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일버 편집국장/대기자
[심일보 대기자]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일본이 우리나라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청구권 배상 판결에 반발해 불화수소를 비롯한 몇몇 제품들에 대한 사실상의 한국 수출조치를 취하면서부터다.

이성환 계명대 교수(일본학전공)는 최근 한 언론에  "이번 사태의 배경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일본의 한국 길들이기, 한국의 성장 막기, 아베 개인의 정치 생명 유지"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현재 중미 관계의 축소판이 한일 관계다. 미국이 중국의 힘을 견제하는 것처럼 일본도 한국의 힘이 커지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자 하는 것"이라며 "한일 양국은 다소 오랜 기간 지속해온 힘의 수직관계가 수평관계로 바뀌는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 사태가 경제 문제이면서 사실상 정치 문제라고 꼬집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개인적인 정치 성향이 크게 반영됐다는 것이다.

그는 "2017년 중의원 선거 당시 일본에서 여론 조사를 했는데, 선거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요인으로 '북한'이 '세금'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렇다 보니 아베 정부가 선거 때만 되면 '북한 때리기'에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하지만 최근 북미관계가 좋아지면서, 대타로 한국을 때리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치전문가들은 한국의 저자세 외교에 익숙해진 일본의 황당무계한 대담성사법 친일파들이 오늘의 사태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이번 조치가 일제 강제징용 청구권 배상 대법원 판결과는 관련이 없다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해명만 늘어놓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굴욕적으로 끌려가던 모습을 보였던 한국 정부가 돌연 강경한 자세로 나서자 일본이 ‘한국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명박근혜 정부로 불리는 보수 정권 9년 동안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 일방적으로 일본에 저자세로 나온 것이 원인을 제공했으며, 일본 기업 변호에 앞장서온 국내 로펌들이 오히려 앞장서서 일본 측에 논리를 제공한 것도 이번 사태의 원인이란 분석이 나온다.

대법원 판결은 2005년 처음으로 공개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문서에 따라 일본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개인의 배상청구 권리가 살아있다는 법적 해석이 나오면서 내려졌다. 1·2심 법원은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판단했지만 2012년 5월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할아버지들이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2013년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대법원 판시 내용대로 신일본제철이 1억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신일본제철은 대법원의 판단에 불복해 재상고했다.

 
지난해 <선데이저널>은 여기에 관여된 정부 및 법원 관계자들을 ‘21세기판 을사오적’으로 꼽았고, 이 기사가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모으바 있다.

내용을 요약하면 1945년 일제강점기가 끝난 이후 한국과 일본은 경쟁과 협력을 통해 성장해왔다. 반일 정서가 국민들의 가슴 속에 남아있긴 했지만, 정치 경제 분야의 협력을 꾸준히 이어져왔다. 2002년에는 월드컵까지 공동개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독도를 방문했을 때도 일본은 강하게 반발했지만 지금과 같은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즉 박근혜 정부의 대일 저자세 외교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자세를 불러왔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정치인들과 법조계가 일본 정부에 유리한 판결을 위해 대책회의까지 하고, 국내 최고의 로펌이라는 곳은 일본 전범기업까지 나서서 변호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자 일본은 그와 같은 한일관계를 유지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리고 문재인 정부가 본격적인 강제 집행 움직임을 보이자 일본 정부는 유례 없는 수출 제한 조치까지 들고 나왔다.

한 마디로 5년 동안 자신들 편이라고 생각했던 한국 정부가 강경한 자세로 나온 이 상황이 불쾌했던 것이다. 물론 참의원 선거를 앞둔 아베 신조 총리의 정치적 목적도 있었지만, 이번 일본의 조치는 여러 가지 상황이 맞물린 것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런 일본의 안하무인격 외교를 불러온 일등 공신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라는 지적이다. 황 대표는 박근혜 정부 국무총리 시절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합의과정에서 내놓은 10억엔에 대해 ‘일본 정부가 사죄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시사하는 발언까지 해서 지탄의 대상이 됐다.

황 대표는 총리시절이던 2015년 10월 14일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발효해서 자위대를 파견한다면 할 것인가”라는 강창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의에 “구체적인 결단이 필요하다면 허용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또 박근혜 정부의 주요 내각 인사들은 일본과 가까운 인사들로 채워졌다. 김기춘 전 실장은 자신의 동년배 친구를 주일한국대사로 보냈다. 한반도 주변 4국에 80살에 가까운 고령을 대사로 보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초대 외교부 장관은 아예 일본 전범 기업을 변호했던 윤병세 전 장관이었다. 윤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으로 4년 넘게 재임한 ‘장수 장관’이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둘러싸고 대법원과 청와대가 부적절한 거래를 했다는 시기도 이때였다.

일본에 너그러운 이런 일사분란한 정부 인사들과 전범기업을 변호하는 로펌도 한 몫 했다.

정부는 이번 대법원 판결에 있어서 정부 즉 행정부가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지난 5년 간 일본 정부는 정부와 사법부가 손잡고 일본 측 입장을 옹호한 것을 똑똑히 목도해왔다. 이것을 본 일본이 문재인 정부의 삼권분립 원칙을 인정할 리가 없다. 문재인 정부의 옳고 그름을 떠나 박근혜 정부의 삼권분립 원칙 훼손이 결국 오늘의 결과를 불러온 셈이다.

결국 잃어버린 20여 년 동안 엄청난 자존심을 구긴 일본은 역사적인 이슈에 대해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 종지부를 찍겠다는 발상이다. 최근 일본 경제가 기사회생하면서 자신감이 다시 붙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길들이기를 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겨난 것이다.

어쨌건 정부는 자존심이나 국가의 품격을 훼손하지 않고 양국이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하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란 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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