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희 기자]"어느 나라나, 쓰레기 싸이트 있는 법이고, 10명있으면 1명은 싸이코혹은 싸이코패스인거임. 걍 그런가 보다하면됨. 다른 나라어떤가 궁금하면 일본 혐한싸이트나 러시아 극우싸이트 한번 가보던가..한국애들 걍 별명정도 놀리는거 엄청 귀여운거일껄.. 혐한싸이트엔 재특애들 배갈라죽이고 지진났으니 죽창 찔러죽이자란 거 넘치고, 유럽 극우싸이트는 대놓고 아시아애들 상대 범죄 짤들 올라온다. 한국애들 다시말하지만 엄청 얌전한거야."

'맘충·틀딱충·한남충'등 끝없이 이어지는 '악의 꽃' 혐오 신조어에 대한 한 네티즌의 댓글이다.

특정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에 일단 '벌레 충'(蟲)을 붙이기만 하면 상대를 비하할 수 있다. 이 말은 극우에 여성혐오 성향을 띈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저장소의 회원을 지칭하는 '일베충'에서 시작됐다. 이후 '맘충' '급식충' '틀딱충' 등으로 확장했다. '맘충'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급식충'은 학교 급식을 먹는 중고등학생들을, '틀딱충'은 틀니를 착용한 노인을 모욕적으로 깎아 내린다.

차별받는 집단만이 아니라 행위·특성 등을 겨냥한 단어들도 이용되고 있다. 어떤 사안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사람을 '진지충'이라고 하는 식이다. '설명충', '맞춤법충', '문법충' 등 성격적인 면에서 상대를 비꼴 때 쓰이게 된다.

익명을 무기로 혐오 표현이 기승을 부리는 온라인 전장(戰場)에서 네티즌들은 다양한 혐오 표현을 쏟아내며 서로를 깎아내리는 데 혈안이 돼있다.

"혐오가 아니라 놀이일 뿐"

서울에 있는 중소 제조업체에서 영업직을 맡고 있는 3년차 사원으로, 부모님·남동생과 함께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에서 전세로 사는 평범한 30대 초반 남성 박정훈(32·가명)씨. 정중하게 인사하고, 차분히 말을 이어가는 그를 보면 최소한 겉모습만으로는 이른바 '일베충(일베+벌레 충의 합성어)'이라고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먼저 박씨에게 '일베를 왜 하느냐'고 물었다.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재밌어서요." 박씨는 "요즘 재미가 좀 떨어지긴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진짜 빵빵 터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좀 착각을 하는 것 같아요. 무슨 극우주의다, 여성혐오다, 그러는데 웃기고 재밌어서 하는 거라니까요. 일베를 무슨 목적이나 목표를 가지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이번 인터뷰 대상을 정한 기준은 이렇다.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에 매일 수차례 접속해 일주일 7건 이상의 '짤방(사진이나 그림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이나 글을 올리고, 다른 게시물에 10차례 이상 댓글을 다는 회원. 이 정도 활동량이면 충분히 일베의 '혐오 생산'에 기여한다고 판단했다. 박씨가 딱 그런 회원이었다.

"일단 출퇴근하면서 봐요. 댓글도 달고요. 일이 널널한 날에는 업무시간에도 자주 보고요. 글은 보통 집에 가서 올리죠."

그가 일베를 드나들기 시작한 시기는 약 5년 전 취업 준비를 시작했던 시기다. 대학 생활이 마무리 되고 본격적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자 삶은 예상보다 더 팍팍했다. 뭐라도 준비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평소보다 배로 늘어나던 때였는데, 그때 일베를 알게 됐다. 

 
"인터넷 서핑하다가 저 스스로 찾아들어간 거죠. 첨엔 이게 뭔가 싶었는데, 계속 보게 되더라고요. 쾌감이 있었달까요. 전 노무현을, 전라도 사람을, 여자도 싫어한 적이 없어요. 그런 것보다는 일베에서는 그냥 싸잡아 욕하고 저격하고 그러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속 시원했던 것 같아요. 공감 가는 글도 꽤 있었고요."

