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일 전남 함평군 함평읍 돌머리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노을이 황금색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아름답게 물들고 있다.
[김승혜 기자]은퇴 후의 삶, 과연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가

백만기 아름다운인생학교 교장은 첫째는 건강이요, 둘째는 배우자, 셋째는 어느 정도의 돈, 그리고 넷째는 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할 일’과 은퇴‘에 대해 “흔히 은퇴하면 일을 손에서 놓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일은 우리의 생명력을 연장해주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은퇴 후에도 일은 필요합니다. 다만 후반부 생에서는 돈을 버는 일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길 권합니다. 그동안 돈을 모으느라고 뒷전으로 물려 놓았던,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은퇴는 바로 그런 일을 할 기회입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은퇴 후 남은 생을 잘 설계할 수 있는 ‘백서’를 말했다.

다음은 백 교장이 말하는 ‘인생 2막 백서’이다.

이슬람 수피족은 병이 났을 때 먼저 의사에게 가기보다 그 병을 앓았다가 나은 사람을 찾아간다. 더 현실적인 처방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어느 지방에 여행을 간다면 지도나 안내 책자를 보기보다 얼마 전 그곳을 다녀온 사람에게 직접 묻는 것이 더 좋다는 논리다.

은퇴 후 가보지 않은 길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은퇴를 준비하며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의문이 생길 때면 나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에게 묻는 것이 정답을 얻는 방법일 수 있다.

10년 연상의 선배와 차를 한 잔 할 기회가 있었다. 차를 마시면서 앞으로 선배가 걸어간 길을 내가 따라갈 터인데 어떻게 했으면 좋은지 조언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자신은 그리 살지 못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을 가급적 많이 가지라고 조언했다.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 있을 때만이 내면의 자아와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은퇴 후에도 인맥을 쌓으려고 애를 쓰지만 살아갈 날이 많지 않은 사람에게는 복잡한 인간관계가 오히려 짐이 될 수 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조언을 들을 수도 있다.

호주의 호스피스 간호사가 임종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했는데 그들은 다음과 같은 후회를 남겼다.

첫째,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았다.

임종 직전에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그동안 남이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으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둘째, 일만 너무 열심히 했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생필품은 그리 비싸지 않다. 정작 비싼 것은 생활에 그리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사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한다.

셋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했다.

이것도 첫째와 마찬가지로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너무 염려하기 때문이다. 남들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밖에 친구의 우정을 잃은 것과 변화를 꾀하지 못한 것이 그 뒤를 이었다.

세상을 하직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법도 있다. 그들의 유언이나 묘비명을 통해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들이 생전에 염원하며 몸부림쳤던 자취는 묘비명으로 남아 후세에 전해진다. 그러기에 우리는 망자의 회한과 깨달음을 통해 어느 가르침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백년 전쟁 때 영국의 태자였던 에드워드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지나가는 이여, 나를 기억하라. 지금 그대가 살아 있듯이 한 때는 나 또한 살아 있었노라. 내가 지금 잠들어 있듯이 그대 또한 반드시 잠 들리라.”

어느 성직자의 묘지 입구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네 차례”라고 적어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유럽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

“내가 죽거든 나를 땅에 묻을 때 손을 땅 밖으로 내놓아라. 천하를 손에 쥐었던 이 알렉산더도 떠날 때는 빈손으로 갔다는 것을 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다.”

유명한 헨리 8세의 딸로서 왕위에 오른 엘리자베스 1세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훌륭한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영국의 왕정을 반석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그 역시 묘비명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말을 남겼다.

“오직 한순간 동안만 나의 것이었던 그 모든 것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수십 년 동안 규칙적으로 산책했다. 사람들은 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간을 짐작했다고 한다. 그랬던 칸트도 임종이 가까워지자 침대에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먹을 수도 없었다. 하인은 칸트가 목이 마를까 봐 설탕물에 포도주를 타서 숟가락으로 조금씩 떠먹였다. 어느 날 칸트가 더는 그것을 마시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이제 그만”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칸트가 남긴 마지막 말이다.

교보문고가 발표한 세계문학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50~60대가 꼽은 1위 작이 ‘그리스인 조르바’였다.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건네는 자유와 해방의 목소리가 좋았나 보다. 그의 뜻은 묘비명에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몇 년 전 시애틀타임스는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여성 작가 제인 로터의 부고를 실었는데 이 부고를 쓴 사람은 바로 작가 자신이었다. 그는 삶이란 선물을 받았고, 이제 그 선물을 돌려주려 한다면서 남편에게 쓴 유언에

“당신을 만난 날은 내 생에 가장 운 좋은 날이었다.”고 전했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하고 살아있는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이 감동을 준다.

중국의 동산 선사는 살아 있을 때는 철저하게 삶에 충실하고, 죽을 때는 철저하게 죽음에 충실하라고 가르쳤다.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이생은 멋진 여행이었다. 다음 생은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이 밖에도 많은 묘비명이 있지만 제일 쇼킹한 것은 버나드 쇼(1856~1950)의 묘비명이다. 그는 1950년 사망할 때까지 극작가, 평론가, 사회운동가 등으로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192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당시 인기 절정이었던 무용가 이사도라 덩컨이 “저와 같이 뛰어난 용모의 여자와, 당신처럼 뛰어난 자질의 남자가 결혼해 2세를 낳으면 훌륭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며 구혼의 편지를 보내오자 버나드 쇼는 “나처럼 못생긴 용모에, 당신처럼 멍청한 아기가 태어날 수도 있지 않겠소?”라며 거절했다.

이렇게 오만함과 익살스러움으로 명성을 떨쳤던 버나드 쇼는 94세까지 장수하며 자기의 소신대로 살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묘비명이 충격적이다.

“내 우물쭈물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그는 동서양에 걸쳐 명성을 떨치고 의미 있는 삶을 살다간 문인이요, 철학자며, 노벨상까지 받은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자기의 삶을 되돌아보며 우물쭈물했다고 자평한 것이다. 그도 삶의 마지막 순간에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고 후회했을까?

해가 바뀐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월의 5일이다. 세월은 이처럼 유수같이 흘러간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더 빨리 지나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생활하다가 임종이 다가와서야 쩔쩔매며 후회한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묘비명이 그것을 말해준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알려주는 조언을 듣고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지 않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자신이 사후에 어떻게 기억됐으면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 남은 생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과정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 일손을 멈추고 자신의 묘비명을 그려보는 것도 인생 2막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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