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왼쪽
오른쪽
> 헤드라인뉴스 > 톡톡 시사현장
일본 지식인 75인 성명[전문], 日 반응 보니?...“한국이 적인가”
김홍배 기자  |  klmhb@sisaplusnews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7.29  15:22:09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 구글

   
▲ 전쟁 금지한 헌법 9조 수호 외치는 시위자들
[김홍배 기자]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에 일본의 지성인들이 아베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교수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일본 사회 지도층 75명이 지난 25일 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고 서명 운동에 돌입했다. 이러한 서명운동에 참여하고 응원하는 일본인들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29일 해외네티즌 반응 커뮤니티 가생이닷컴이 번역한 일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세계와 사이좋게 지낸다" 그것이 비참한 전쟁에서 도출된 교훈이었다. 특히 이웃나라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최고의 안전 보장이다”, “혐한을 부추기는 사람의 마음을 모르겠어요. 사람은 모두 평등해요”, “반도의 평화가 모색되는 가운데 선한 이웃나라로서 지금이야말로 필요한 이웃과의 유대”, “한국에 갔을때 친절하게 대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를 잊을수가 없네요”, “일본 정부의 대응에 위화감이 있습니다. 우호와 평화 유지를 위해 진지한 대화를 강력히 희망합니다”, “적을 만들지 마세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 구축을 원합니다. 아베 정권은 그 흐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 아베 정권의 한국에 대한 태도는 정말 심하다. 어쨌든 이런 정권은 퇴진밖에 없다"등 아베 정권의 수출규제를 비판하는 글이 다수를 차지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이번 아베의 수출 규제 조치를 찬성하는 네티즌들의 글은 찾기 어렵다는 것.. 다음은 이들이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

우리는 7월초 일본 정부가 밝힌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에 반대하고 즉각 철회를 요구합니다.

반도체 제조가 한국 경제에 중요한 의의란걸 감안하면 이 조치가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안길수 있는 적대적인 행위임이 분명합니다.

일본 정부의 조치가 취해진 초기에는 지난해 '징용공' 판결과 그 후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한 보복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자유무역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일본 정부는 안전보장상의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에 취해진 조치라고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7월 15일 "남북 관계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힘을 다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다"라며 세차게 반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 한국은 적인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는 충돌도 일어나고 불이익 조치가 취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국이 취한 조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대항 조치를 취하면 상대방을 자극해 역효과가 날수 있습니다.

특별한 역사적 과거를 지닌 일본과 한국의 경우는 대립하더라도 신중한 배려가 필요합니다.과거 일본이 이 나라를 침략하고 식민지 지배를 했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보여지면 (한국은) 어떤 정권도 국민으로부터 버림받습니다. 일본의 보복이 한국의 보복을 불러오면 그 연쇄반응의 결과는 진흙탕입니다.

양국의 내셔널리즘은 당분간 수습이 불가능해 질수 있습니다. 이런 사태에 빠지는 것은 절대 피해야 합니다.

이미 많은 지적이 있듯이 이번 조치는 일본이 다대한 혜택을 받아온 자유무역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고 일본 경제에도 크게 마이너스가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내년은 도쿄 올림픽·패럴림픽의 해입니다. 보통이라면 주변에서 분란이 일어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주최국이겠죠.

그런데 주최국 자신이 주변과 마찰을 일으켜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번 조치로 양국관계는 뒤틀릴 뿐이고 일본에 있어서 얻을게 전혀없는 결과로 끝날것입니다.

"문제의 해결은 감정적이지 않고 냉정하고 합리적인 대화 이외에는 있을수 없습니다"

당장 떠오르는건 아베 총리가 올해 초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대해 말하고 북한에 대해서조차 상호 불신의 껍질을 깨뜨리고 나 자신이 김정은과 직접 마주보고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협상을 하겠다고 한 반면 한일 관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국을 "상대하지 말라"는 자세를 과시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6월말 오사카에서의 G20 회의때는 참석한 각국 정상들과 개별적으로 회담했는데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만은 완전히 무시하고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이번 조치입니다.

이것은 마치 한국을 '적'으로 취급하는 것인데 이는 말도 안되는 실수입니다.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조로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함께 만들어가는 중요한 이웃입니다.

2. 한일은 미래 지향적 동반자

1998년 10월 김대중 한국 대통령이 방문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국회에서 연설하고 전후 일본은 의회 민주주의 하에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에 대한 원조 대상국이 되는 것과 동시에 평화주의를 지켜왔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국민에게는 과거를 직시하고 역사를 두려워 할 수 있는 용기를 또 한국 국민에게는 전후 크게 달라진 일본의 모습을 평가하고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자고 호소했던 것입니다. 일본 국회의원들도 크게 박수를 치며 이 요청에 답했습니다.

