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륜스님
[김승혜 기자] “저는 어릴 때부터 '왜 사는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베푸는 거, 거기에 삶의 이유가 있을 거 같고요, 또 그렇게 해야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그걸 실천하는 데 있어가지고 가족들이 제 생각과 같지는 않고, 사실 저 자신도 그렇게 베푸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에 어느 정도 베풀면서 살아야 되는지 궁금합니다.

최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인 백용성스님의 독립운동 역사를 재조명할 것”이라고 강조한 법륜스님이 강연도중 한 시민의 이 같은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왜 사느냐? 베풀고 산다. 그건 왜 사느냐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왜 사느냐? 그냥 산다. 이게 왜 사느냐에 대한 답이에요.

사는 데 어떤 이유가 있어서 사는 건 아닙니다. 자기가 오늘 저녁에 살 이유 없다고, 살까? 죽을까? 사는 데는 아무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잘못 생각해요. 이유가 있어야 산다? 그렇지 않아요.

사람들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무슨 이유가 있어서 태어났나요? 그냥 태어났나요. 태어나는 게 먼저고, 사는 이유를 찾는 건 나중입입니다. 항상 존재가 먼저예요. 언제든지. 그래서 '왜 사느냐?' 하는 고민은 의문 자체가 잘못된 고민이예요.

왜 사느냐? 그냥 산다. 그래도 자꾸 더 물으면 '안 죽어서 산다.' 그냥 사는 게 먼저다, 이 말입니다.

그럼 어차피 그냥 사는데 어떻게 사는 게 좋으냐? 욕심부리고 살거냐 베풀고 살거냐? 즐겁게 살거냐 괴롭게 살 거냐? 행복하게 살거냐 불행하게 살거냐? 이런 생각은 '어떻게' 사느냐에 대한 답이에요. '왜' 사느냐에 대한 답이 아닙니다.

어떻게 사는 게 좋으냐? 욕심부리고 사는 게 좋다면 그렇게 살면 되고, 베풀면서 사는 게 좋다면 베풀면서 살면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는 건 부차적인 것이고, 어떻게 사는 게 좋으냐의 핵심은 뭐냐 하면, 즐겁게 살거냐 괴롭게 살거냐? 이게 관건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즐겁게 살고 싶어합니다.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즐거우냐?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삶, 이걸 봐야 해요. 베풀고 사는 삶이 즐거우면 베풀고 살면 되고, 도움받고 사는 삶이 즐거우면 도움 받으면서 살면 돼요. 도움을 받고 사는 게 좋으냐, 주고 사는 게 좋으냐 이건 정해진 게 없어요.

나는 베풀고 살고 싶은데, 한집에 같이 사는 부인이 반대한다면 베푸는 건 즐겁지만 부인하고 싸우는 건 괴롭잖아요? 그럼 그 두 개를 비교해서, 싸우는 괴로움보다 베푸는 즐거움이 크면 베풀면서 살면 되고, 싸우는 괴로움이 베푸는 즐거움보다 크면 베풀고 싶어도 참아야지요. 부인하고 타협을 해야 해요. 왜? 한집에 같이 사니까. 이게 삶이에요. 삶에 정해진 건 없어요.

부부가 한집에 같이 살면 의견조율이 필요합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게 없어요. 의견 조율 안 하려면 혼자 살아야 합니다. 한집에 같이 산다는 건 의견을 조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존재하고 둘이 함께 사는 존재는 그 존재가 바뀝니다. 같은 존재가 아녜요. 결혼을 했으면 아무리 좋은 일도 부인하고 뜻을 조율해서 살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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