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오마이뉴스 갈무리
[김홍배 기자]지난해 3월 24일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 둘째형 이재영씨가 지난 23일 "둘 다 내 동생이고, 어머니에게도 미우나 고우나 자식인데…."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난 2014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가족 문제를 정치에 악용하지 말아 달라"는 가족 호소문을 발표한 지 3년 만이다.

이른바 '이재명 형수 욕설' 논란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 불거졌기 때문이다.

이 시장 셋째형 이재선씨는 지난 2012년 6월 이 시장이 형수에게 욕설하는 내용이 담긴 전화녹음파일을 한 지역 언론과 인터넷에 공개했다. 당시 이재명 시장은 욕설한 건 인정하면서도 어머니를 욕하고 폭행하는 친형 부부의 '패륜' 때문이라며 자신의 가족사까지 SNS에 낱낱이 공개했다.

다음은 이재명 지사가 2016년 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의 슬픈 가족사..'이재명 형수 쌍욕'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올리글 전문이다.

경북 안동 영양 봉화 접경인 심심산골, 안동군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이 내가 태어난 곳입니다.

7남매를 데리고 산전을 일궈 살던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을 나가시고, 어머니 혼자 7남매를 키우셨지요.

어머니는 남의 밭일 대신해주고 겉보리 한 되 좁쌀 한 됫박씩 얻어먹으며, 사람이 굴러내릴 정도의 급경사 산비탈을 일군 산밭에서 키운 감자로 어린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셨습니다.

자식들과 살아남기 위해 어머니는 감시원 눈을 피해 막걸리를 빚어 농사일이 끝난 밤에 술장사를 하셨고, 가끔 장에 나가 진통제 가스명수 같은 간단한 의약품을 떼어다 파는 약장사까지 하셨습니다.

젊은 나이에 홀 몸이 되어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힘겨운 삶을 사시면서, 늦은 밤 방구석이나 새벽의 부엌에서 텃밭에 쭈그리고 앉아 우시던 어머니 모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방안의 물그릇이 꽁꽁 어는 ‘소개집’에서 자식들 추울까봐 새벽에 일어나 군불을 때주시던 어머니가 어느 날부터인가 아궁이 앞에 쪼그려 앉아 담배까지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일찍부터 흰머리가 나신 어머니의 점점 희어져가는 머리카락만큼이나 쭈그러져만 가는 어머니..

감기몸살이 나면 어머니는 약을 아끼려고 내게 ‘객귀물리기’를 시키셨지요.
어머니가 몸져 누우면 나는 으레 숫돌에 식칼을 간 후, 칼끝을 어머니 앞니 사이에 세우고 숫물을 칼날에 흘려 넣으며 어머니가 시킨 대로 ‘객귀야 물렀거라’를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숫물을 여러 번 마신 어머니는 희한하게도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못쓰게 된 칫솔로 어머니 흰머리를 염색해드리고, 감자를 깎고,
어머니를 따라 돌이 굴러 내리는 깊고 깊은 산골짜기 밭에 가 비지땀 흘리며 콩밭 잡초를 뽑고 감자를 캐면서도 오직 어머니와 함께 다니는게 즐겁기만 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모든 걸 버리는 어머니가 애처롭고 불쌍하고 고맙고, 어머니 없는 세상이 무서워 어머니 돌아가시면 나도 따라 죽겠노라 마음속으로 맹세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나의 전부였습니다.

1976년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성남으로 이사를 왔습니다.
반 지하 단칸방에 9식구가 오글거리며, 다시 결합한 아버지는 상대원시장 청소부로 일하시고, 어머니는 초등학생인 여동생을 데리고 시장화장실을 지키며 10원 20원 이용료를 받아 생활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화장실 앞에 앉아 남자손님에게 돈받는 걸 정말로 싫어하셨지만 그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었습니다.

