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눈을 자기 발밑으로 깔면 주위 한 평 정도 땅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눈을 들면 자기가 사는 마을이 보이고, 좀 더 들면 자기가 사는 도시가 시야에 들어오고, 그러다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온 우주가 내 눈 속으로 들어온다.

이렇게 우리 머리 위로는 137억 광년이나 되는 아득한 저편까지 펼쳐진, 지금도 계속하여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머리 위에 그렇게 광활한 우주가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오직 눈앞에 펼쳐지는 작은 세상사에만 눈을 번뜩이며 탐욕에 눈이 어두워 남을 해치고, 배반하고 미워하며 가슴을 앓고 있다.

지금도 신문을 펼쳐들면 온갖 인간의 욕심이 지면에서 춤을 춘다. 얼마 전에는 북한이 굶어죽는 국민들은 아랑하지 않고 노동당 정권 안위만을 위하여 엄청난 돈을 들여 핵실험을 하였다는 기사가 출렁였다.

인간이 이 세상에 머물다 가는 시간은 지구 45억년의 시간에 비하면 그야말로 찰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인간이 발을 디디고 서있는 지구는 태양계에서는 작은 행성에 불과하고, 이 태양계도 태양계가 몸담고 있는 우리 은하계에서는 은하의 나선팔 한 구석의 작은 점에 불과하다. 그 우리 은하계마저도 국부은하군의 한 존재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서는 그 국부은하군이 속해있는 초은하단 내의 작은 한 점에 불과하다.

이렇듯 우리는 전 우주에 비하면 한 점 점으로도 찍을 수 없는 지구, 그 지구에서도 작은 한반도에서 찰나의 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럼에도 자기 눈앞의 세상이 세상의 전부인양 그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차지하겠다고 남을 짓밟고 형제간에도 싸우고,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려고 한다.

어느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에서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을 알아맞히는 문제가 나왔는데, 1위가 공무원이었다고 한다. 내 어릴 때, 친구들은 그래도 세상에 빛을 주는 아름다운 꿈을 꾸었는데, 지금의 초등학생들은 너무 현실적이지 않은가? 욕망에 사로잡힌 세상을 살다보니 초등학생 때부터 벌써 현실적인 이해타산을 앞세우게 된 것인가?

정녕 인간은 우물 속의 세상이 전부이고, 우물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하늘의 전부인 것으로 아는 개구리처럼, 머리 위에 광활한 우주가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탐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뒹굴어야만 하는 존재인가?

인간이 네 발로 걸어 다녔다면 땅만 쳐다보고 다녔다고 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직립하여 걸을 수 있다는 것은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는 것이고, 두 팔을 펼쳐 온 우주를 가슴에 떠안는 호연지기를 가지라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자유로워진 두 팔로 자기 탐욕을 채우는 것에만 더 열중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눈을 들어 하늘을 보자.

또한 그 하늘 저편에서 우리를 내려다 볼 창조주를 생각하자. 그리고 손을 펴서 움켜잡은 탐욕을 놓아버리고, 두 팔을 활짝 펴서 온 우주를 내 가슴에 품어 안는 넉넉함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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