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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데뷰 6주년】 방시혁을 말하다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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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6.13  08:3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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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방시혁 대표
[김승혜 기자] “이제는 노래와 춤, 연기는 물론 연주와 작곡까지 겸하는 뮤지션돌이 등장할 것이다.”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47)가 2011년 4월, 모교인 서울대 ‘언론정보문화 포럼시리즈’ 강연 중 한 말이다. ‘아이돌’이 아닌 ‘뮤지션돌’의 등장을 예견한 말이다. 그리고 2년 후인 2013년 6월 13일, ‘완전체 아이돌’이자 기존에 없던 뮤지션돌인 7인의 방탄소년단(BTS)이 등장했다.

그리고 6년, 2019년 6월 13일 방탄소년단이 데뷰 6주년을 맞았다.

방시혁 대표는 자신을 ‘방탄소년단의 아버지’로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아티스트란 누군가가 창조하는 것이 아닌데, 내가 아버지라고 불리는 순간 방탄소년단이 객체가 되기 때문에 내 음악적 철학과 맞지 않아 불편하다”는 게 이유다.

이달 초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는 방시혁 대표도 있었다. 하지만 모습은 드러내지 않았다. 그 거대한 공간은 K팝 가수 최초로 이곳에서 공연한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팬클럽 ‘아미’의 영광과 열기가 채웠다.

지난 11일 그룹 방탄소년단은  미국 빌보드 '소셜 50' 차트에서 새 역사를 썼다. 방탄소년단은 '소셜 50' 부문에서 통산 130번째 1위를 차지했다. 이로써 방탄소년단은 2017년 7월 29일 이후 현재까지 100주 연속 1위를 달성하며 최장기간 연속 기록을 자체 경신했다.

방시혁이 13일 데뷔 6주년을 맞은 방탄소년단의 프로듀싱을 통해 기존의 가요계에 없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소속 가수와 수평적으로 교류, 뮤지션들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데 특화됐다.

방시혁은 2010년 전후에는 미디어 인터뷰에 응하기도 했다. 요즘은 거의 공개석상에 나타나지 않거나 전면에 서지 않는다. 스스로 뽐내지 않는 스타일이다.

13일 뉴시스는 "하지만 자신의 성씨인 ‘방’을 ‘펑’으로 변환 가능한 ‘뱅(bang)’을 차용한 예명 ‘히트맨뱅’을 사용하기도 한 그는 음악 작업에서만큼은 대담하고 실험적"이라고 했다.

방시혁의 '어제' '오늘'

방시혁은 1994년 서울대 미학과 시절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받으며 가요계에 발을 들였다. 동갑내기 가수 겸 프로듀서 박진영의 눈에 띄어 1997년부터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작곡가로 활약하며 히트곡을 쏟아냈다.

그룹 ‘god’의 ‘하늘색 풍선’과 ‘프라이데이 나이트’, 비의 ‘나쁜 남자’, 보컬그룹 ‘에이트’의 ‘심장이 없어’, 보컬그룹 ‘2AM’의 ‘죽어도 못 보내’ 등이다. 지난해 평양에 울려퍼졌고 현지에서도 인기를 누리는 것으로 알려진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도 그의 작품이다.

2005년 JYP를 나와 자신의 회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그리고 2013년 첫 남성 보이그룹인 방탄소년단을 데뷔시켰다. 초반에 멤버들을 혹독하게 트레이닝시키기로 악명이 높았다. 

자부심이 강한 아티스트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11년 MBC TV ‘우리들의 일밤-서바이벌 나는 가수다’로 스타덤에 오른 가수 임재범이 방시혁이 작곡하고 백지영과 ‘2PM’ 택연이 부른 ‘내 귀에 캔디’ 리메이크를 요청했지만, ‘한번도 곡의 리메이크 승인을 해 준 전례가 없다’며 거절했을 정도다. 

‘방탄소년단’이라는 이름에도 자부심과 함께 포부가 드러난다. ‘방탄’은 총알을 막아낸다는 뜻이다.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막아내고 자신들의 음악과 가치를 당당히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무엇보다 방탄소년단이 스스로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데뷔 초 힙합을 내세운 연습생 시절부터 멤버들에게 팀으로 성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방시혁은 음악을 다룰 때도 열려 있다. 매끈한 팝을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그는 팝송을 즐겨 듣고 빌보드 차트를 달달 외우는 ‘빌보드 키드’였다.

한국형 팝 발라드의 개척자 유재하에게 영향을 받았고 ‘컴퓨터 미디’에도 박식하다. 테크노뮤지션 가재발이 속한 미디어 아트팀 ‘태싯그룹’은 빅히트 소속이기도 했다.

동요도 만들었다. 2011년 시인 최승호와 '최승호·방시혁의 말놀이 동요집'을 통해 동요를 작곡했다.

당시 출판사 제안을 몇차례 정중하게 고사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아이들도 좋은 음악을 들을 권리가 있다고 판단, 창작자의 사회적 책임으로 의뢰비와 상관 없이 최선을 다해 작업한 일화는 출판계에 잘 알려져 있다. 

오랜 기간 음악의 구실에 꾸준히 고민을 해온 결과, 방시혁은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프로듀서가 됐다. 세계 주요 단체들의 인정을 받으며 글로벌 뮤직 리더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빌보드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와 버라이어티 '인터내셔널 뮤직 리더'에 2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 방탄소년단, 한국가수 최초 웸블리 공연
또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들과 함께 미국레코딩아카데미 회원으로 최근 선정됐다. 빅히트는 "세계에 미친 음악적 영향력과 기여가 반영된 것"이라고 자평했다.

1957년 설립된 레코딩아카데미는 세계 최고 수준의 아티스트, 작사가, 제작자, 엔지니어가 속한 전통의 음악전문가 단체다. 1959년부터 '그래미 어워즈'를 주최하고 있다. 매년 아티스트와 음악산업 종사자를 대상으로 회원 등록 신청을 받지만, 승인이 매우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다. 방시혁이 등록된 프로페셔널 회원(professional member)은 총괄 프로듀서, 저널리스트, 음악대학 교수, 레이블 고위 관계자 등이 자격 기준이다.

방시혁은 단순히 음악 창작자 영역을 넘어 ‘국민적 크리에이터’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 최근 두 달간 한국인 여론 주도층 341명과 한국문화를 경험한 외국인 여론 주도층 265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 이미지' 설문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한국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사람의 신뢰는 그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확인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1년 이상의 계약기간을 남긴 지난해 10월 빅히트와 재계약을 체결했다. 일반적으로 재계약은 계약종료 시점을 바로 앞두고 이뤄진다. 반면, 조기 재계약은 프로스포츠 등 일부 최고스타들에게 적용되는 선진적 방식이었다. 

방시혁과 빅히트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으로 최고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가수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것”이 빅히트와 방시혁의 철학이다. 

방탄소년단은 당시 “데뷔 이전부터 지금까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음악은 물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일깨워 준 방시혁 멘토를 존경한다”고 화답했다.

6년 전 오늘, 방탄소년단은 부당한 것에 자신들의 언어로 반기를 들며 등장했다. 그리고 지금, 척박한 세상에 위로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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