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23일 오전 서울 마포구 노무현재단에서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준비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거듭된 정계복귀 요청에 "원래 자기 머리는 못 깎는다"고 답했다.

또 이날 유 이사장은 광주MBC '김낙곤의 시사본색 -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년 특집방송'에 출연해 호남과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가 삐걱대기 시작한 첫 번째 사건인 대북송금 특검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의)대북송금 특검은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훼손하지 않고 계승하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었다"며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관계에 대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유 이사장은 "노무현 대통령은 고분고분한 후계자가 아니다"며 "김대중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상속받아 대통령 되신 분이 아니고 때로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각을 세웠던 분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무현 대통령은 로맨티스트다. 격정, 질풍노도 이런 캐릭터로 평생을 살았던 분이다"라며 "돌아가셨던 것도 마찬가지로 진짜 자기 색깔대로 돌아가신 거다"며 "'꿇고 살아가 이거지, 난 그렇게 안 살아'. 이명박 대통령 같은 분은 이런 분을 이해 못한다"고 전했다.

유 이사장은 2005년 참여정부 당시 비판을 받았던 '대연정 제안'에 대해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정치 자체를 생산적으로 업그레이드하지 않으면 이렇게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선거제도를 고쳐야 한다. 이런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유 이사장이 이날 언급한 김대중, 문재인 등 전직 대통령들은 과거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대통령이 됐다. 지금도 유 이사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은퇴의 정치학'을 유 이사장에게 오버랩 시킨다.

가까이 문재인 대통령. 정계은퇴, 번복, 복귀 수순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지켜오다 결국 정치적 동반자들과 지지자들의 요구에 못이겨 정치권의 중심에 들어와 결국 계파, 정당, 나라의 수장이 됐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마치고 야인으로 지내다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당시 야권으로부터 정치 복귀를 주문받았다.

그는 그 이전에도 청와대 비서직과 정치인은 다르다며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 출마를 요구받았지만 과로 등을 이유로 청와대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히말라야로 트레킹을 떠났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 뒤 결국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는 등 야권의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됐고, 2012년 대선 출마에 이어 2017년 대선 승리로 대통령이 됐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스토리도 그렇다.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하고 정계를 은퇴했다. 당시 그는 "40년의 파란 많았던 정치생활에 사실상 종막을 고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정계은퇴 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1994년에는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설립해 통일문제에만 전념하겠다고 했지만 1995년 제1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행보를 재개했다. 지방선거 첫 유세에서 "나는 선거에 출마할 권리도 있고 유세할 권리도 있고 투표할 권리도 있다"며 사실상 정계복귀를 선언했다. 정계은퇴 후 2년 여만이었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는 2002년 대선 재도전 실패 후 정계를 은퇴했다. 그러나 2007년 대선이 가까워지자 김 전 대통령의 전례를 언급하며 그의 정계복귀를 요구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여론조사 지지율도 꽤 높게 나온 상황이었다.

대선 두달 전까지만 해도 출마하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쳤지만 한달 앞으로 다가오자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확정돼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결국 3위로 낙선했지만 15%를 득표하며 선전했다. 이후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자유선진당을 창당해 18대 총선에서도 당선되며 정치생명을 이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올해초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도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하다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 같은 책임을 피하지 못했다"며 "향후 정국 변화에 따라 지지자들이 유 이사장에게 언제 어떤 책임을 바랄지 모른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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