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사법농단'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이번 사건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검찰청사로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소환은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된 지난 6월 이후 7개월여만이다.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이 피의자로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것은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오는 11일 오전 9시30분에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라고 4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및 법관인사 불이익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최고 책임자로서 지시하고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지난 2011년 9월에 취임해 2017년 9월에 퇴임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가장 핵심 혐의는 일제 강제징용 민사 소송 개입이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 마찰을 우려해 법원행정처와 직접 접촉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3년,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삼청동 공관에 법원행정처장(2013년 차한성·2014년 박병대)과 윤병세 외교부 장관,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을 불러 소송을 무력화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소송은 이미 승소 취지의 재상고심으로 대법원에 올라와 있던 상태였다.

수사팀은 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의 계획이 실행됐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쟁점이 없던 판결이 기약 없이 미뤄졌고, 대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그만둔 뒤 사법농단 수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해 10월에서야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이미 원고 대부분이 사망해 한 명만 생존해있던 상태였다.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정부와의 사법거래를 시도한 이유는 '상고법원' 등 고위 법관들의 특혜를 위해서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상고법원은 대법원과 고등법원 사이에서 대부분의 상고사건을 전담하는 법원이다. 상고법원을 만들어 대법원의 대법관 자리를 유지하면서 상고법원에 고위법관을 배치해 고위법관의 인사적체를 해소한다는 계획이 양 전 대법원장의 의도였다는 것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상대로 각종 의혹에 관해 전방위 조사를 할 방침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해 6월 각종 의혹에 관해 "재판에 부당하게 간섭한 바 없고 법관에 불이익 준적 없다"며 부인했다.

또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및 옛 통합진보당 의원지위 확인 소송 등 재판에 개입하고 사법행정에 반대하는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는 등의 행위를 한 데 양 전 대법원장이 깊숙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또 사법행정에 반대하거나 비판적인 특정 판사들을 사찰하고 인사 불이익을 가한 의혹에도 직접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판사들의 비위를 축소하거나 은폐해 법원 조직의 위신을 부당하게 지키려한 데 관여한 의혹도 있다.

이 밖에도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및 동향 수집 ▲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등 법원행정처에서 이뤄진 각종 의혹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앞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 전직 대법관들을 잇따라 소환조사했다. 이후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고 이후 보강 조사를 집중적으로 벌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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