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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나 그대에게' 이장희, 다시 노래 읊다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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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3  19:3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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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혜 기자]13일 오후 서울 종로 컨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2019 이장희 콘서트 '나 그대에게'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그의 옆에는 콘서트를 함께할 50년 지기 친구들이 모였다.

이날 이장희는 "1970년대에 활동했었다. 그 당시 1975년 가수 생활을 그만둘 때엔, 우리나라 대마초 파동에 연루됐었다. 음악 생활에 손을 떼고 다른 일을 하다가 울릉도에서 살게 됐다"고 자신의 삶을 소개했다.

이어 "난 자연을 늘 좋아했다. 알래스카도 10번 이상 가봤고 여행을 주로 했다. 알래스카의 대 자연이 좋아서 자주 가게 됐다. 은퇴하면 '대 자연'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우연히 울릉도에 갔다가 그 풍광에 반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장희의 50년된 음악 친구인 기타리스트 강근식은 "20세 팔팔할 때 음악 이야기로 밤을 새고, 판을 어렵게 구해서 같이 밤새 듣기도 했다. 그러다 대마초 파동으로 인해 나도 직업을 바꿔야 한다. 그러며서 미국으로 가게 되고 몇년 동안 떨어져 있었다"라며 이장희와의 인연을 밝혔다.

또 조원익은 "중고등학교를 이장희와 같이 다녔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도 우연히 만나 음악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울릉도에 방문해 음악을 계속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장희의 음악세계

영화·드라마 OST가 각광 받는 것, 더 이상 관심사안이 못 된다. 한국의 OST는 1974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그해 개봉해 청년영화의 신호탄을 쏜 '별들의 고향'(감독 이장호)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것이 바로 OST이기 때문이다.

'별들의 고향' 원작자인 소설가 최인호(1945~2013)의 고등학교 후배로, 그를 형이라 부르며 따른 가수 이장희(72)가 음반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 잔의 추억' '한 소녀가 울고 있네' 등 지금까지 흥얼거리는 이들이 수두룩한 명곡들이 모두 이 OST에 실렸다.

   
 
작곡과 노래는 이장희, 연주와 편곡은 이장희와 그의 음악 친구들인 기타리스트 강근식(73)·더블 베이시스트 조원익(72)이 결성한 밴드 '동방의 빛'이 맡았다. 1975년 대마초 파동 전까지 약 4년간 활동한 이 팀의 전성기이자 황금기에 나온 음반이다.
  
이장희는 이날 "당시에는 새로운 음악을 소개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돌아봤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는 영화 사랑의 테마로 사용했고, '한 소녀가 울고 있네'는 사이키델릭한 요소가 포함돼 있었죠. 대부분 일정한 형식의 노래가 나오던 때에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한 소녀가 울고 있네'의 "한 소녀가 울고 있네? / 가냘픈 어깨가 들먹이네? / 싸늘한 달빛이 비춰주네?" 등 몽환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노랫말도 당시에는 독특했다.

이장희는 주로 사용하던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를 쓰고자 했다. "당시 노래에는 시어 같은 문장이 많았어요. '흘러가는 구름에' 등의 식이죠. 제가 가요보다는 팝을 좋아했어요. AFKN(주한미군방송)을 통해 팝을 듣는데, 가사가 평소에 쓰는 말이더라고요. '리얼하게' 다가온 거죠."

무엇보다 '별들의 고향' OST는 20대가 가진 젊은 꿈을 표현한 것 같아 아낀다. "젊음의 한때를 보는 것 같아서 이 음반을 좋아해요. 하하."

   
 
1960년대 송창식,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 등과 함께 서울 무교동 음악다방 '쎄시봉'에서 통기타 1세대로 활약한 이장희는 1971년 '겨울이야기'로 데뷔했다. 통기타와 생맥주, 청바지로 대표되는 1970년대 청년문화를 이끌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와 '한잔의 추억‘을 비롯해 '그건 너' '그 애와 나랑은' 등 감성을 자극하는 노랫말, 포크와 록을 넘나드는 멜로디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콧수염과 오토바이, 통기타 등을 앞세운 당대의 아이콘으로 통했다.

1970년대 초 '별들의 고향' 음악감독뿐 아니라 높은 청취율을 자랑한 '0시의 다이얼' DJ, '한 동안 뜸했었지' 작곡가 등 여러 음악 방면에서 활약한 그는 1974년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공연한 뒤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가요계를 떠났다.