온 가족이 진학을 포기하고 전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살기위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난 후 아버님은 청소부로 일하다 얻은 병으로 55세 짧은 생을 마감하셨고, 큰형님은 건설노동자로 일하다 한 쪽 다리가 잘리는 산재사고를 당했으며, 누님은 여전히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둘째 형님은 청소회사 직원으로, 동생 둘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데 기가 막히게도 여동생은 2년 전 새벽청소를 나갔다가 과로로 화장실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분당에서 ‘야구르트 아줌마’이던 여동생은 딴 일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오빠가 시장 당선되었다고 좋은데 가느냐“는 말 듣기 싫다며 야쿠르트 배달을 계속하다, 내가 재선된 후에야 그나마 좋은 직장이라고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2014. 8월에 저보다 먼저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최종학력이 제일 높은 사람이 중졸이었습니다.
대부분 초등학교를 겨우 마쳤고 나 역시 초등학교 졸업후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어머니는 학교 대신 공장을 가는 어린 내가 불쌍하다고 한손에는 도시락을 들고 한손은 내 손을 잡아 공장까지 바래주시곤 했습니다.
저를 공장까지 바래주고 돌아가시는 길에 눈에 미끄러져 낙상을 입어 고생하시던 어머니..

소년공으로 공장을 다니며 산재사고로 팔이 비틀어지고 후각을 잃는 장애인이 되었지만 군복을 입고 군기 잡는다며 출퇴근때마다 ‘빳다’를 치는 관리자가 부럽고 맞기싫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춘기 장애소년으로 아침마다, 교복입고 학교 가는 학생대열을 거슬러 기름때 묻은 작업복에 공장으로 향하는 내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스스로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습니다.

두 번의 자살시도가 실패한 후 죽을힘으로 살자며 목숨 걸고 공부해 장학금에 생활보조비까지 받으며 대학을 갔습니다.
가장 커트라인 높은 학과를 선택했고, 그래서 사법시험을 공부했고, 그후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어 마침내 여기까지 왔습니다.

대학에서 받는 공장노동자 월급의 몇배에 이르는 생활보조비로 집에 생활비를 보태면서 정비공으로 일하던 셋째 이재선형님에게 공부를 권유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내 장학금으로 공부한 형님도 좋은 성적으로 생활비를 받으며 대학을 갔고 공인회계사도 합격했습니다.

그때까지는 모두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 셋째 형님이 결혼후 서서히 가족들과 발길을 줄이고, 명절은 물론 어머니 생신 아버님 제사까지 불참하며 남이 되어갔습니다.

이 형님부부는 저에 대한 시기질투심, 열등감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이게 지나쳐 병적증상으로 변하더니 '내가 부처 예수보다 위대하다'며 이상행동을 시작했고, 형수는 이를 제지하지 않은 채 오히려 시댁과 형님 간의 갈등을 부추기기에 바빴습니다.

결국 셋째 형님부부는 용서할 수 없는 패륜행위를 저질렀습니다.

어처구니없게도 성남시장후보직 양보를 바라던 이 형님은 불법문자메시지를 대량발송하는 등 내 선거를 방해하다 2010년 내가 시장선거에 당선되자 취임식장에 청바지에 잠바를 입고 나타나 '가족특별석'을 만들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더니 취임직후부터 이권에 개입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녹지를 훼손해 노인요양시설을 짓는 이권사업에 셋째 형님이 돈을 받고 밀어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업신청이 네 곳이나 들어왔습니다. 큰일이다 싶어 이를 모두 불허하고 규정을 정비해 원천봉쇄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형님이 '시장친형'을 내세우며 공무원들에게 직접 업무지시를 하고 불응하면 폭언을 퍼붓고 직접 백화점 불법영업 단속에 나서는가 하면, 감사관과 비서실장을 통해 공무원 승진과 징계 등 인사청탁을 하고, 관내대학에 교수자리를 마련해 달라는 이권청탁을 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이를 모두 묵살하고 공무원들에겐 통화와 접촉을 하지 말도록 지시했습니다.

여기에 국정원 김과장이라는 자가 ‘이재명이 간첩이라 곧 구속된다’며 부추기고(통진당 사건으로 추측), 새누리당 고위간부가 시의원비례대표공천 언질을 주자 형님부부는 종북시장 퇴진운동을 본격 시작했습니다.

