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에서 주목 받으면서 이름을 알렸다. "엄마는 커리어를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프로 음악가였다. 엄마를 너무 사랑하는 것이 곡을 만드는데 동기부여가 됐다."

 
네 살 터울의 오빠와 곡을 쓰는 경쟁이 붙기도 했다. "오빠는 곡을 쉽게 잘 풀어쓴다. 반면 난 작업을 어렵게 한다.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한다. 머릿속에 너무 많은 아이디어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이것을 다 풀어쓰는 방법을 찾느라 오래 걸린다. 스마트폰에는 물론 메모장, 집의 벽까지 다 써놓은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그것을 풀어내는 것이 내게는 노래가 된다."
   
멜로디를 비롯 언뜻 보면 아일리시의 노래는 발랄하게 들린다. 하지만 허점을 지르는 날카로운 노랫말이 돋보이는 곡들로 마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다. 자신과 또 다른 자아에 대해 노래한 '아이 돈트 원트 투 비 유 애니모어'(Idontwanttobeyouanymore), 마음속에 똬리를 튼 우울함에 대한 '러블리' 등이 보기다. 
  
 "음악이 직접적인 치유로 작용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감정을 표출하는 창구다. 그런 감정에 사람들이 공감을 하는 거다.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는 우울함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을 인정하고 극복하는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이 그런 감동을 매개한다."

몽환적인 목소리가 매력적이라는 칭찬에 "목을 혹사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등 조숙한 면모를 보이는 아일리시는 "지금보다 나이가 더 들어본 적이 없어 내가 조숙한 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에메랄드 빛 눈동자의 아일리시는 최근 머리 일부를 비슷한 색으로 물들였다. "지루한 것을 싫어해서 머리색을 자주 바꾼다"는 그녀는 음악도 장르를 딱 잘라 구분해서 듣는, 이분법적인 태도보다는 분위기 자체를 즐긴다고 했다.

 "K팝 중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당연히 안다. 'BTS'(방탄소년단)도 안다." 방탄소년단의 RM은 소셜 미디어에서 아일리시를 주목하기도 했다. "'강남스타일'은 정말 대단했고, BTS가 주목해줘서 고마웠다. 장르를 굳이 따지지 않고 들어서 그 외에도 K팝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이번 방한에서는 공항과 호텔, 공연장만 오가는 스케줄이어서 한국을 좀 더 알아내지 못했다. "한국 음악 팬들이 떼창을 하고, 열기가 대단하다는 건 이미 숱하게 들었다. 다음에 한국에 오면 구석구석을 많이 구경하고 싶다. 빨리 다시 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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