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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日 '무역 보복'은 가토 산케이 前 지국장 판결이 계기
심일보 기자  |  jakys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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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05  19: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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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5년 11월 2일 오전 청와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상회담 전 기념촬영 전 악수를 청하고 있다.
[심일보 대기자] 2015년 12월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나왔다. 이날 <산케이신문>은 가토 전 지국장이 무죄 판결을 일본어판과 영문판으로 호외를 발행하며 긴급 타전했다.

또한 구마사카 다카미쓰 사장 명의로 성명을 내고 "이번 사건을 한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라고 판단한 법원에 경의를 표한다"라고 밝혔다.

아베 총리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직후 기자회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며 "앞으로의 양국 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해 12월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다. 한일 외무부장관의 위안부 합의 발표 다음날 아베 신조 총리는 “어제로써 다 끝났다”며 “이는 (28일 박 대통령과의)전화 회담에서도 말해뒀다”고 했다. “더 이상 사죄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 외무상이 대독한 입장 발표 이외에 어떤 사과 발언이나 서한도 보내지 않는 대신에 “이번엔 한국 외교부 장관이 TV 카메라 앞에서 불가역적(不可逆的ㆍ돌이킬 수 없음)이라 말했고 그것을 미국이 평가한다는 절차를 밟았다” “이렇게까지 한 이상 한국이 약속을 어기면 한국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끝난다”는 식으로 피해국을 훈계하는 태도를 보였다.

합의 내용에 대해 일본은 자국 언론에 정확하게 발표했다. 합의 직후 기시를 보면 외무상은 “(일본이)잃은 것이라고 하면 10억 엔일 것“이라며 “도의적 책임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으며 법적 책임은 (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해결이 끝났다는 점도 변함 없다. 다만 이번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인 해결로 책임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했다.

합의 당일인 28일 저녁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에서 아베 총리는 “1965년 일한 청구권협정에 따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이 끝났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며 남은 것은 도의적 책임이라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밝혔다. 10억엔 역시 일본은 ‘배상금’이 아니라고 못박았고 종전에 피해자들이 거부했던 국민기금과 마찬가지로 도의적, 인도적인 차원의 지원금임을 분명히 했다.

결국 12.28 위안부 합의에서 이뤄진 일본의 조치란 수사적인 차원의 유감표명과 인도적 지원금 형태의 10억엔 출연이 전부인 것이다.

일본의 경제보복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전범기업이 배상을 인정하는 판결한데 대해 일본 정부가 무역 보복을 단행한 것이 기초 원인이다. 일본 정부는 자국의 수출제한 조치가 한국 대법원 판결과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결국은 여기에 보복 조치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본의 이 같은 조치에 대해 한국 정부는 대법원, 즉 사법부의 판단을 정부(행정부)가 나서서 간섭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삼권분립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일본의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어 하는 것처럼, 일본 역시 우리 정부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터무니없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에서는 한국 행정부와 사법부 관계에 대한 불신이 결국 한국 정부가 자초했다는 목소리가 많다. 즉 어떤 때는 사법부 판결에 관여할 수 없다고 하다가, 어떤 때는 자기들 맘대로 사법 판결에 관여하는 행태가 일본으로 하여금 한국 사법 시스템에 불러왔다는 지적이다.

   
▲ 가토 다쓰야 무죄
최근 <선데이저널>이 일본의 한 소식통으로부터 들은 정보에 의하면 그 발단은 바로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 서울 지국장에 대한 판결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2015년 10월 19일 검찰은 가토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하였으나, 12월 17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최종적으로 가토의 혐의에 대해 정윤회와의 남녀애정행각으로 묘사한 명예훼손은 인정된다고 하고 다만 비방의 목적은 없었기에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은 명예훼손은 인정되지만 비방의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유죄가 된다는 이상한 논리로 선고했다.

당초 가토 전 지국장에게 징역형을 구형했던 검찰은 아예 항소조차 하지 않았다. 이것은 법원 선고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정치적 합의가 있었단 얘기다. 한국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가토의 비판이 비정상적이었다는 법원의 판단을 받은데 의의를 뒀고, 일본은 가토 전 지국장을 자국으로 불러들였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었다.

가토는 무죄판결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2016년 ‘한국의 법은 대통령과 국민감정에 따라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법이 뒤틀린 나라다’ 등의 내용이 담긴 《나는 왜 한국에 이겼나 박근혜 정권과의 500일 전쟁(なぜ私は韓国に勝てたか 朴槿惠政権との500日戦争)》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가토에 대한 박근혜 정부와 사법부의 이 같은 판결은 일본으로 하여금 사법부 판결이 정부에 의해 좌우될 수 있는 나라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특히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평가 절하할 수 있는 대단히 좋은 기회였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가토 전 지국장을 관저로 초대해 장시간 위로하는 방법으로 이 사건에 무게를 부여했다. 두 사람의 만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일본 언론은 한국을 “반일 감정으로 통치되는 비민주주의 국가” “풀뿌리 파시즘” 등으로 호칭했는데, 이는 일본의 공식적 외교정책에 반영된다.

2015년 3월4일 일본 외무성은 홈페이지에서 “한국은 일본과 자유,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기본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국가”라는 구절을 삭제했다. 일본 외교 활동과 방침을 기록하는 연차 보고서인 2015년 외교청서(Diplomatic Bluebook) 역시 같은 구절을 제거했고, 이 상태를 2019년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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