새누리당 의총장 난입, 은행 난동, 백화점 영업방해 등을 벌이던 형님은 급기야 어머니까지 폭행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패륜행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100억 부자라고 자랑하는 형님은 어머니가 가진 노후자금 5천만원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하자 어머니에게 '그 돈 갖고 뒈져라. 뒈져도 상가 집 안간다'는 등 패륜적 폭언을 퍼붓고 완전히 인연을 끊었는데, 2012년 시장면담을 요구하며 비서관과 싸우고 기자들을 대동한 채 시장실앞에서 농성을 하는등 물의를 일으키다가, 근 10년 만에 어머니 집에 쳐들어가 '이재명에게 전화를 해서 바꿔달라'고 했는데 어머니가 거절하자 팔순의 늙은 홀어머니에게 'X할년 개X같은 년'이라며 '집에 불을 질러 죽인다' '다니는 교회에 불 지른다'고 협박했습니다.

겁에 질린 어머니가 내게 전화를 연결해 줘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내 아내에게 형님은 ‘내가 나온 어머니 XX구멍을 칼로 쑤셔죽인다'고 하였고 동석한 형수는 이걸 ‘고도의 철학적 표현’이라 극찬하며 시집식구들을 능욕했습니다.

형님부부를 피하시던 어머니가 주일에 교회에 가자 형님은 교회에 불지르겠다고 해 경찰이 어머니를 집에 모셔 보호하다 저녁에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어머니 집에 난입해 기물을 때려 부수고 어머니를 폭행해 입원시키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어머니 신고로 잡힌 셋째형님 부부가 경찰조사를 받고 나오던 중 이 끔찍한 패륜현장에 도착한 나는 도저히 이 부부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형님과 통화를 시도했으니 형수가 중간에 빼앗아 ‘그 정도 가지고 경찰에 신고하느냐 어머니를 무고죄로 고소하겠다’고 하는가 하면 ‘시어머니 XX구멍을 찢어 죽인다는 건 철학적 비유’라며 약을 올려 심한 말다툼을 했습니다.

당신 아들이 당신에게 XX를 찢겠다고 하면 당신은 어떤 심정이겠느냐, 당신 오빠가 당신 친정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다면 철학적 표현이라고 편들 수 있겠느냐 등의 말다툼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이 패륜의 현장에서 오간 수많은 통화중 일부가 왜곡 조작되어 2012년에 한번, 2014년에 다시 한번, 그리고 2016년 오늘 세번째 시중에 나돌고 있습니다.

다른 건 다 용서해도, 이제 병들고 늙은 내 가여운 어머니를 욕하고 능멸하고 때리는 건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날 그들 부부가 내 눈앞에 있었다면 폭언이 아니라 살인을 했을 겁니다. 당시 함께 있던 둘째형님과 동생들이 오히려 내 정치적 미래를 걱정하며 말렸지만 내 정치적 미래가 어머니에 대한 패륜을 참아 넘길 정도로 중요치 않았습니다.
내게 어머니는 하늘이었고 어머니를 범한 그 짐승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다시 어머니에 대한 흉포한 패륜현장을 직면한다면 인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형님은 결국 정신병증이 심해져 2014. 11. 약 6주간 형수와 딸에 의해 경남 창령의 국립부곡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형님부부는 ‘이재명이 시장권력을 이용해 멀쩡한 형님을 정신병자로 몰아 강제입원 시키려 한다’고 거짓말을 퍼트리고 형수 박인복의 거짓기자회견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올린 후 지금도 같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폭행과 협박, 어머니 접근금지, 음성파일유포금지도 사실인데 부인하니 벌금판결, 접근금지명령서, 음성유포금지명령서를 공개합니다.

어머니를 둘러 싼 패륜과 가족간다툼, 정신질환자를 이용해 정치적 공격을 사주하고 부추기는 국정원, 이 패륜을 사주하고서 오히려 나를 패륜으로 모는 패륜 새누리당에 언젠가 꼭 책임을 묻겠습니다.

혈연이라 어쩌지도 못하는 이 고통..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원만하게 형님부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면 이런 사단은 피했겠지만, 형님부부는 친인척비리범이 되어 저를 더 괴롭혔을 겁니다.

오늘도 모 시장실이 동생비리로 압수수색 당했다는 보도를 보며 가족문제로 인한 고통이 친인척비리보다는 낫다는 위안을 삼아봅니다.

