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검찰이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에게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어 26일 오전 김 전 장관이 서울 송파구 서울 동부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김민호 기자]소위 '환경부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은경(63) 전 환경부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26일 기각됐다.

서울동부지법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볼 때, 증거 인멸이나 도주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아울러 박 부장판사는 "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는,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관련 법령이 해당 규정과는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 제정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기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피의자에게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에 대한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고도 밝혔다.

이로써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관계자 교체 관련 '블랙리스트' 의혹의 '윗선'을 겨냥한 검찰의 수사에도 급제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최근 검찰은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을 소환 조사하는 등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임명에 대한 윗선 개입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의 명단을 만들어 사퇴 의사가 있는지 등 동향을 파악하도록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에게 사표 제출을 강요한 혐의도 받는다.

검찰은 또 청와대가 원하는 인사들을 산하기관 임원으로 채용하는 '낙하산 인사'에도 김 전 장관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낙점 인사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하자 관련 경위 등을 환경부 측 직원이 청와대에 찾아가 해명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청와대 특별감찰반 시절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 등을 주장한 김태우 전 검찰수사관의 폭로로 불거졌다. 

김 전 수사관은 지난해 12월 "특감반 근무 당시 환경부에서 8개 산하기관 임원 24명의 임기와 사표 제출 여부가 담긴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 사퇴 동향' 문건을 받아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문건에는 환경부 산하 기관 8곳의 이사장과 사장, 원장, 이사 등 임원들의 임기와 사표 제출 여부뿐 아니라 '현정부 임명', '새누리당 출신' 등 거취가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자유한국당은 같은 달 환경부가 '문재인 캠프' 낙하산 인사를 위해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문건을 작성한 의혹과 관련해 김 전 장관과 박천규 환경부 차관 등 관계자 5명을 고발했다.

검찰은 환경부 산하 기관 전현직 관계자 참고인 조사 및 환경부 압수수색을 통해 블랙리스트 작성에 윗선이 개입한 정황을 다수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전 정부 인사가 임원 자리에서 물러난 뒤 후임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환경부가 수차례 접촉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지난 1월 김 전 장관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한편, 김 전 장관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하고 출국금지 조치를 단행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조사에서 산하기관 임원의 동향을 파악한 것은 맞지만 부당한 압력 행사는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주진우)는 지난 22일 김 전 장관에 대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및 업무방해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출신 장관에 대한 첫 구속영장 청구로 그 결과에 관심이 모였다.

김 전 장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전날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동부지법에서 박정길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됐다.

박 부장판사는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돼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 쉽지 않다는 점을 볼 때 증거 인멸이나 도주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며 김 전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한편 김 전 장관은 전날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법정에 들어서면서 "최선을 다해 설명을 드리고 재판부의 판단을 구하겠다"면서도 '청와대에서 관련 지시를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다음은 기각 사유 전문이다.

일괄사직서 징구 및 표적감사 관련 혐의는, 최순실 일파의 국정농단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으로 인해 공공기관에 대한 인사 및 감찰권이 적절하게 행사되지 못하여 방만한 운영과 기강 해이가 문제되었던 사정, 새로 조직된 정부가 해당 공공기관 운영을 정상화하기 위해 인사수요파악 등을 목적으로 사직의사를 확인하였다고 볼 여지도 있는 사정, 해당 임원에 대한 복무감사 결과 비위사실이 드러나기도 한 사정에 비추어, 이 부분 혐의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피고인에게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임원추천위원회 관련 혐의는,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들의 임명에 관한 관련법령의 해당 규정과는 달리 그들에 관한 최종 임명권, 제청권을 가진 대통령 또는 관련 부처의 장을 보좌하기 위해 청와대와 관련 부처 공무원들이 임원추천위원회 단계에서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내정하던 관행이 법령 제정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장시간 있었던 것으로 보여, 피의자에  게 직권을 남용하여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한다는 구성요건에 대한 고의나 위법성 인식이 다소 희박해 보이는 사정이 있다(대법원 1993.7.26자 92모29 판결 참조).

객관적인 물증이 다수 확보되어 있고 피의자가 이미 퇴직함으로써 관련자들과는 접촉하기가 쉽지 않게 된 점에 비추어, 증거인멸이나 도주의 염려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

2019.3.26 판사 박정길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