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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63】 어느 의대 교수의 ‘죽음학’ 강의...'죽음이란 무엇인가'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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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10  12: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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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은 추모객들이 묘지를 참배하고 있다.
[김승혜 기자] 죽음이란 무엇인가? 역사의 새벽, 인류는 ‘생각’의 첫머리에서 이 문제와 맞닥뜨렸을 것이다. 종교와 철학 그리고 모든 문명의 시발점에 이 문제는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적 지식이 극대화되고 분초를 다투어 정보가 쏟아지는 오늘날에 와서도 이 문제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결말을 짓지 못하고 있다.

대개의 학자는 죽음이란 “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원형대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라는 데에 동의하지만, 단서를 붙이는 것을 잊지 않는다.

“삶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하지 않고는 죽음에 대한 완전한 해답은 있을 수 없다”고도 하고, “죽음의 세계란 인간의 경험 영역, 지각 영역을 넘어서는 차원의 문제에 속하기 때문에 그 본체를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고도 한다.

이상은 네이버 지식백과에 나오는 '죽음'의 정의다.

다음은 최근 SNS에 화제가 되고 있는 정현채 서울대의대 내과학 교수(소화기학)의 유튜브 내용이다. 그는 10년 넘게 ‘죽음학’을 강의하고 있고 위염이나 위궤양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연구의 권위자로 대한소화기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부모와 친척의 죽음을 지켜보면서 죽음에 관한 관심을 갖게된 그는 수많은 과학적 연구 성과를 접한 결과 “죽음은 사방이 꽉 막혀 있는 벽이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시사플러스에서 그의 저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비아북)에서 근사체험, 죽음 뒤의 세계 등을 발췌했다.

그는 "죽은 다음 어떻게 되나 의문을 갖고 15년 전 죽음에 대해 공부했다. 육체는 분해돼 자연으로, 영혼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 근사체험을 알고 있으면 죽음에 대한 불안·공포가 크게 줄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다음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의 답이다.

나는 쉰 살 무렵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했다.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죽음과 관련이 있는 수백 권의 문헌과 의과학 논문을 읽고 동영상 자료를 찾았다. 실증주의 교육을 받아 체화한 과학자로선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던 영적 체험들이 단순한 착각이나 환상이 아니라 분명한 실재임을 역시 과학자의 입장에서 알게 됐다.

우리의 육체가 더 이상 기능하지 않게 되어 부패해 가더라도 우리의 의식은 또렷이 유지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의 경이로움은 이후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죽음을 내포한 생명의 본질과 의미에 대해 깊이 인식하게 돼 고난과 역경을 영적인 성장의 기회로 껴안게 되었고 주어진 삶을 더욱 충만하게 향유할 수 있게 됐다.

임종 직전 신체 변화

임종이 가까워지면 신체에 몇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체중감소·식욕감퇴·쇠약·부종 같은 신체적 증상과 더불어 정신착란·불안·흥분 같은 정신적 증상이 같이 나타난다. 

음식물을 삼키기 힘들어하거나 수면시간이 늘어나고 세상사에 대한 관심도 옅어진다.

임종이 좀더 가까워지면 소변 배출량이 감소하고 호흡 변화와 함께 가래 끓는 소리가 나며 혈액순환 장애로 인해 푸른빛이나 자줏빛 반점이 나타난다. 이밖에 떨림·발작·근육경련·정신착란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이같은 발작증세를 보일 경우 뇌 MRI 같은 정밀검사를 하거나 간질을 억제하는 주사약을 투여하는 일이 종종 있다. 이는 적절치 못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병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치료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조치를 취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의료진은 살인죄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노쇠도 질병의 하나로 보고 치료하려는 경향이 있다. 질병은 어떤 이유로 우리의 신체가 고장이 난 상태이고 이를 고쳐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이 의료행위이다. 그러나 노쇠는 고장이 난 것이 아니다. 이를 테면 기계가 수명을 거의 다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음식물을 삼키는 기능이 저하된 고령자에게 어떻게 해서든 음식을 먹이려고 하다보면 흡인성 페렴이 유발돼 오히려 환자를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 눈 딱 감고 먹이지 않는 용기도 필요하다. 고령의 노인은 먹지 않아서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력이 다해서 다시 말하면 죽을 때가 임박했기 때문에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스콧 니어링은 100세가 돼 세상을 떠날 때가 되자 주위 사람들에게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나 또 다른 깨어남이므로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이유에서 화장한 후 장례식도 치르지 않은 채 떠났다.

‘죽음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인간의 육체는 영원불멸한 자아를 둘러싼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죽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로스 박사의 이런 주장은 오랜 임상 경험의 결과였다. 수많은 환자의 임종을 지켜보면서 관찰한 삶의 종말 체험과 근사체험을 통해 이끌어낸 결론이었던 것이다.