공개되지 말아야할 가족문제가 공개되어 세인들이 눈 흘기는 사이 돌멩이는 커지고 또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회피할 수도 있는 이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바로 불공평과 불공정을 시정하고 기회균등한 나라를 만들어 내 가족 내 이웃 나아가 대한민국 90%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100만 도시 성남시장 가족으로 가능할 수도 있는 혜택이나 이익을 바라지 않고 가난한 서민으로 묵묵히 살아가는 다른 형제자매들과 가족들에게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표합니다.
어머니..
주신 사랑과 희생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게, 꼭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주십시오.
내 하늘 어머니..사랑합니다...

 
다음은 당시 이재명-이재선 형제 갈등에 관한 오마이뉴스 보도 내용이다.

이날 고향 경북 안동 방문길에 전화를 받은 이재영씨는 5년 전 문제가 된 전화 통화 당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사실 그때 셋째(재선)와 내가 먼저 통화 중이었어요.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있었는데 셋째가 내게 먼저 욕을 하니까 참다못한 넷째(재명)가 나서 (전화기를) 빼앗아 그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그때 상당히 오랫동안 통화했는데 녹음 파일 내용은 일부일 뿐이에요. (이재명 시장이) 형수에게 처음부터 욕하진 않았는데 재선이가 내게 먼저 욕을 하고 형수가 전화를 안 바꿔주니까…."

이재명 시장 가족은 모두 7남매다. 아버지 이경희씨는 지난 1986년 위암으로 숨졌고 어머니 구호명(86)씨 슬하에 큰아들 재국(63)씨, 큰딸 재순(61)씨, 둘째아들 재영(59)씨, 셋째아들 재선(57)씨, 넷째아들 재명(53), 다섯째아들 재문(49)씨가 있다.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둘째딸 재옥씨는 지난 2014년 8월 뇌출혈로 숨졌다. 이 시장과 공인회계사인 이재선씨를 뺀 나머지 남매들은 은퇴한 건설노동자(재국), 요양보호사(재순), 청소회사 직원(재영), 환경미화원(재문)으로 평범하게 살고 있다.

네 살터울인 재명과 재선은 7남매 가운데서도 유독 가까웠다고 한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청소년기 공장을 옮겨 다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가고, 각각 변호사와 공인회계사로 '출세'한 인생역정도 빼닮았다. 동생에 이어 건국대 경영학과에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재선씨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단과대 학생회장을 맡는 등 학생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졸업 이후에도 지역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아 1990년대 함께 시민단체에서 활동할 정도로 가까웠던 이들 사이를 처음 갈라놓은 건 '돈 문제'였다.

"둘 사이가 처음부터 나쁘지는 않았어요. 셋째(재선)도 자기 동생 덕에 대학에 가게 된 거라. 성남참여연대(당시 성남시민모임)에서도 같이 활동했는데 넷째(재명)가 정치 현장으로 나간 뒤로 셋째가 욕심이 좀 많았어요. 셋째가 지난 2005-2006년쯤 어머니 집을 팔아 갖고 있던 돈 5000만 원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안 됐던 부분 때문에 갈등이 있었어요. 그게 사실 재명이가 돈을 못 풀게 막은 거예요. 자꾸 빌려주면 돈 간수 안 된다고. 그 일로 둘 사이가 좀 벌어지긴 했어도 왕래는 있었고 어머니와도 의절한 수준도 아니었어요."

성남에서 공인회계사 일을 있던 재선씨 경제사정은 다른 남매들보다 넉넉한 편이었지만, 당시 사무실을 분양받으면서 목돈이 필요했다. 재선씨는 애초 자신과 어머니 명의로 만든 계좌였고, 이미 동생 재명씨도 돈을 빌려간 적이 있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어머니에게 폭언을 내뱉기도 했다. 

