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완 예초의(靑薍 刈草儀)’가 한식인 6일 경기 구리 동구릉(사적 제193호)에서 열린다. 조선왕릉관리소가 동구릉에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봉분을 덮은 억새(靑薍)를 자른다.
[김승혜 기자]오늘은 한식(寒食)이요, 어제는 청명(淸明)이었다,  두 절기는 이렇게 하루이틀사이로 바짝 붙어서 오거나 때로는 같은 날 겹친다. 이름은 따로 쓰지만 같은 절기처럼 ‘청명·한식’으로 붙여 부르기도 한다.

이러다보니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거기가 거기”라는 속담도 생겨났을 것이다.한식은 설날,단오,추석과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히지만,있는 둥 없는 둥 어물쩍 넘어가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한식이라는 명칭은 이 날에는 불을 피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다는 옛 습관에서 나온 것인데,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중국고사에 이 날은 비바람이 심하여 불을 금하고 찬밥을 먹는 습관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晉)의 충신 개자추(介子推)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유래를 살펴보면 2600여년 전 중국 춘추시대 진(晉)왕 헌공이 죽었다. 아들 ‘중이’가 집안싸움으로 왕위를 잇지 못하고 국외를 오래 떠돌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귀국해 왕이 됐다. 문공이다(그때는 천자의 나라 주<周> 외 제후국은 왕이라 칭하지 못하고 공<公>이라 했음). 중이 일행이 방랑 걸식생활을 할 때 개자추는 제 허벅지살을 떼어 중이에게 먹일 만큼 충심을 다했다.

그런데 막상 왕이 된 중이가 홀대하는 데다 측근들의 자리다툼에 환멸을 느낀 개자추는 깊은 산에 숨어버렸다. 문공이 아차, 하고 개자추를 불러오게 했으나 찾을 수 없자 뜨거우면 뛰쳐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산에 불을 놨다. 문공은 배신과 탐욕과 아부를 비웃으며 깨끗이 재가 된 그를 기려 그날은 화식(火食)을 금했다는데, 한식의 유래라고 전해진다.

개자추가 숨어든 산이 산시(山西)성의 면산인데 거기 개자추 사당에선 지금도 성대한 한식 행사가 열린다. 일찍이 고려시대에도 그날 관원들에게 휴가를 줘서 성묘하도록 했다 . 한식날 사초(莎草)를 하고 절기제사를 지내는 연유이다.

청명(淸明)은 24절기의 하나로 한식 하루 앞이다. 6년마다 한식과 겹치는데 봄이 푸르러지고 하늘이 맑아지는 시절이란 의미의 이름이다.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는 한식과 청명은 하루밖에 차이가 안 나므로 하루 먼저 죽으나 뒤에 죽으나 같다는 뜻으로 별 차이 없는 걸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그게 그거’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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