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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17】한국어를 사랑한 일본인 학원 강사의 안타까운 죽음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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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14  09:5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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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 고시원 화재 현장
[김승혜 기자] "나 따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13일 일본인 O씨(53)를 회상하는 국일고시원 주인 구모(69)씨의 목소리가 떨렸다. O씨는 지난 9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참사로 희생된 7명 중 유일한 외국인이다.

O씨는 국적은 일본인이지만 한국에서 15년 이상 산 반(半) 한국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업을 소개하는 인터넷 게시글에서 "한국어가 좋았고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한국에 오게됐다"고 적었다.

국일고시원에 둥지를 튼 것은 7~8년 전. 구씨는 "예전에 운영했던 고시원에서부터 알았는데 국일고시원으로 옮기니 나를 따라왔다"고 말했다.

종로로 거취를 옮긴 2011년께부터는 종로 인근 여러 일본어학원에서 강사로 일했다고 한다. 

말끔한 외모에 외부 활동이 활발했던 O씨의 고시원 생활을 아는 이는 많지 않았다. 그가 왜 굳이 고시원에서 지냈는지도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2011년 O씨와 강사와 학생 관계로 만났다가 2년 후 함께 강사로 근무하기도 한 신모(48)씨는 "외모가 깔끔하고 단정했다. 나이에 비해 젊어보여서 안정됐다고 생각했다"며 "번역 일과 한일교류 활동도 함께 하고 있었다"고 떠올렸다.

   
▲ 11일 오후 화재가 일어난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앞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들이 놓여 있다. 한 시민이 꽃을 놓고 있다.
O씨는 1년여 전부터 종로와 강남 일대 어학원 두 곳에서 수업을 이어갔다. 한 곳에서는 일요일을 제외한 평일 모두 수업이 있었고, 다른 곳에서는 주말 하루 수업을 진행했다. 13일 찾아간 학원 게시판에는 이번달 O씨의 수업계획이 여전히 인쇄돼있었다. O씨는 학원 수업 외에도 개인적으로 1대1 일본어 회화 과외도 했다.

주위 사람들은 O씨를 조용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신씨는 "O씨가 다른 선생들과 교류가 적었고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일고시원 3층에 거주했던 이모(60)씨는 "오후 10시께 거의 매일 복도에서 마주쳤다"며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인상이 순했고 착해보였다"고 회상했다.

O씨는 한국에서 결혼한 부인과 세 자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참사 직후 강북삼성병원으로 이송된 O씨의 시신은 해당 병원에 영안실이 없어 유족의 뜻에 따라 가평으로 옮겨 빈소가 차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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