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박경리 작가의 생전 모습.
[김승혜 기자]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보복조치에 국민적 분노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소설 ‘토지’로 유명한 작가 박경리(1926~2008년)가 일본에 대해 쓴 글이 네티즌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다.

박경리는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 ‘토지’, ‘김약국의 딸들’을 남기고 땅으로 돌아간 ‘문학의 어머니’다. 박경리는 1969년 8월부터 1994년 8월까지 무려 4반세기 동안 ‘토지’를 집필했다. 외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1권 분량으로 예상한 소설을 대하소설로 마침표를 찍었다. 시대적 억압을 정면으로 돌파하려 한 ‘서희’라는 인물을 이 땅에 심고 떠났다.

박경리가 생전 일본에 대해 2013년에 펴낸 책 ‘일본산고’(마로니에북스)를 통해 “‘한 시절 전만 해도 조선인은 우리 앞에 우마(牛馬ㆍ소와 말)나 다름없는 존재 아니었나. 이제 와서 제법 사람 노릇 한다. 도저히 보아줄 수 없군’ (이런 일본인들의 태도는) 근본적으로 우리에게서 문화를 조금씩 빌려 갔었던 무지하고 가난했던 왕사(往事ㆍ지난 일)로 하여 사무쳐 있던 열등감 탓은 아닐까.”라고 일본을 향한 소회를 밝혔다.

19일 네티즌들은 이 책속에 일본인을 '예로 대하지 말라'는 아래 대목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 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상다리가 휘어지게 음식을 잘 차린 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는 부분이다.

이는 일본 역사학자 다나카 아키라와가 1990년 국내 한 언론에 ‘한국인의 통속민주주의에 실망합니다’라고 기고하자, 박 작가가 같은 매체에 ‘일본인은 한국인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는 제목으로 쓴 반박문이다. 박 작가는 “옛날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지만 일본은 양심이 많아져야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며 세계 평화에도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고도 했다.

박 작가는 “설령 일부 지각없는 사람들이 우쭐해서 (통속민족주의를 과시하며) 과잉 표현을 좀 했다 하자. 그들의 천진한 자랑 때문에 일본의 땅 한 치 손실을 보았는가, 금화(金貨) 한 닢이 없어졌는가, 왜 그렇게 못 견뎌 할까. 그 같은 자랑조차 피해로 받아들이는 그들이고 보면 우리 한국의 천문학적 물심양면의 피해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안이 벙벙해진다”라면서 한국땅을 강제 점령한 일본의 과거를 비판했다.

박 작가는  다나카 아키라와에게 화가 단단히 난 듯 “거칠 것 없이 남의 팔다리 잘라놓고 뼈 마디마디 다 분질러놓고 제 자신의 새끼손가락에서 피 한 방울 흐르는 것을 보는 순간 새파랗게 질리면서 ‘아파! 아파!’ 하고 울부짖는 형국”이라며 “이런 정도를 못 견디어 하는 증상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생각건대, ‘한 시절 전만 해도 조선인은 우리 앞에 우마(牛馬)나 다름없는 존재 아니었나. 이제 와서 제법 사람 노릇 한다. 도저히 보아줄 수 없군.’ 그런 불쾌감도 있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에게서 문화를 조금씩 빌려 갔었던 무지하고 가난했던 왕사(往事)로 하여 사무쳐 있던 열등감 탓은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신이 나서 발 벗고 나서서 떠들어대지만 좋은 것에 대해서는, 특히 문화 면에서는 애써 못 본 척 냉담하고 기분 나빠하고 깔아뭉개려 하는 일본의 심사는 어제 그제의 일이 아니었다”면서 “그 집요함을 도처에서, 사사건건 우리는 보아왔다”고 지적했다.

박 작가는  “일본의 어느 잡지사 편집장이 내 집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일본을 이웃으로 둔 것은 우리 민족의 불운이었다. 일본이 이웃에 폐를 끼치는 한 우리는 민족주의자일 수밖에 없다. 피해를 주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민족을 떠나 인간으로서 인류로서 손을 잡을 것이며 민족주의도 필요 없게 된다’라면서 한국인이 민족주의자가 된 까닭이 일본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박경리는 다음과 같이 일본에 직격탄을 날렸다.

“나는 젊은 사람에게 더러 충고를 한다. ‘일본인에게는 예(禮)를 차리지 말라. 아첨하는 약자로 오해받기 쉽고 그러면 밟아버리려 든다. 일본인에게는 곰배상을 차리지 말라. 그들에게는 곰배상이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고 상대의 성의를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힘을 상차림에서 저울질한다.’”

누리꾼들은 박 작가의 통찰력이 놀랍다는 반응이다. 댓글에는 “몇 년 전엔 시대착오적이라고 비아냥거렸었는데, 이제 와서 보면 대단한 통찰력이다”(김**), “덕분에 읽을 책이 하나 더 생겼다”(그***), “일본에 대한 지식과 그 감정이 잘 담겼다. 읽을 만한 책이었다”(one***), “정말 명문이다”(찌**) 등의 칭찬 글이 다수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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