삶의 종말체험은 죽음과 관련해 일어나는 중요한 영적 현상이다. 근사체험과 공통되는 부분도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다른 개념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떤 환영을 보는 현상을 말한다. 대체로 먼저 떠난 가족이나 친지 또는 친구가 임종하는 사람을 마중 나온다. 이는 임종하는 사람과 가족 모두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마지막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근사체험은 죽음 직전에 경험하는 사후 세계로서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을 갖고 체외이탈을 경험하고 터널을 통과하거나 밝은 빛과 교신하며 천상의 풍경을 관찰한다. 세상을 떠난 가족·친지와 만나고 자신의 생을 회고하는 공통점을 보인다. 근사체험은 갑작스런 사고로 심장과 호흡이 멎은 죽음의 상태에서 체험을 하는 것이다.

죽음을 경험하고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죽음을 경험하는 동안 평화로운 마음으로 천장에서 아래의 모든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근사체험에 대한 다양한 측면에서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죽음은 꽉 막힌 벽이 아니라 열린 문이며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을 뜻하는 것”이다.

죽은 뒤 어떻게 되나

스웨덴의 스베덴보리, 그리스의 다스칼로스, 덴마크의 마르티누스 등 신비가들에 따르면 인간은 육신이 죽은 후 소멸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파동의 에너지체로 존재하게 된다. 영혼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파동으로서만 존재하는데 비슷한 파동을 지닌 영혼들은 서로 모이게 된다.

즉 영혼의 유유상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육신을 벗어나 비물질계로 옮겨갔다고 해서 갑자기 깨달음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지상에서 성취한 영적인 발달 정도에 따라 각자의 영혼이 끌리게 되는 여러 수준의 차원이 있다. 영계에는 비슷한 진동수를 가진 영혼들의 공동체가 수없이 존재하며 이들과 계속 유대를 갖고 집단을 이뤄 존재하게 된다.

같은 의미를 갖는 도덕적 특이 중력이라는 용어도 관심을 끈다. 사후의 영이 처음 도달하는 장소는 이 중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지상에서 사는 동안의 선함 정도나 결핍 등으로 형성되며 에너지장이나 기운으로 나타난다.

영적인 발전 단계에 따라 어두운 색부터 휘황찬란한 광채까지 다양하다. 도덕적 특이 중력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빛의 양이 제각기 다르므로 위장도 불가능하다. 그것을 속이고 더 높은 궤도로 올라가면 그것의 빛을 감당하지 못한다. 낮은 도덕적 특이 중력을 지닌 사람들은 일단 낮은 수준으로 몰리지만 발달한 영들의 도움으로 더 높은 수준으로 점차 진화해간다.

죽어서 육신을 벗어난 신참 영혼은 사후 1차 영역에 머물게 되는데 고독감·무력감·결핍감·고통·환멸 같은 감정을 느껴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 이때 마음을 열고 간절히 기원하면 수호영혼의 도움을 받아 지상에서 사는 동안 오염되었던 삶을 정화하게 되고 손상된 영혼을 치유하고 보고하는 작업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해서 원래 맑고 순수했던 영혼을 회복하고 나면 영혼이 주파수가 높아져 완전히 다른 상위 영역으로 진입한다.

이러한 사실들을 말기 암 진단을 받았거나 임종이 임박한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 불안해 하지 말라고 다독이고 격려하고 싶다. 근사체험이나 삶의 종말체험을 알고 있으면 죽음에 대해 막연히 품고 있던 불안과 공포가 크게 줄어든다.

나 역시 2018년 1월 초 암 진단을 받았다. 인간이 질병 하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널리 알려진 ‘보왕삼매론’에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는 구절이 나온다. 질병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죽음을 통해 삶의 귀함을 깨닫게 되는 게 우리네 삶의 본질이다.

강의노트 기증 등 죽음 준비 중

많은 암 환자들이 암 진단을 받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의사가 하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라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나는 조금 달랐다. 오히려 수많은 사망 원인 중에서 무엇이 나를 죽음으로 이끌지 예측할 수 없어 막연했었는데 정작 암 진단을 받고서는 상황이 명확해지면서 죽음 준비에 구체적으로 집중할 수 있게 된 느낌이었다.

나는 죽음 준비를 하나씩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우선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하나씩 정리해 병원에 있는 의학역사문화원에 기증해오고 있다. 40여년 전 의과대학생일 때 필기했던 노트, 30년 전 전임 강사였을 때의 월급명세서, 강의 노트 등이다. 서울대 병원 9층에 위치한 내 연구실에는 책이나 물건이 거의 없다. 훌훌 털고 떠나갈 수 있도록 계속 정리 작업 중이다.

장기기증서약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유언장은 이미 적성해 놓았다. 유언장은 두 딸들에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해주는 형식으로 작성했다.

우리의 육체는 죽으면 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다른 차원으로 건너간다. 따라서 기일에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형식을 벗어나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고 와인 한 잔 나누면서 같이 살던 때를 추억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본다.

죽음의 실체가 소멸이 아니고 옮겨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장례준비가 부담스러울 것이 없다. 지구별에 잠시 소풍 왔다가 가는 것이니 주변을 깨끗이 한 후에 떠나야 한다.

다음에 놀러 올 후손들에게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가는 것은 먼저 왔다 가는 사람들의 신성한 임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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