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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 장영자 또 다시 '큰집'행..."목포 갑부 딸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신소희 기자  |  roryrory0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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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4  19: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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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희 기자]지난 1980년대 희대의 어음 사기 사건으로 이름을 알린 뒤 출소 후 또 다시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장영자(75)씨에 대해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장두봉 판사는 4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장씨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장 판사는 "피해자들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진술하고, 관련 계좌 거래내역이나 사용 사실을 종합하면 사기 공소사실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위조유가증권 행사 혐의 역시 "은행 회신 결과, 자기앞수표를 건네받은 사람들의 진술, 자기앞수표에 기재된 내용 등을 종합하면 위조 사실을 장씨가 충분히 알았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장 판사는 "사기 피해금액이 합계 5억원에 이르는 점, 피해회복이 이뤄지지 않은 점, 동종범행 누범기간 중 이 사건 각 범행을 한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이유를 설명했다.

당초 선고가 예정됐던 지난 2일 법정에 나오지 않았던 장씨는 이날도 법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장 판사는 "서울구치소에서 소장 명의로 피고인을 인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취지의 출석거부 보고서가 들어왔다"며 "형사소송법 규정에 의해 피고인 출석 없이 판결을 선고하겠다"고 설명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장씨는 2015년 7월∼2017년 5월 남편인 고(故) 이철희 씨 명의의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기증하려는데 비용이 필요하다거나, 사업자금이 필요하다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약 6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범행 당시 시가 150억원에 이르는 남편 명의의 삼성전자 주식 1만주가 담보로 묶여 있다며 이를 푸는 데 돈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기도 했다. 그러나 검찰 조사 결과 장씨 남편 명의의 에버랜드 전환사채나 삼성전자 주식 등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장씨는 억대 위조수표를 현금으로 바꾸려 한 혐의(위조유가증권 행사)도 받고 있다.

장영자 씨는 재판 내내 검찰과 재판부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내며 혐의를 전면 부인해 왔다. 선고 공판은 애초 지난 2일로 잡혀 있었지만 장씨는 불출석 사유서를 내고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장씨가 이날도 불출석하자 장 판사는 장 씨 없이 판결을 선고했다.

장씨 부부의 '어음 사기 사건'은 검찰 60주년을 맞아 선정한 역대 사건 20선 중에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장씨는 남편과 함께 자금사정이 긴박한 기업체에 접근, 어음을 교부받아 할인하는 수법으로 6404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대 규모 금융사기사건'으로 불리는 장영자 사건으로 당시 철강업계 2위였던 일신제강과 도급 순위 8위였던 공영토건은 부도가 났고, 30여 명이 구속됐다. 이후 두 사람은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먼저 가석방된 남편에 이어 장씨는 1992년 가석방됐다.

.이후에도 장씨는 1994년 100억원대 어음 사기 사건으로 구속됐고, 2001년에는 220억원대 화폐 사기 사건으로 구속됐다.

   
▲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의 처제로 사채시장을 주무른 ‘큰손’ 장영자가 1982년 5월 첫 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한겨레 캡쳐
'큰손' 장영자는 누구?

‘목포에서 그 집안 땅을 안 밟으면 못 지나간다’고 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알려진 장영자 씨는 아홉 살 때인 1953년 서울에 올라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다니다 숙명여자대학교 교육학과에 편입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재학시절 장영자는 '메이퀸'으로 뽑히기도 했다. 대학재학 시절 첫 결혼하였으나 실패하여 두 차례 이혼하였다. 1979년 당시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이었고 중앙정보부 차장까지 지낸 이철희를 만났다. 1982년 2월 서울 장충동 사파리 클럽에서 정관계인사들을 대거 초청하여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초호화판 결혼식을 올려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친인척이자, 전 중앙정보부 간부 출신 남편이라는 배경을 등에 업고 미모와 재력을 두루 갖춘 사교계의 여왕 같은 존재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에는 1억원을 웃도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2명의 비서와 4명의 경호원이 곁을 지켰으며, 평균 직장인 월급이 20만 원이던 시절 한 달 생활비로 3억9,000만원을 쓸 정도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고 전해져 세간의 큰 관심을 한몸에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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