친인척 시정 개입 막겠다는 동생과 친형 '평행선' 달리다 '파국'

이재명 시장이 몇 차례 고배 끝에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 둘 사이의 갈등은 더 커졌다. 이 시장이 지난 2010년 7월 취임 직후 전임 시장이 불려놓은 빚을 못 갚겠다며 모라토리엄(지급유예)을 선언하면서 새누리당 시의원들과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친형인 재선씨까지 이 시장을 비판하는 글을 올려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뒤 한동안 잠잠하던 재선씨는 지난 2012년 초 다시 이 시장 비판에 나섰다. 재선씨는 당시 성남시에서 반대단체 집회를 막으려고 관변단체에 사전 집회 신고를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발끈했다고 한다. 이후 재선씨는 성남시청 게시판에 이 문제를 비롯한 이 시장과 성남시정을 비판하는 글을 78개씩 올려 날을 세웠다. 이에 맞서 이 시장쪽도 재선씨가 시장 친형임을 앞세워 각종 이권 개입, 인사 청탁 등을 했다며 시정 개입을 막았다.

"그래도 2012년까지는 서로 왕래했는데 그때 (재선이) 시청 마당까지 가서 농성하고 경원대(현 가천대) 교수 자리 알아봐 달라고 한 것도 그렇고. 내가 미안할 정도였어요. 동생(재명)도 불편했을 거예요."

이재선씨가 녹음한 '형수 욕설'이 퍼진 것도 양쪽 갈등이 첨예하던 상황이었다. 그해 5월 이 시장 수행비서와 말다툼을 계기로 갈등을 빚던 재선씨는 어머니 집을 찾아가 이 시장에게 전화해 말다툼을 벌였다. 어머니는 당시 재선씨가 집에 불을 지르겠다고 폭언했다며, 법원에 100m 이내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해 접근을 막았다.

같은 해 6월 초 이 시장 부인 김혜경씨가 이재선씨 부부를 만나 화해를 시도했지만 그 자리에 나온 이재선씨 폭언은 '어머니 살해 위협'으로 받아들여져 갈등을 더 키웠다. 이재선씨도 당시 이 시장이 자신을 정신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키려 한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재영씨도 당시 형제자매들이 의사소견서를 받아 성남시 보건소에 진단을 신청한 사실은 인정했다.

"셋째(재선)가 제 성질을 못 이겨 막하는 게 있거든요. 욕은 곧잘 하지만 그렇게 심하진 않았는데 성격이 점점 과격해져서 형제자매들이 (이재선씨 쪽에) 병원 진단을 받아보라고 요구했어요. 가족 일이라 숨기고 싶은 심정인데 우리도 오죽했으면 그랬겠어요. 그런데 셋째는 당연히 싫다고 하지요. 상태가 심해져 제수씨(박인복)가 결국 (2014년에) 입원시켰죠."

이재명 시장은 이재선씨가 친모를 폭행한 날 형에게 항의하면서 형수에게 욕을 했다고 해명했는데, 그 전인 6월 초에 녹음한 파일이 먼저 시중에 유포됐다. 친모 폭행 사건이 벌어진 지난 2012년 7월 15일 이재선씨 부부가 어머니 집을 다시 찾아간 것도 이 문제로 중재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장 "폭언 심해져 정신과 치료 시도"... 재선씨 '형수 욕설 파일'로 역공

당시 어머니 집에는 막내동생 이재문씨와 여동생 이재옥씨가 함께 있었는데, 재문씨는 6월 말 녹음 파일 유포 직후 이재선씨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려 서로 앙금이 쌓여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심한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어머니도 전치 2주의 상해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재선씨 쪽은 당시 어머니는 자리를 피해 있었기 때문에 폭행당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도 이듬해 4월 이재선씨의 존속상해(어머니 폭행)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결정했다는 것이다.

이재명 시장은 애초 어머니 쪽에서 존속 상해 혐의로 재선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일반 상해 혐의로 고발 수위를 낮췄을 뿐 실제 어머니 폭행으로 약식기소돼 벌금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어머니를 때리는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재선씨에게) 맞았다고 하고 재선이는 (싸움을 말리는 어머니를) 밀치다가 때리는 것처럼 됐다고 하고 (얘기가 엇갈려요). 그때 재옥이도 어머니도 밀고 말리고 집안이 아수라장이었으니까."

재영씨는 당시 재선씨 쪽에서 존속 상해 혐의가 인정돼 구속되면 공인회계사 자격까지 잃을 수도 있다고 호소해서 자신이 중재했다고 밝혔다.

