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2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리스트 배제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김민호 기자]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와 관련해 "정부는 우리에 대한 신뢰 결여와 안보상의 문제를 제기하는 나라와 과연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포함해, 종합적인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상응조치'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의 연장 거부 카드를 검토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김 차장의 이같은 발언은 이날 일본 정부가 각의(閣議·국무회의)를 열어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간소화 우대국 명단) 한국 배제를 골자로 한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 처리를 강행한 것에 대한 맞대응 차원이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의 파기 가능성을 보다 강하게 시사한 것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임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우리 역시 맞대응할 수 있는 방안들을 가지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감 차장은 "우리는 일본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주요 구성원으로 보고 남북 정상회담 등 계기에 납북 일본인 문제는 물론 북일 수교와 관련한 일측 입장을 북측에 전달하는 등 일본을 적극 성원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일본은 우리의 평화프로세스 구축 과정에서 도움보다는 장애를 조성했다"며 "일본은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한미연합훈련 연기를 반대했으며,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는 와중에서도 제재·압박만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 국민의 전시대피 연습을 주장하는 등 긴장을 조성하기도 했다"고 한반도 평화추구에 반하는 일본의 과거 사례를 일일이 열거했다.

김 차장은 특히 "일본이 지향하는 평화와 번영의 보통국가의 모습이 무엇인지 우리는 한번 신중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추진 중인 개헌의 당위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일본이 수출물자 규제 조치를 취하면서 안보상의 이유를 제기하자 같은 논리로 맞받아 친 것이다. GSOMIA 연장에 회의적인 반응으로 일본의 약한 고리를 흔든 것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의 제안에도 계속해서 대화를 거부했던 일본의 사례도 열거했다. 수출통제 제도의 국제기구 검증 제안(7월12일), 산업통상자원부·경제산업성 담당 국장간 협의 요청(7월16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 수석대표간 일대일 대화 제안(7월24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장관회담 제안(7월27일) 등에서 일본이 모두 대화 제의를 거부했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김 차장은 최근 한일 간 고위급 인사의 접촉이 있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특사 파견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보수 언론의 비판이 부당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김 차장은 "많은 분들이 왜 우리가 보다 적극적으로 특사 파견을 하지 않느냐고 비판 하기도 했다"면서도 "(하지만) 이미 우리 정부 고위 인사의 파견은 7월 중 두 차례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우리 측 요청에 따라 고위 인사가 일본을 방문해 일본 측 고위인사를 만났다. 당시 우리측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제안하는 데 왜 8개월이나 걸려야 했는지에 대해 소상히 설명하고, 일본 측이 요구하는 제안을 포함하여 모든 사안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논의할 의향이 있다는 입장도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통상분야 전문가이기도 한 김 차장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입에 의존해 수출을 하는 한국의 산업생태계와 경제체제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 차장은 "우리는 우리의 수출이 증가하면 할수록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와 부품 수입이 동시에 증가하는 가마우지 경제체제로부터 이제는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마우지 경제체제는 원자재를 수입해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가공 무역 체제의 단점을 지적할 때 사용하는 경제 용어다. 

원자재를 수출하는 국가에게 무역의 이익을 상당수 뺏기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으로 일본으로부터 반도체 핵심소재를 수입해 글로벌 시장에 완제품을 수출하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에 딱 어울린다.

김 차장은 "만약 20년 전에 일본이 오늘의 조치를 우리에게 취했다면 상황은 더욱 심각했을 것"이라면서도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이제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해 낼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 때와 달리 한국 경제의 기초체질이 다져져 있기 때문에 일본발 무역장애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차장은 산업적 측면에서의 새로운 생태계 구축, 정부의 지원 방향, 대기업의 역할 등 크게 3가지 차원으로 나눠서 각 분야에서의 필요한 노력들을 제시했다.

김 차장은 "국내 산업적 측면에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며 "핵심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내 환경 규제와 노동 규제와 관련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연구개발(R&D) 투자도 대폭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정책에 관여하는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방지하기 위해 이들에 대한 정책감사도 면제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해외 기술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는 적극 지원해 나갈 것"이라며 "우리의 우수한 해외 기술인력이 국내로 유입될 수 있도록 정부가 장려책을 시행하는 데도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대기업의 역할에 대해 김 차장은 "상생 차원에서 우리 중소기업 제품들을 더 많이 구매해주고, 역량을 갖춘 부품·소재 중소기업들이 성장해 기술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상생의 환경생태계 조성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국내 기업들로 하여금 핵심 소재 및 부품 분야에 대한 신규투자에 있어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라는 확신을 주게 될 것이라는 게 김 차장의 설명이다.

김 차장은 근현대 이후 제국주의 열강 사이에서 수많은 곡절을 겪고도 현재 세계경제 12위로 자리매김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직면한 일본과의 갈등국면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고취하기 위한 메시지였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청일전쟁, 아관파천, 카쓰라-태프트 밀약, 을사늑약, 한일강제병합 등을 열거했다.

김 차장은 "오늘 우리가 직면한 위기도 충분히 극복해 낼 수 있다. 우리가 이룬 성취를 더욱 가속화하기 위해 우리 기업들간 상생 생태계 구축을 통한 기술 발전을 이루어 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세계는 다자 차원의 국제분업 체계로부터 자국 중심주의로 전환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며 "이러한 추세에 맞춰 우리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경제안보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차장이 언급한 한일 고위급 인사의 접촉과 관련해 "누가 갔는지에 대해서는 상대방에게 공개하지 않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두 사람이 (일본에) 갔다"고만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GSOMIA 파기 방안도 향후 전개할 정부 대응에 포함되는가'라는 질문에 "GSOMIA는 한일 양국의 민감한 군사정보 교환을 기반으로 하는 협정"이라며 "일본이 우리에 대한 신뢰가 없고, 안전 보장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민감한 군사정보 공유를 우리와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일본은 한 번 이것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앞으로 모든 옵션을 검토를 할 것"이라며 "여러 가지 차원에서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한일 양국에 중재안을 제시한 시점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미국은 지난달 29일 한일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일시적으로 현재 상황을 동결하고 양측이 외교적 합의를 도출하는 협상을 우리 측에 제안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측은 같은 날 일본 측에도 동일한 제안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미국 측의 제안을 기초로 7월30일 화요일 오후에 일본 측에게 재차 양국간 수출통제제도에 대한 설명과 정부 간 공유를 위한 양국간 고위급 협의를 제안을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본은) 몇 시간 후에 우리 제안을 거부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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