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30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공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악수하는 모습
[김민호 기자]"문재인 대통령이 삼성전자 공장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난 것을 두고 개혁진보진영 학자들이 ‘촛불정신’에 위배된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참여연대도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지난 2일 한겨레는 김태동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말을 인용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만남은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다”며 “적폐청산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촛불정신을 배신하고, 재벌 체제의 적폐를 청산하고 갑을이 상생하는 경제 생태계를 만들라는 ‘지식인선언’의 요청을 100% 무시한 것”이라고 이같이 비판했다.

한겨레의 비판적 시각과 달리 지난달 30일 삼성전자 경기 화성사업장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난 일을 두고 신문들 평가가 엇갈렸다.

3일 미디어오늘은 매일경제는 지난 1일 사설 제목을 “문 대통령 삼성 방문, 이런 게 기업 기(氣) 살리기다”라고 뽑고 “비메모리 동반 육성을 통해 한국 반도체산업의 체질을 바꾸고, 대규모 투자로 일자리를 만드는 삼성전자의 노력에 문 대통령이 현장 방문으로 화답한 것은 반가운 일”이라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한국경제 역시 2일 사설에서 “문 대통령은 다른 기업과 업종 현장도 찾아 기업인들을 격려하고 등을 두드려주는 시간을 더 많이 내기 바란다”며 “지금 기업인들은 잔뜩 주눅이 들어 있다. 할 말은 많은데도 정부 눈치만 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지경이다. 이런 기업인들에게 대통령의 따뜻한 응원과 격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했다. 

보수 언론 조선일보는 1일 “문 대통령은 삼성전자에 ‘박수를 보낸다’, ‘새로운 희망을 주고 있다’는 ‘이례적 찬사’를 보냈다. 수출·투자 부진 등 거시경제 지표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기업 활동을 직접 독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문 대통령이 취임 초 ‘소득 주도 성장’과 ‘공정 경제’를 앞세우며 대기업과 거리를 유지했던 것과 대비됐다”고 평했다. 이어 “이를 두고 ‘경제 상황이 날로 악화하자 문 대통령이 친 기업 경제 기조로 전환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한겨레는 지난 2일 3면 “청와대-삼성 ‘밀월’ 뒤엔 노영민 비서실장 있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청와대와 삼성의 ‘시스템반도체’를 고리로 한 ‘밀월’로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가 소득주도성장 및 혁신성장에서 재벌 대기업에 의존하는 경제 성장 전략으로 돌아섰다. 이 ‘방향 전환’의 한 가운데에 노 실장이 있다는 풀이가 나온다. 노 실장은 주요 대기업과 가깝고 ‘친시장주의자’로 통해왔다”고 설명했다. 사진도 “문 대통령·이재용 악수…바라보는 노영민”이라는 제목으로 기사의 비판 논조를 담았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밀월'의 진실은 뭘까

▲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DSR에서 열린 시스템반도체 비전 선포식에서 대한민국 반도체 비전 발표를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문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만남은 올해 들어서만 다섯번째이고, 이 가운데 이 부회장이 청와대에 직접 들어가 문 대통령을 만난 것만 세 번이다. 기업인 중엔 횟수가 가장 많다. 문 대통령뿐 아니라 이낙연 국무총리,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등도 최근 삼성 공장을 찾아 이 부회장을 만난 적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친밀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주 언론 선데이저널은 문 대통령이나 이 총리 이외에도 노영민 비서실장이 별도로 이 부회장과 최소 세 차례 이상 만났다고 보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대법원 선고 결과에 대한 반대급부로 수 조 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겠다는 대화까지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매체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이 개별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고, 이 와중에 이 부회장이 상속세와 관련한 이야기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실장은 이 만남 이후 사석에서 이 지인들에게 이 부회장과 관련한 발언을 전했고,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다. 노 실장과 잘 알고 있는 인사는 “이 부회장의 상속세 납부 계획을 자세하게 노 실장에게 전했고, 노 실장 역시 상속세 납부가 에버랜드 때부터 이어온 삼성그룹의 모든 불법 행위를 매듭 질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부패 혐의로 기소돼 형이 확정되지 않은 재벌 총수와 최고 권력자의 잦은 만남, 전폭적인 지원 약속 등은 그 자체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많다. 특별사면권 등 국가형벌체계에서 대통령이 가진 권한은 막강하기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 청탁용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돼 풀려난 상태이지만 여전히 대법원 재판을 받고 있다. ‘재벌 봐주기’ 비판을 받은 항소심 재판부가 대폭 깎아줬던 이 부회장의 뇌물액도 36억원에 달한다. 같은 내용으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 항소심에선 이 부회장이 제공한 뇌물액수를 87억원으로 계산했다.

4월 30일 삼성 바이오로직스의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자회사 임직원들을 증거인멸 혐의로 구속, 그룹 차원의 조직적 범행을 확인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은 삼성이 그룹 차원에서 이들의 증거인멸 범행을 지휘한 정황을 포착하고, 분식회계를 감추기 위해 조직적으로 대응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향후 전모를 규명하기 위한 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4월 29일 삼성 바이오에피스 양모 상무와 이모 부장을 증거인멸 등 혐의로 구속해 수사하고 있다. 양 상무 등은 분식회계 의혹 관련 증거를 인멸하거나 위조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 수사에 대비하기 위해 회사 직원의 컴퓨터 및 휴대전화 등에 담겨 있던 자료를 직접 삭제한 것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합병 등 관련 내용을 지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르면 이달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대법원판결이 열린다. 문제는 대통령이 그룹 총수를 만나는 동안 다른 한 편에선 검찰이 삼성그룹 임원을 구속수사하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손에는 칼을, 다른 한 손에는 당근을 들고 삼성을 몰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속내가 무엇인지 이재용 부회장 대법원 판결 결과가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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