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김민호 기자]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최종 책임자로 지목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검찰에 구속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ㆍ현직을 통틀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된 데 이어 구치소에 구속수감되는 사법부 수장으로 그 치욕을 안게 됐다. 이에 향후 검찰 일정도 예정대로 순항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한때 사법부 수장이었던 그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명 판사는 지난해 9월 서울중앙지법 영장 업무에 새로 합류한 '25년 후배' 이기도 하다.

이날 명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의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현재까지의 수사진행 경과와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이날 ‘사법부 수장으로서 대법원 선고에 따른 파장 등에 대한 생각과 고민을 전달하는 수준이었다’ ‘대법원장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였다’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장 지시를 받았다’는 후배 법관들의 진술이 제시되면 ‘거짓 진술’이라는 취지로 반박했다고 한다. ‘이규진 업무수첩’이 나중에 조작됐을 수 있다는 주장도 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명재권 부장판사는 전직 대법원장 쪽 주장보다 검찰이 제시한 물증과 진술의 신빙성을 더 높게 산 셈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재판 개입 및 법관 인사 불이익 등 사법부의 최고 책임자로서 각종 사법농단 의혹에 개입 및 지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재판 개입 ▲법관 부당 사찰 및 인사 불이익 ▲헌법재판소 비밀 수집 및 누설 ▲옛 통합진보당 소송 등 헌재 견제 목적의 재판 개입 등이 핵심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등 각종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지시하거나 보고를 받은 것을 넘어 직접 주도·행동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해 6월 수사에 착수한 지 7개월여만인 지난 11일 양 전 대법원장을 첫 공개 소환했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에 출석하기 전 자신이 오랜 기간 몸담았던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입장을 밝혔고, 검찰 포토라인에선 침묵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첫 공개 소환을 포함해 14일과 15일 세 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고, 2회 분량으로 피의자신문 조서가 작성됐다. 또 조사를 받은 다음날인 12일과 15일에 조서를 열람했고, 17일에도 출석해 나머지 열람을 모두 마쳤다.

이후 검찰은 그간의 수사 결과를 종합한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이 중대한 반(反)헌법적 범행의 최고 책임자라 결론짓고, 지난 18일 260여쪽 분량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된 혐의만 해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 등 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공무상비밀누설 등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 검찰은 전날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의 필요성을 두고 치열한 법정 공방을 벌였다. 검찰에서는 그간 수사를 맡아온 신봉수 특수1부 부장검사 등 부장급 검사들과 부부장급 검사들이 투입됐고,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는 수사 단계서부터 변호를 맡아온 최정숙 변호사 등이 검찰에 맞섰다.

한편 박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기각됐다. 박 전 대법관은 지난해 12월 한 차례 구속 위기에 놓였다가 법원의 기각 결정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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