군사정권에 몇 번이나 죽을 뻔한 김대중 씨를 전후 민주주의 속에서 자란 일본 정치가와 시민들이 지원해서 구한적도 있었습니다. 또 일본의 많은 사람들도 김대중 씨가 군사정권의 탄압 속에서 신념을 지키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운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 상호의 경의가 오부치 총리와 김대중 대통령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또한 한국 국민에게는 일본에 대한 의혹과 불신이 높지만 일본이 전쟁전의 역사를 직시하고 또 전후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켜나간다고 하면 함께 미래로 향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큰 희망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에서 금지되었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을 강행했습니다.

3. 한일조약, 청구권 협정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前 징용공 문제에 대해 아베 정권은 국제법, 국제 약속을 위반했다고 거듭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과 그것에 근거한 '한일 청구권 협정'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1910년 한국병합조약 무효를 선언하고 있습니다만 한국과 일본에서 이 제2조 해석이 대립하고 있는 것은 한국 측의 해석으로는 병합 조약은 본래 무효이며 일본의 식민지배는 한국 동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에 강제된 것이라 하지만 일본측의 해석으로는 병합 조약은 1948년 대한민국 건국 때까지 유효하며 양국 합의에 의해서 일본은 한국을 병합했으니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도 사죄도 행할 생각이 없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반세기 이상이 지나면서 일본 정부도 국민도 변해갔습니다. 식민 지배가 한국인에게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음을 인정하고 그것은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 일본 국민의 공통된 인식이 되었다는 1995년 무라야마 총리 담화의 역사 인식은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 그리고 2002년 '북일평양선언'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이 인식을 기초로 하여 2010년 한국 병합 100년에 간 나오토 총리 담화도 더해 일본 정부가 한국과 마주하면 나타날 문제를 협력하고 풀어나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문제가 되고 있는 前 징용공 들의 소송은 민사 소송이며 피고는 일본 기업입니다. 우선은 피고 기업이 판결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지가 추궁 당했을 것인데 처음부터 일본 정부가 뛰쳐나옴으로써 사태를 혼란시켜 나라 대 나라의 싸움이 되어버렸습니다.

前 징용공 문제와 같은 중국인 강제연행 강제노동 문제에서는 1972년 중일공동성명에 따른 중국 정부의 전쟁 배상의 포기 후에도 2000년 가시마 건설 화해, 2009년 니시마쓰 건설 화해, 2016년 미츠비시 머티리얼 화해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당시 일본 정부는 민간끼리의 일이라며 일체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한일기본조약·한일 청구권 협정은 양국 관계의 기초로서 존재하기에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이 상투적인 말처럼 반복하는 해결이 끝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일본 정부 자신이 일관해서 개인에 의한 보상 청구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반세기 동안 사할린 잔류 한국인의 귀국 지원, 피폭된 한국인 지원 등 식민 지배에 기인하는 개인의 피해에 일본 정부는 궁리하면서 보상을 대신해 조치도 행해왔고 아베 정권이 박근혜 정권과 2015년 말에 합의한 '한일 위안부 합의'(이 평가는 여러 가지고 또 이미 재단은 해산했지만)도 한국 측의 재단을 통해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 개인에 국비 10억엔을 내민 사례나 다름없습니다.

한편 한국도 노무현 정부때 식민 피해자에 대한 법률을 제정해 개인 보상을 실시했습니다.이러한 사례를 근거로 한다면 쌍방이 납득할 타협점을 찾아내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현재 중재 위원회 설치를 놓고 대립하고 있지만 한일 청구권 협정 제3조에는 중재 위원회에 의한 해결에 먼저 착안한 것은 2011년 8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국 헌법 재판소의 결정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은 중재 위원회 설치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경위를 근거로 하여 문제 해결을 위한 성실한 대응이 요구됩니다.

끝으로 우리는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를 즉각 철회하고 한국 정부와 냉정한 대화 및 논의를 시작하기를 촉구합니다. 이미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이 열려 한일 문화 교류, 시민 교류는 엄청난 규모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BTS(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압도적입니다.

TV 취재의 한 여고생은 "(일본의) 여고생은 한국에 살고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습니다. 300만 명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여행하고 700만 명이 한국에서 일본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넷우익과 헤이트 스피치 단체가 아무리 외쳐대도 일본과 한국은 중요한 이웃 나라로 한국과 일본은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아베 총리는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을 갈라 양국민을 대립 반목시키는 일을 그만두십시오.의견이 다르면 손을 맞잡고 토론을 계속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김홍배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 구글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기사
시사칼럼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이메일무단수집거부청소년보호정책
서울시 마포구 마포대로 15번지 현대빌딩 507  |  발행일자 : 2013년 12월 16일  |  대표전화 : 02)701-5700, 7800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일보  |   정기간행물ㆍ등록번호 : 서울 아02917  |  등록일자 : 2013년 12월 5일
발행인/편집인 : 정재원  | 편집국장 : 심일보(010-8631-7036)  |  팩스 : 02)701-0035
Copyright © 2013 시사플러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aster@sisaplusnews.com
시사플러스의 기사 등 모든 콘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