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지난 2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청년 노동자 고 김용균 민주사회장 영결식'에 참석해 추모발언을 하고 있다.
[김홍배 기자]"이런 비참한 현장에서 여러 차례 많은 말을 해봤고, 그 횟수가 수십년이 됐다. 그런데 오늘 이 자리만큼은 정말로 화가 나서 못 견디겠다"

지난 1월 24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학계, 예술계, 시민단체 등 각계 원로들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故) 김용균씨 사건의 해결을 촉구하며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한 말이다.

그러면서 백 소장은 "용균이를 비정규직이라는 체제가 죽였고 사람이 일할 수 없는 작업장에 사람을 때려 넣은 자본주의 체제가 죽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20일 SNS상에 ‘화제의 인물’로 등장했다.

이날 오전 방송된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백기완 소장이 출연해 최근 출간한 ‘버선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백 소장은 이날 ‘버선발 이야기’에서 ‘버선발’이란 주인공을 통해 민중의 땀과 눈물, 자유와 희망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백 소장은 70년대 반독재 투쟁을 시작으로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바친 거리의 백발 투사. 1932년생으로 올해 87세다.

비록 고령이지만 지금도 여러 집회에 지팡이를 짚고 참여하는 현역 시민운동가다. 그는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아버지 백홍렬과 어머니 홍억재 사이에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백홍렬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재직한 바 있다. 그는 1960년대 한일협정반대운동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그후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등 민주화 운동에 많은 활동을 했으며 19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인 선언 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75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다. 6월 항쟁 이후 열린 제13·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재야운동권에 독자후보로 추대돼 선거에 입후보했지만 13대 때는 중도 사퇴를, 14대 때는 낙선했다.

이날 네티즌들은 이에 "백기완 선생님을 뉴공에서 볼 수 있다니 놀랍다" 등의 반응이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