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블록체인, 양자컴퓨터,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수소전기차, 자동차 배터리 등은 미래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다줄 신기술로 꼽힌다.

신기술을 확보한 국가가 미래 경제의 주도권도 거머쥐게 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세계 각국은 기술력 강화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전폭적으로 산업을 육성하는 중국의 ‘굴기’가 매서운 기세다. 중국은 저가 수주로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철강과 조선 분야를 잠식했고, 이어 디스플레이와 스마트폰 산업에서도 우리나라를 위협하고 있다. 반도체 역시 비슷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첨단산업을 뒷받침하는 우리의 ‘신기술’ 현주소는 어떤가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18일 발표한 ‘우리 기업의 미래준비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은 샌드위치 현상 심화, 4차 산업혁명 신기술 활용 애로, 미래 수익원 부재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국내 제조업체 5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우선 기업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고민은 선진국과의 경쟁력 격차 확대와 신흥국의 역전 위협이었다. 선진국과의 격차에 대해 ‘뒤처진다’는 답변은 61.2%로 ‘비슷한 수준(35.8%)’이거나 ‘앞서있다(3.0%)’고 답한 기업보다 많았다. 이는 10년 전(41.3%)보다 20%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반면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기업과의 경쟁력 격차에 대해서는 ‘비슷한 수준’(35.9%)이거나 ‘오히려 뒤처진다’(5.4%)고 답한 기업이 41.3%에 달했다. 2010년 조사 당시 응답률이 10.4%였던 점을 감안하면 신흥국 추격에 위협감을 느끼는 10년새 4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신흥국보다 앞선다는 응답률도 ‘3년 이내’가 31.6%로 ‘5년 이내’(18.5%)와 ‘5년 이상’(8.6%)이라는 답변을 합친 것보다 많았다. 신흥국과의 경쟁력 격차를 유지·확대할 골든타임이 3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미래수익원의 기반이 될 4차 산업혁명 기술 활용도 역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응답기업의 절반 가량인 48%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부 활용’이 46%였으며 ‘적극 활용 중’이라는 응답은 6%에 불과했다.

기업의 4차 산업혁명 활용 지원을 위한 정부의 정책 대응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주류를 이뤘다. ‘정책 분야별 대응의 충분성’을 묻는 질문에 ‘규제 완화’(62.9%), ‘인력 양성’(62.7%), ‘R&D 지원’(59.4%), ‘벤처·창업 지원’(50.6%) 순으로 ‘잘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답변이 많았다.

초고순도 불화수소’ 기술, 8년 전 개발

이러한 가운데 국내 중소기업에서도 이미 8년 전 일본 수출 규제 품목 가운데 하나인 초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제조 기술을 확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초고순도 불화수소는 일본이 한국을 겨냥해 수출규제 조치를 내린 3가지 핵심소재 가운데 하나다.

22일 특허정보 검색서비스(KIPRIS)에 따르면 산업기계 제조업체 A사는 2011년 7월 '초고순도 불산(HF)의 제조방법' 특허를 출원했고, 2013년 9월 특허가 등록됐다.

공개된 특허정보를 보면 이 제조법은 초음파 진동을 가하는 방법으로 불화수소(불산) 중에 수분을 제외한 불순물 성분이 1ppb(10억분의 1)만 남도록 하는 기술이다.

또한 특허 공개전문에 따르면 특정 상황에서는 불순물 농도가 최저 0.1ppb(100억분의 1)까지도 줄어들 수 있다.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던 불화수소는 순도 99.9999999999%(9가 12개)의 제품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불순물이 100억분의 1 수준만 함유돼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본 제품보다 순도가 낮은 것은 사용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순도를 조금 낮춰도 괜찮을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면서 "6개월 이상의 시간을 들여 테스트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A사 관계자에 따르면 특허 출원 이후 초고순도 불화수소의 생산과 판매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제조 공장과 함께 각종 장비에 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한데, 실제 판매가 가능할지 확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추가 투자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입장에선 아직 생산된 적도 없는 제품에 선뜻 투자하기가 어렵고 중소 업체 또한 불확실성을 고려해 더는 투자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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