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사하는 방시혁
[김승혜 기자]서울대학교 제37회 학위수여식이 26일 오후 2시 관악캠퍼스 종합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학위수여식에서는 학사 2439명, 석사 1750명, 박사 730명까지 총 4919명이 학위를 받았다.

행사를 위해 오후 1시부터 모여든 학생들은 동행한 부모님에게 가운을 입혀주고 사진을 찍는 등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선후배와 친구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꽃다발을 든 사람들의 발걸음까지 더해져 체육관은 북적였다.

이날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가 모교인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축사를 했다. 경기고 출신인 방시혁 대표는 1991년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했지만, 1994년 제6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으며 음악계로 진출했다. 다수의 발라드와 힙합 히트곡을 내놓으며 이름높은 프로듀서로 성장한 방시혁은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설립, 월드스타 방탄소년단을 키워내 빌보드 선정 '뉴 파워 제너레이션 25 톱 이노베이터'에 이름을 올렸다.

방 대표는 이날 축사에서 "모교의 축사는 무한한 영광이지만 저는 '꼰대'이기에 유의미한 말을 할 수 있을 지 고민했다"며 "나는 구체적인 꿈이 없고, 원대한 꿈을 꾼 적이 없다. 매번 선택은 즉흥적이었고 '방탄소년단'의 행보를 봐도 느끼실 거다. 음악을 시작한 이유조차도 지금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라고 입을 뗐다.

이어 그는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이다. 세상에는 타협이 많지만 태생적으로 그런 걸 못하고, 최선이 아니면 불만이 생기고 그래도 개선이 안되면 분노한다"며 "그리고 그 분노는 내 회사와 내 일의 원동력이었다.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데 적당한 선에서 끝내는 관습, 음악계의 관행에 화를 냈다"고 말했다.

다음은 방시혁 대표 축사 전문이다.

 <전문>

존경하는 오세정 총장님, 교수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졸업생 여러분들과 가족, 친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이자 음악프로듀서인 방시혁입니다. 오늘 화창한 날씨만큼이나 졸업식장을 가득 메운 여러분,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많이 고민했습니다.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제가 어떤 이야기를 한들 지루한 ‘꼰대의 이야기’가 될 게 뻔하고, 삐딱하게 보려면 방탄소년단이 성공했다고 잘난 척 하는 걸로 비칠 수 있어서 말이죠.

그런데 요즘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방탄소년단이 핫한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랑도 좀 하고, 제 삶의 여정에서 여러분과 맞닿는 지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학력고사 세대인 저는 법대를 가고 싶었지만 뭔가 쿨할 것처럼 보였던 미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에 이끌리듯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2001년부터 직업프로듀서의 삶을 시작해 JYP에서 일하다, 독립해 지금은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음악프로듀서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큰 그름일 그리는 야망가도 아니고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어쨌든 저는 지금 꽤나 성공했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에서 2년 연속 톱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4만석 규모의 뉴욕 시티필드 공연을 매진시켰습니다. 불과 2주 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도 시상자로 초청받아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세우며 과분하게도 유튜브 시대의 비틀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신인그룹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역시 아직 공식 데뷔 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분들이 관심을 가져주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희 회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니콘 기업으로 커 나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축사에서 어떤 말씀을 드릴까 고민하면서 오늘의 저를 만든 에너지의 근원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그것은 다름아닌 화. 즉 분노였습니다.

여러분 저는 화를 많이 내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분노하는 방시혁이었습니다. 적당히 일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는 소명으로 타협없이 하루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달려왔습니다. 제가 태생적으로 그런 사람이기도 했지만 음악으로 위로를 받고 감동을 느끼는 팬들과의 약속, 절대 배신할 수 없는 약속이었기에 그래왔습니다.

그렇게 음악 산업에서 최고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달려오는 동안에도 제게는 분노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앗습니다. 이 산업이 처한 상황은 상식적이지 않았고 저는 그것들에 분노하고 불행했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18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등.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단적으로, 여러분도 “게임회사는 가더라도 엔터테인먼트 회사에든 낙지 마라”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우리의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K-pop이라는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불립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팬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선사하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근거없는 익명의 비난에 절망합니다. 우리 피,땀, 눈물의 결실인 콘텐츠는 부당하게 유통돼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분노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저는 혁명가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의 행복과 음악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한 분노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꼰대들에게 지적할 거고, 어느 순간 제가 꼰대가 돼 있다면 제 스스로에게 분노하고 엄하게 스스로를 꾸짖을 겁니다.

음악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내고 싸워서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 산업이 상식이 통하는 동네가 되어 간다면 한단계 한단계 변화가 체감될 때마다 저는 행복을 느낄겁니다. 분노의 화신인 제가 행복을 이야기하니 모순처럼 들리죠. 그러나 저도 행복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저는 행복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여기 덧붙여 산업적으로는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를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 그래서 그 변화를 저와 우리 빅히트가 이뤄낼 때 저는 가장 행복합니다.

여러분은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종일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고단한 몸을 따듯한 샤워로 달래고, 뽀송뽀송한 이불 속에 들어갈 때... 행복하지 않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복한 것들도 있지만 행복한 상황도 있을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겁니다.

누구에게 취업걱정 노후 걱정없는 공무원의 삶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포브스에 나오는 전 세계 몇 대 부자들처럼 돈을 많이 버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명예와 권세를 누려야 행복한 사람은 당연히 명예와 권세를 좇아야 겠지요. 문제는 자신이 정의한 것이 아닌 남이 만들어 놓은 목표와 꿈을 무작정 따르고 그래서 결국은 좌절하고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아닐까요. 절대 그러지 마세요. 그것은 여러분의 리듬, 여러분의 스웩이 아닙니다.

사회에 나가면서 여러분이 깊은 고민 끝에 선택한 길이 무엇이든, 앞으로의 여정에는 무수한 부조리와 몰상식이 존재할 겁니다. 이런 부조리와 몰상식이 행복을 좇는 여러분의 노력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할 건가요.

분노의 화신 방시혁처럼 여러분도 분노하고 맞서 싸우기를 당부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됩니다. 그래야 이 사회가 변화합니다. 모든 것은 여러분 스스로에게 달려있음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싸움꾼이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두서 없는 저의 축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학이라는 일생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신 여러분 모두를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인생의 다음 단계들을 행복 속에 잘 살아내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제법 잘 살아왔구나 라고 자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묘비에 "분노의 화신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감"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콘텐츠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여러분만의 행복을 정의하고 잘 찾아서 여러분다운 멋진 인생을 사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9.02.26.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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