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일본의 무역보복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번엔 정치권에서 ‘애국가’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는 이유다.  

안익태는 친일 논란이 생기기 전까지 세계적인 음악가로 평가받았다. 1965년엔 문화훈장 대통령장을 받았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친일행적이 밝혀지고, 2009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라는 제목으로 공청회가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에서 안민석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국회에서 불편한 진실을 논의하고 국민들에게 판단을 맡기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했다"며 “몇 년 전에 애국가 작사자가 누군지 알기 위해 해외를 돌아 다녔다. 해외를 다닌 이유는 애국가 작사자가 안창호 선생과 윤치호 선생이라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안 의원은 공청회에 앞서 배포한 자료집 축사에서 “부끄럽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친일잔재를 확실하게 청산하지 못했다”며 “2009년에 발간된 친일인명사전에는 안익태 작곡가의 이름이 올라 있지만, 그동안 나라를 상징하는 노래인 ‘애국가’의 작곡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친일잔재청산은 우리의 잘못된 과거를 성찰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필수 과제”라며 “이번 공청회를 통해 안익태 작곡가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함세웅 고문은 “친일파 안익태는 최근 애국가에 대한 논쟁의 핵심”이라며 “심지어 친나치 행적까지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함 고문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나라를 사랑하고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부르는 노래가 애국가, 국가”라며 “그런데 그런 노래를 검증도 없이 국가로 지정하고 지금까지 사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친일파를 청산한 민족국가였다면 당연히 폐기했을 노래”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날 토론회의 주요 내용(국회뉴스 ON)이다.

발제에 나선 구자우 문화기획 '얼룩소' 대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손기정과 애국가를 불렀다는 설, 세계 어디서나 '한국환상곡'을 연주했다는 설 등 많은 부분이 허위로 밝혀졌다"면서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지금 친일청산과 민족정기회복을 위해 안익태가 군국주의 일본과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선동)에 자발적으로 적극 협력한 혐의에 대해 엄밀한 조사와 후속조치를 해야 한다"고 견해를 밝혔다.

안익태는 애국가를 작곡한 음악가이자 지휘자다. 친일논란이 생기기 전까지 그는 근대사에서 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위대한 음악가로 평가받았다. 1920년 일본에 유학해 1930년 봄 동경국립음악학교(첼로 전공)를 졸업하고 1930년 가을에 미국으로 이주해 신시내티 음악원 등에서 첼로를 공부하며 1935년 말 애국가를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8년 2월에는 아일랜드에서 자신이 작곡한 '코리아 판타지(한국환상곡)'를 초연했다. 1938년부터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음악원의 교환학생으로 작곡과 지휘를 공부했고, 1940년부터 'Ekitai Ahn'이란 이름으로 헝가리 등 동유럽 각국과 이탈리아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1965년에는 문화훈장 대통령장을 받기도 했지만 2000년대 이후 친일행적이 밝혀지면서 안익태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구 대표는 "안익태는 유럽에서 주로 '한국환상곡'을 연주했다고 스스로 주장한 것과 달리 실제로는 일본인 'Ekitai Ahn'으로 활동했다"면서 "일본 황실 음악을 주제부로 작곡한 '에텐라쿠(월천악)'와 일본 황기 2600년을 기념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해 헌정한 '일본축전곡',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해 작곡한 '만주환상곡' 등을 주로 지휘해 군국주의 일본의 프로파간다로 충실히 복무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47~1959년 13년간 스페인 마요르카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있으면서 안익태는 '한국환상곡'을 단 두 번, 그것도 일부만 연주했을 뿐"이라며 "그럼에도 안익태의 애국가는 초중등 교과서에 '국가(國歌)'로 실리고 안익태 신화는 지금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임진택 판소리명창은 "놀라운 것은 안익태가 독일지역 일본국 정보총책이었던 주 베를린 만주국 참사관 에하라 고이치의 집에 2년 넘게 거주하면서 문화프로파간다에 부역했다는 사실"이라며 "안익태는 자신의 친일·친나치 행각을 철저히 숨겼다. 만주환상곡, 에텐라쿠의 악보 등 반민족행위 관련 증거를 철저히 인멸했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선물한 한국환상곡 악보에는 작품의 연주 이력을 거짓으로 기록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자신의 연주경력 중 일본축전곡, 만주환상곡, 에텐라쿠를 지휘한 연보를 한국환상곡 등을 지휘한 것으로 슬며시 바꿔치기 했다"며 "자신을 세계에 우뚝 선 음악가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인 애국자로 포장했다"고 강조했다.

 세미나 참석자들은 안익태 애국가를 대체할 새로운 애국가가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현재의 애국가는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국가로 지정된 바 없고 대통령 훈령에 규정돼있는 만큼 어렵지 않게 애국가를 다른 노래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 명창은 "김민기 작곡의 '내 나라 내 겨레'나 임동창 작곡의 '우리가 원하는 우리나라' 같은 노래는 그 자체로 애국가이고, 애국가 공모가 있다면 결선에 오를만한 뛰어난 작품들"이라며 "이런 노래들을 공모를 통해 선정해 애국가류에 포함시킴으로써 국민들의 선택의 여지를 넓혀주자"고 주장했다. 국가가 반드시 하나일 필요가 없고 여러개일 수 있다며 공모로 여러 애국가를 선정하자는 것이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국민의례라는 이유만으로 안익태 곡조의 애국가를 계속 부르게 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도 부끄럽다"면서 "이제는 잘못된 과거를 바르게 청산해야 한다.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중국도 국가를 각각 2번 바꿔서 세 번째 국가를 부르고 있다"고 애국가 재지정을 촉구했다.

▲ 안익태 애국가와 불가리아의 노래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오 도브루자의 땅이여)’ 비교.(자료=세미나 자료집)
안익태 애국가가 불가리아의 노래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오 도브루자의 땅이여)'를 표절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1964년 안익태 애국가의 표절 문제가 최초로 제기됐고 한창 논란이 되다가 현재는 잠잠해진 상태지만 표절이라는 사실이 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안익태 애국가)전체 16마디 중 4마디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선율의 유사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된다"며 "애국가의 출현음 총 57개 중 맥락과 음정이 일치하는 음은 모두 33개로, 일치도는 58%다.

변주된 음까지 포함하면 그 개수는 모두 41개로, 유사도는 72%로 높아진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 정도의 유사도는 표절의 의도가 확인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표절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수치"라며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가 오래 전에 만들어져서 저작권 관련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표절임을 확인한 이상 공식적인 행사에서 이를 부르기를 강요하거나 권장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미나를 주최한 안민석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100년 전 우리는 남과 북을 넘어 다 함께 독립을 열망했고 국민 주권을 꿈꿨는데도 불구하고, 부끄럽지만 지금까지 친일잔재를 확실하게 청산하지 못했다"면서 "한일경제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이번이 친일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최적의 기회"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