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오전 강원 속초시 장사동 장천마을 주민들이 전날 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미시령 관통도로 요금소 인근에서 변압기가 터져 발생한 산불로 잿더미가 된 집을 보며 슬픔에 빠져 있다.
[신소희 기자]화마가 휩쓸고 간 속초시 장천마을은 마을 전체가 사실상 초토화됐다. 집이 불타지 않은 일부 주민들은 잔불을 확인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이 마을은 이번 화재로 피해가 가장 큰 동네 중 한 곳이다.

5일 오전 잿더미가 된 집을 바라보던 권금순(67)씨는 "어머니 아버지랑 살던 집인데…."라며 눈물을 참지 못했다.

권씨의 부모님은 10여년 전 세상을 떠났다. 권씨 남동생은 부모님의 집을 떠날 수 없었다. 최근 내부 리모델링을 마쳤고, 담장을 새로 쌓기 위해 새 벽돌 더미도 마련해 뒀다. 화단엔 작은 식물을 심고 가꾸며 살뜰하게 살핀 집이다.

 권씨는 "집이 아주 예뻤어, 꾸민다고 화분 같은 것 다 동생이 직접 손으로 만들었고. 어머니, 아버지하고 같이 살던 집인데. 그래서 동생이 다른 데 안 가고 수리하고 산다고 다 이렇게 해 놨잖아. 어머니 아버지가 와서 좀 돌봐주지, 어째서 이렇게 다 타게 만들었을까. "

고성에서 난 산불이 장천마을로 번진 지난 4일 오후, 동생 권씨는 집에 없었다. 권씨의 올케는 TV를 보다가 대피 안내문자가 온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불 난 것도 몰랐어. 올케가 모르고 있었는데, 뒷집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면서 빨리 나오라고 했다고. 짐도 못싸고 막 나왔지. 뭐, 죽을 뻔 했지."

4일 오후 7시가 넘어 인근에 사는 권씨의 집으로 대피한 남동생 내외는 새벽에 다시 장천마을로 돌아와 불타고 있는 삶의 터전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새벽에 두 번이나 왔다, 갔다 했어요. 타고 있는 걸 뭐 어떡해, 보기만 했지. 이렇게 허무하다니까 사람이. 한순간에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한시간도 안 돼서 이렇게 됐으니까."

권씨의 동생은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는 집 안을 연신 들여다 봤다. "집을 어떡하면 좋겠냐"며 흐느끼는 권씨를 "아 더 잘 될거야"라고 달랬지만 착잡한 눈빛을 감추지는 못했다.

속초 장천마을은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의 일성콘도 인근에서 약 7㎞ 떨어진 지역이다. 마을의 한 켠이 완전히 불에 타 버렸다.

폐허가 된 마을을 둘러보던 주민들은 "아직도 가슴이 벌렁벌렁하다", "사람이 안 다친 것이 다행"이라며 놀란 마음을 다독였다. 노인들이 터를 잡고 사는 마을 특성상 "먹던 약을 하나도 못 가지고 나와서 어쩌냐"는 걱정이 곳곳에서 들렸다.

▲ 화마가 덮친 강원도 속초시 장천마을의 소가 연기를 마시고 숨가빠하고 있다.
뭣모르는 개들만 재를 묻힌 채 팔랑팔랑 뛰어다니고, 밤새 묶여 있어 연기를 마신 소는 숨이 가쁜지 헥헥대기만 했다. 한 주민은 타버린 소의 등을 한참 보고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 왔다 갔어. 헥헥대는거 연기 마셔서 그런 거래. 얘들 다 죽는대요. 미안하다 진짜,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아."

장천마을에 사는 어머니를 인근 교동초등학교 대피소에 모시고 마을을 둘러보던 지종범(54)씨는 인근 삼환아파트 10층에서 불바다가 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강아지나 이런 애들, 소방관들이 그냥 내버려 두더라고. 하나도 안 거둬가고 너무하더라고. 보니까 좋은 차 있고 잘 사는 사람들은 모텔 가거나 자식들이 데리고 가고, 돈 없고 힘 없는 노인네들, 대피한다고 그 바람이 부는데 막 넘어지면서 가는 걸 보니까 마음이 안좋았어요. 시에서 차라도 대절해서 데리고 갔으면 좋았을걸."

또 장천마을 주민 오모 씨(63)는 “전소된 게 많다. 아직까지 집들이 타고 있다. 우리집이 여기 있는데 아직 잔불이 많으니까 불이 번지면 수도라도 틀어서 불을 끄려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5일 오전 9시부로 강원도 고성군, 속초시, 강릉시, 동해시, 인제군 일원에 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