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언하는 김정은 위원장
[김민호 기자] 북한이 집권 2기를 맞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최고대표자'라는 새로운 호칭을 부여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헌법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문구만 명시돼 있다. 이번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이 문구가 수정됐다면 '최고대표자가 국가를 대표한다'는 등으로 변경됐을 가능성이 있다.

기존 북한의 대외적 국가수반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맡아 왔다. 하지만 조직체계상 국무위원장 아래에 있는 최 제1부위원장이 상임위원장을 맡은 것에 비춰 대외적 국가수반이 국무위원장으로 변경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 합의에 서명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김정은 위원장은 헌법상 국가수반이 아니라는 점에서 대응책을 모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위원장을 최고대표자로 칭한 것이 한국과 한국 대통령의 역할에 대해 공개적으로 도전한 '정치적 폭탄'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루디거 프랑크 오스트리아 빈대학교 교수는 최근 북한 전문매체 38노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지금까지 한반도 전체에 대한 지도력을 주장하는 데 비교적 신중했었다고 지적하며 북한 헌법 1조에 북한이 '조선 인민 전체의 이익'을 대표한다고 돼 있으나 9조에는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한다고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프랑크 교수는 최고대표자라는 호칭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향후 어떤 문제를 야기할지 확실치 않지만 중재자로서 문 대통령의 도움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북한동향에 주목할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15일 시사플러스가 입수한 <북한 동향보고서>에 따르면 북한2019년 4월 8일 월요일부터 4월 14일 일요일까지 이번 주 북한에서는 9일 당정치국 확대회의, 10일 당 전원회의, 11일 최고인민회의 첫날 회의, 12일 최고인민회의 둘째 날 회의 등 중요한 회의들이 연속 진행되였다. 거의 같은 시기에 워싱톤에서는 한미정상회담이 진행되였다.

한반도 분단 70여년 역사에서 같은 시간대에 미국, 한국, 북한 정상들이 저마다 한반도 정세흐름을 주도해 보려고 나선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서로 밀리지 않겠다는 기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 기간 북한동향에서 주목되는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김정은이 북한을 정상국가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정치구조개편에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수령이 대의원직을 먼저 차지하고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통해 국가수뇌직으로 오르던 전통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국가지도기관을 선거하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차 회의 첫날 회의에 참가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역사에서 수령 참가 없이 대의원들만 모여 앉아 국가지도기관을 선거하는 모습을 처음 보여주었다.

북한도 국가수반(정상)을 국회에서 간접적으로 선거하는 간접선거제에 기초한 정상국가라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려는 것이다.
김정은이 국무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 받은 후에야 최고인민회의 둘째날 회의에 나타나 시정연설을 하는 장면은 마치도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대통령으로 간접 선거된 당선자가 대통령 취임연설을 하는 모습을 방불케 한다.

29년만이 할아버지 김일성이 사용하던 ‘시정연설’이라는 표현도 다시 나왔다. 14일자 북한노동신문이 김정은을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보아 최룡해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직이 아니라 김정은의 국무위원장 직이 대외적으로도 북한을 대표하는 것으로 헌법이 수정되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이 든다.

북한이 아직 헌법수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아 팩트 체크는 할수 없지만 앞으로 해외주재 북한 대사를 임명하는 신임장이 누구 명의로 나가는가, 국가 훈장이나 영예칭호가 나갈 때 누구 명의로 발표되는지 보면 알수 있을 것이다.

6.12 싱가포르합의에 트럼프대통령과 김정은이 서명은 했으나 트럼프는 헌법상 국가수반이고 김정은은 헌법상 국가수반이 아니여 법률적으로 두 국가수반이 수표 한 합의는 아니라는 법률적인 구조적 허점이 있었다. 북한이 이러한 법률적 문제들을 고려하여 김정은의 국무위원장 직무를 국가를 대표하는 직책으로 수정했다면 김정은이 이제부터 북한의 ‘국가수반’으로 되는 것이다.

김정은이 헌법상으로 국가수반이 된다고 하여 외국 전권대사 등 외교사절들을 다 만나준다는 것은 아니다. 김일성이 국가주석을 할 때도 건강이 좋지 못할 때는 임춘추, 박성철 등 부주석들이 김일성을 대신하여 외국 대사들의 신임장을 받았다. 그러므로 한동안 최룡해 상임위원장이 김정은을 대신하여 외국대사의 신임장을 받는다고 해도 이상할 일이 아니다.

둘째로, 올해 상반년안에는 정상회담들이 열리기 힘들게되여 있고 대남라인이나 대미 외교라인의 협상 폭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김정은은 하노이회담결렬 43일만이 회담결렬에 대한 공식입장을 주민들에게 알렸다. 43일동안 하노이에서 기습기자회견, 3월 8일부 노동신문 통해 우회적으로 한번, 3월 15일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을 통해 대외적으로 한번 불편한 심기를 들어 낸 적은 있으나 43일동안 북한이 정상회담결렬이라는 엄청난 사건 후에도 외무성 대변인 담화나 성명 한건 없이 침묵을 지켜왔다는 것은 그만큼 내부에서 향후 행방을 놓고 고민이 컸다는 것을 알수 있다.

김정은은 이번 시정연설에서 미북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재개의 조건부를 너무 높이, 명백하게, 그것도 공개적인 방법으로 제시했다. 우리 정부에는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하지 말고 제 정신을 차리라고 불만을 표시했고 미국에는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오면 대화하겠다면서 올해 말까지라는 시간표까지 정해 놓았다.