박씨는 5년 전 무렵부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일 일베에 접속한다. 외국에 휴가를 가서도 일베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박씨는 취업 준비 시기를 '최악의 흑역사'라고 표현했다. 그는 소위 '인(in) 서울' 4년제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취업에 애를 먹었다. 입사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들을 그도 나름 성실히 해나갔지만, 목표했던 대기업에는 다 떨어졌다. 결국 서른을 목전에 두고서야 계획에 없었고 원한 적도 없던 중소기업에 들어갔다. 취업 문제로 아버지와 수차례 다퉜고, 관계도 소원해졌다.

'여자친구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래저래 만나는 여자는 있지만, 여자친구는 없다"고 했다. "최근에 소개팅을 자주 하고 있다"며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은 지 3년이 조금 넘었다"고 덧붙였다. 

"저도 그런 면이 있겠지만, 대체로 요즘 여자분들이 이것저것 많이 따지잖아요. 물론 안 그런 분도 있겠지만…아무튼 그래서 요새 연애가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박씨는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한 이유를 자신이 취업을 못했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현 직장에 대한 불만과 헤어진 여자친구를 향한 원망을 직간접적으로 수차례 언급했다. 또 우리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종류의 열패감이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각종 혐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게 각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시스템이 가진 문제 혹은 개인의 욕망 실현 실패의 책임을 적극적으로 남 탓으로 돌리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베는 이러한 혐오 행위의 중심지로 인식된다. 그러나 박씨는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실패가 일베 로그인으로 이어진 게 아니라 실패를 경험했던 시기에 일베에 접속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뭔가 짜증 나는 일이 있을 때 일베에서 더 오래 논다"며 "더 센 글 올리고 반응 보고, 저도 같이 댓글 달고 욕하면 순간적으로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했다. 그러나 박씨는 또 한 번 "난 누구도 혐오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엔 다들 자주 가는 인터넷 커뮤니티가 하나씩은 있어요. 일베는 그 중 하나일 뿐이죠. 콘셉트가 더 명확하고, 표현이 솔직할 뿐이죠. 사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도 다 똑같아요. 일베나 워마드의 혐오가 어쩌고 하는 기사를 보면 전 솔직히 우스워요. 우리나라 모든 분야가 다 그렇잖아요. 정치권은 안 그런가요? 문슬람(문재인 대통령의 극성 지지자를 비하하는 용어)과 일베가 뭐가 다른데요? 우리는 패배자이고, 그들은 정권 교체의 주역인가요? 워마드도 그렇죠. 그들은 페미니즘이고, 일베는 쓰레기인가요? 걔네도 우리랑 똑같다고요. 그냥 욕하고 노는 게 좋은 거예요. 게다가 일베를 오래 보고 있으면 일리가 있는 내용을 담은 글들이 꽤 있어요. 사람들은 그런 건 보려고 하지 않아요."

박씨는 '일베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묻자 "왜 하면 안 되느냐"고 되물었다. "이건 그저 커뮤니티에 불과하다"며 "다만 조금 거친 표현을 사용하는 곳일 뿐"이라고 일베를 옹호했다. 이어 "누구나 불만을 말할 수 있고, 일베를 문닫게 하거나 일베 회원 모두가 잠재적인 범죄자라면 인터넷 자체를 없애야 한다"고도 했다. 단식 중인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치킨을 먹는 행위도 단순히 '놀이'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묻자 "걔네는 진짜 쓰레기이고, X신"이라고 일갈했다.

관심종자, 박씨는 일베 회원을 이렇게 표현했다. 혐오라고 표현하는 행위들은 관심을 먹고 자란다는 게 그 나름의 분석이었다. 특정 정치적인 성향을 가졌거나 특정 지역과 인물에 대한 비하를 목적으로 하고, 여성에 대한 악감정을 실제로 가진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그로(억지 주장 등으로 관심을 끄는 행위)'를 끌어 댓글이 줄줄이 달리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란다. "걔네는 진짜 한심해요"라고 박씨가 말하며 비웃었다. 그가 일베에서 하는 일이 어그로와 어떻게 다른지, 왜 혐오라고 할 수 없는지에 관해서는 답변을 회피했다. 

"재밌어서 일베를 하고 , 내가 하는 건 놀이일 뿐"이라고 했던 박씨는 사진 촬영은 극구 거부했다. 실명도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혹시나 자신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 또한 빼달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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