"(존속상해 건은)그냥 넘어가도 되지 않겠나 싶었어요. 좋은 방법을 찾아보려고 (중재)한 건데, 결국 잘 안된 거죠. (재선씨는) 괜찮다가도 봄-가을만 되면 증세가 더 심해지고."

실제 이재선씨는 지난 2014년 11월 조울증(양극성 정동 장애)을 진단받고 한 병원에 30여 일 입원했다.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이 교차하는 정신장애다. 하지만 이재선씨는 2012년까지는 자신의 정신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당시 형제간 갈등에 따른 충격에다 2013년 3월 교통사고 이후 스트레스까지 더해져 신경쇠약으로 입원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시장 형수인 박인복씨는 지난 1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형수 욕설 논란은)가족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문제"라면서 "2012년 초 이재명 시정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고 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는 걸 막고 이재명의 실체를 알리려고 (형수 욕설 파일을) 당시 새누리당 정치인 등 지인과 언론에 보냈다"라고 말했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청은 그해 8월 이 시장 쪽에서 제기한 대화 내용 공개 및 유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이재선씨쪽에 위반 행위 1회당 50만 원씩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누군가 악의적으로 편집한 '이재명 형수 욕설 파일'이 지난 2014년 6월 지방선거에 이어 지난해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 등 극우보수 사이트를 중심으로 계속 떠돌았다.

한때 노무현 흠모했던 이재선씨, 동생과 맞서려고 '박사모' 전향?

지난해 이재명 시장 대선 출마가 가시화되자 이재선씨도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성남지부장으로 활동하며 갈수록 각을 세우고 있다. 이씨는 심지어 이 시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자신의 부인도 출마시켜 이 시장 낙선 운동을 벌이겠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급기야 이재선씨 부부는 지난해 12월 자칭 '애국보수' 인터넷방송 '신의 한수'에 직접 출연해 당시 녹음 파일과 문자 메시지 등을 공개했다. 이에 이 시장 쪽에서는 지난 12월 말 재선씨가 법원 명령을 어기고 녹음파일 내용을 154차례 유포했다며 7700만 원 배상을 청구했다. 이재선씨도 올해 초 자유한국당(옛 새누리당) 당협위원장인 정준길 변호사를 앞세워 이 시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했다(관련기사: 이재명, '형수 욕설 유포' 친형에 7700만 원 청구).

이재선씨에게 이같은 정치 활동은 2012년 이전과 비교하면 '사상적 전향'에 가깝다. 학생 운동권 출신인 이재선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과거 글과 수백 편의 서평을 보면, 각종 정치사회 이슈에서 진보적 성향이 강했다. 한때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빠져 노 대통령에 관한 책은 거의 빠뜨리지 않고 읽을 정도였고 노 대통령 취임식에 직접 참석하는가 하면 사후엔 봉하마을을 직접 찾기도 했다. 하지만 '진보 시장'인 이재명 시장에 맞서면서 자연스럽게 그 반대편에 있던 새누리당 정치인들, 국정원 직원, 박사모 회원들과 손을 맞잡은 것이다.

박인복씨도 "이재명 시장은 지금까지 욕설을 합리화하려고 자신의 형과 형수를 어머니에게 욕하고 폭행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갔다"면서 "형이 박사모 등 정치 활동을 하게 된 것도 이 시장의 권력과 그 옹호자들에 맞서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재선 형제와 함께 1994년 성남시민모임 결성 초기부터 함께 활동했던 이연중 현 성남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지난 20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1990년대 이재명 시장이 집행위원장, 이재선씨가 감사로 활동할 때만 해도 두 사람 사이는 괜찮았다"면서 "전임 시장(이대엽 전 성남시장)이 친인척 비리로 감옥에 간 탓에 이재명 시장이 자신의 형이 이권에 개입하지 못하게 막으면서 형제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이재선씨의 시정 비판 활동에 대해서도 "이재선씨는 동생이 시장에 당선하기 전에 이미 시민단체 활동을 그만뒀고 그 뒤로 성남참여연대에는 신경도 안 썼는데 (개인적 시정 비판을) 시민단체 활동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면서 "이재선씨도 결국 자기 이익을 챙기려다 잘 안 되니까 (이 시장에게서)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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