이후 미국으로 가 LA라디오코리아 대표이사로 변신, 사업가로도 승승장구했다. 레스토랑, 의류업 등 다양한 사업을 성공시켰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가 1996년 우연히 찾은 울릉도의 매력에 매료되면서 2004년 울릉군 북면 현포리에 터전을 잡게 됐다. 굴착기 사용법을 배워 연못과 밭을 만들어 그의 농장인 '울릉천국'을 만들었다.

약 4년 간 활동하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던 이장희는 35년 만인 2010년 MBC TV '놀러와'로 재발견됐다. 1970년대 쎄시봉이 2010년대 그를 다시 소환했다. 그해 말 이장희가 MBC TV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한 후 그와 울릉도가 크게 주목 받았다. 

   
▲ 1970년대 이장희
그리고 지난해 5월 울릉도에 ’울릉천국 아트센터'가 개관했다. 이후 7, 8월 울릉도 관광객을 대상으로 노래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쎄시봉으로 주목 받았지만 쎄시봉 멤버들과 콘서트는 함께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친하지만, 화음을 넣고 하는 것은 제 스타일이 아니거든요"라며 특유의 호탕한 웃음으로 답했다.

배를 타고 찾아야 하는 울릉도는 바다 날씨에 민감해 바람이 부는 겨울은 물론이고 태풍이 잦은 6월 등을 피해야 해 많은 관광객이 찾기는 힘들다. 이장희가 그런 관객을 위해 육지로 나들이를 온다.

3월 8, 9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단독 콘서트 '나 그대에게'를 연다. 2013년 이후 6년 만에 서울에서 여는 단독 공연이다. 동방의빛 멤버들인 강근식, 조원익이 함께 해 든든하다. 걸출한 세션인 기타리스트 함춘호가 힘을 싣는다.

 "음악하는 친구들이 왜 좋냐면요, 굳이 대화를 하지 않아도 통하기 때문이에요. 음악은 대화가 필요 없는 정서의 교류죠. 누가 소리를 내면, 그것을 받아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죠. 셋이 모두 술을 좋아한다는 것도 커요. 울릉도에서 공연을 끝내고, 석양을 바라보며 먹는 술은 그 어느 술보다 아름답죠."

KBS 2TV 음악 예능프로그램 '불후의 명곡' 등에서 이장희의 음악은 끊임없이 조명되고 있다. 후배 가수들이 지속해서 재해석한다. "요즘 친구들은 저희 때와는 정서적으로 완전히 달라요. '왜 이렇게 노래를 잘 하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와 차원이 다를 정도로, 프로페셔널하고 편곡도 좋죠. 옛날 분위기와 달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도 음악적인 내용으로는 감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음악도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이 들죠."

저작권 수입에 관해서는 '좋은 술값이 돼요. '아이 러브 잇'이라고 에둘러 답한 이장희는 이처럼 사람들에게 여전히 각광을 받지만 정작 본인은 "어쭙지 않다"며 손을 가로저었다. "제가 약 40년 동안 노래를 하나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런데 "노래를 하다 보니 노래가 좋아져요. '제가 노래하는 것을 정말 좋아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이장희가 학창 시절 음악에 빠져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벼락치기를 해서 연세대 생물학과에 입학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한 사실 역시 누구나 안다. "공부를 안 하고 음악만 했는데, 음악을 좋아했다는 것을 최근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계속 나서기에는 어쭙잖게 여겨져요. 그럼에도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분명해서 이번에는 계속 노래를 불러 여든살까지 했으면 합니다."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싱어송라이터의 효시'로 통하는 이장희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재능을 다시 살리고 싶다며 신곡 발표도 예정하고 있다. "제가 황혼이 됐는데, 더 붉게 타올라서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느껴져요. 황혼이 돼 안온한 느낌도 받고요. 근데 또 한편으로는 쓸쓸하기도 해요. 이런 복잡다단한 황혼의 마음을 노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서 착상을 해서 노래를 만드는 것이 꿈이죠."

이장희는 이날 대표곡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를 불렀다. '그의 나이 칠십하고 둘'이지만 청아한 울림이 깃든 저음은 여전했다. 황혼의 쓸쓸함이 녹아 있는 이 곡은 1980년 가수 김태화가 발표한 노래다. 하지만 앞서 1974년 이장희가 스물일곱살 무렵, 고려대 신입생회에 초청를 받았을 당시 전날 작사·작곡한 노래다. "일흔이 넘어서 이 곡을 부르다 보면 '가사를 바꿀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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