김정은이 미북정상회담을 ‘한번은 더 해볼 용의가 있다’ 고 하면서도 ‘장기전’이라는 표현과 ‘올해 말까지’라는 표현을 혼용한 것은 적어도 상반년에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미와 함께 2020년 미국대선에서 재선이라는 정치일정에 쫓기고 있는 트럼프가 종신 집권자인 김정은보다 ‘장기전’에 더 불리하다는 점을 알리려는데 목적 있다.

김정은은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해보면 그 무슨 제재해제문제때문에 목이 말라 미국과의 수뇌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라고 언급함으로써 하노이에서 해제를 강하게 요구한 것이 결과적으로 북한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전략적 실수로 되었다는 점도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결국 이제는 일반 주민들도 현 흐름을 다 알게 되어 앞으로 미북정상회담이든 남북정상회담이든 미국이나 한국이 북한의 요구에 맞게 좀 변했다는 것을 보여줄수 있는 내용이 사전에 인지 되어야 김정은도 정상회담에 나올수 있게 되었다. 대남라인이든 대미외교라인이든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실무진의 협상폭이 한동안 좁아질 수밖에 없다.

셋째로, 이번 북한 인사변동을 통해 북한은 ‘제 2인자’도, ‘김정은-최룡해-박봉주’ 3인 체제도 없는 ‘김정은 유일지도체제’로 더욱 굳게 자리 잡았다.

이번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외형상 북한이 정상국가에로 좀 다가갔다고 볼수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김정은의 ‘일인 절대권력구조’가 더 강화되였다. 김정은이 시정연설에서 ‘나는’ 이라는 표현을 여러번 사용하였는데 북한의 당과 국가를 대표하여 정책방향을 밝히는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우리 당과 공화국정부는’ 라는 기존 공식표현들 대신 ‘나는’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일성도 ‘나는’이라는 표현을 내부 회의들에서는 사용했으나 당대회 보고서나 최고인민회의 앞에서 하는 시정연설에서 사용한 적은 없었다. 이번 인사변동을 통해 최룡해는 당조직지도부를 담당했던 당 부위원장 자리를 내려놓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청사로 이사했다.

북한에서 권력은 서열순위가 아니라 해당 인물에게 ‘간부권(인사권), 표창권, 책벌권 이라는 3가지 권한’이 있는가와 ‘수령에 대한 접근성’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정해진다. 그런데 ‘3가지 권한’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은 절대로 그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수 없
고 부단이 교체된다.

최룡해가 북한의 모든 실정을 장악통제하는 당 조직지도부 청사를 떠나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외국사절외에는 별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청사로 이사했다는 것은 그만큼 힘이 빠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봉주 내각총리가 당중앙위원회 청사로 들어가는데 당청사로 들어가 북한경제사령탑에 새로 앉은 김재룡을 당적으로 후원해주라는 의미이지 박봉주가 최룡해가 담당했던 조직지도부를 담당한 것 같지는 않다.

앞으로 적어도 1-2년 정도는 이번에 당 부위원장으로 올라 앉은 리만건이 당조직지도부를 이끌 것이며 아마 실권은 김정은을 측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조용원 제1부부장에게 많이 쏠릴 것이다. 이번에 김정은과 당중앙위원회 위원들과의 기념사진을 보니 외무성 1부상으로 승진한 최선희 옆에 전 외무성 1부상 김계관이 서 있는데 김계관은 하노이회담결렬로 인한 문책이 아니라 건강이 나빠 2선으로 물러선 것 같다.

이번 인사변동을 보면 지난 1년간 남북관계와 대미관계까지 주도해 오던 김영철의 대남라인의 힘은 좀 빠지고 앞으로 대남사업은 김영철의 통전부가, 대미사업은 원래대로 외무성이 전담하는 쪽으로 분업이 명백해진 것 같다.

넷째로, 향후 북한경제에서 군수공업의 비중이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김일성, 김정일때에는 북한경제 형편이 아무리 어려워도 경제국방병진노선을 내세우면서 군수공업이 민생경제보다 항상 우위에 있었다. 김정은대에는 핵경제병진노선을 내세우면서 몇 년동안 자금을 퍼부어 질주했다.

‘고난의 행군’때 김정일은 수백만의 아사현상을 보면서도 군수공업예산을 한푼도 민수로 돌리지 못하게 했다.그러나 이제는 이런 경제구조로 장기전에 뻗칠수 없게 되었다. 군수공업이 밀집되여 있는 자강도당 위원장인 김재룡을 내각총리에 임명하고 군수공업을 주관하던 이만건이 당 부위원장으로 옮겨 앉는 등 지난 수십년 동안 군수공업에 종사했던 많은 사람들이 민수공업쪽으로 돌아 앉고 있다.

앞으로 군수공장들이 민수공장으로 구조개편 된다면 국가도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며 군수공장을 민수공장들처럼 독립채산제로 운영하면 국가예산 증액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이 역사상 처음으로 군수공업을 줄이는 조치를 취해 나간다는 것 자체가 현 대북제재가 북한경제의 구석구석을 파고 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제재에 몰린 김정은이 앞으로 ‘제재 장기전에 자력갱생으로 뻗칠수 있는 대안’으로 국방공업에 대한 투자를 대폭 줄이는 구조개편을 단행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총제적으로 이번 한주동안 북한의 동향과 김정은의 시정연설내용을 보면 북한이 현실 인정방향으로 많이 돌아서고 있으며 김정은도 북한통제의 한계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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