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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김원웅 "친일이 적보다 무서워...'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
김홍배 기자  |  klmhb@sisaplus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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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9  17: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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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원웅 광복회장
[김홍배 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은 29일 "우리 안의 친일이 적보다 더 무섭다"며 광복회 차원에서 '친일찬양 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이날 경술국치일 109주년을 맞아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독립운동선열추모제전' 대회사를 통해 "이 법 제정에 주저하는 자는 스스로가 '나는 토착 왜구다'라고 커밍아웃하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김 회장은 또 일본은 "1965년 박정희 정권이 체결한 한일조약과 2015년 박근혜 정권이 맺은 일본군 성노예 합의"를 최근 경제보복의 근거로 삼고 있다며 "둘 다 민족 양심을 팔아먹는데 서슴지 않는 친일 반민족 권력이었다"고 비난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1944년 중화민국 충칭市에서 조선의열단 김근수 지사와 여성 광복군 전월선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8월15일 광복 후 대전에서 정착하며 살았다. 대전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6.3항쟁에 참여 했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14, 16, 17대에 걸쳐 3선 국회의원을 지낸 김 회장은 지난 5월 광복회장에 당선된 직후에도 '친일찬양 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다음은 김원웅 회장이 언급한 '한국의 부끄러운 자화상' 전문이다.

해방이 되자 우리나라에서는 미군정이 실시되었다. 이때 ‘맥아더’는 일본에 머무르고 있었고 ‘하지’가 미군정 책임자로 한국에 왔다.

이때 일본에 있던 맥아더는 경험자들로부터 한국 통치에 필요한 조언을 듣기 위해 일본 정계의 원로들로 자문위원회를 만들었고, 여기에서 거론되었던 것이 문서로 남아 있다.

그것은 한국에서 민족주의자들이 집권하게 되면 골치가 아프니 친일파들이 집권하도록 해야 미군이 한국인들을 다루기에 용이하다는 내용이었다. 자문위원회의 자료에 의하면 일본 정계의 원로들은 맥아더에게 이렇게 자문했다.

“남조선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양성해 놓은 친일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본 사람들보다 더 능숙하게 조선 사람들을 다룹니다. 그들이 일본을 위해 충성을 다했는데 왜 미국을 위해 충성을 안 하겠습니까? 그들이 있어야 미군이 남한을 다루기가 쉽습니다. 그러니 친일청산을 절대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맥아더가 미국무성에 보고한 자료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그래서 맥아더가 일관되게 주장한 것은 ‘친일청산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승만을 미국에서 데려오고 하지를 불러 동경에서 세 사람이 두시간 동안 회의를 했다.

그 때의 회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이승만이 한국으로 돌아와 대통령이 되고나서 친일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법을 무려 5번이나 만들지 말라고 담화문까지 발표했다. 그러나 국회가 이 법을 만들어서 실제로 청산에 착수하자 경찰을 동원해 반민특위를 해산시켜 버렸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일본에서 이승만은 맥아더로부터 친일청산을 하지 말도록, 그리고 친일 세력들을 잘 활용하도록 지시를 받은 것이 분명해 보인다.

제주 4.3항쟁의 경우도 빨갱이들이 일으킨 것이 아니다. 당시 미군정에서는 3.1절 기념식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이 1947년 3월 1일에 3.1절 기념식을 하려고 집회 신고를 하자 미군정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제주도민들은 해방정국에서 미군이 이를 거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기념식을 강행했고, 이승만과 미군정은 경찰을 동원해 이를 해산시켜 버렸다. 이 과정에서 어린 아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치어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그 당사자인 경찰이 그 아이를 놔두고 그냥 가버렸다.

이에 흥분한 재주도민들이 경찰에 항의하러 경찰서로 몰려가자 경찰이 발포해 사상자가 발생했고,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무자비한 대량 양민 학살로 이어졌다.

맥아더는 친일파의 은인이자 미국의 애국자였지 우리나라의 은인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의 전략은 소련을 막기 위해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여기에 남한을 종속시켜 그들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는 것이었고, 이것이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기본전략이었다.

우리나라가 쿠바와 수교하려는 것을 미국이 반대했다. 미국과 쿠바의 사이가 좋아졌어도 미국은 여전히 우리나라와 쿠바의 수교를 반대하고 있으니 한국이 진정 주권국가인지 묻고싶다. 과거정부의 관계자들은 그 이유가 우방인 미국의 의사를 존중해서라고 하였다. 우방은 친구 사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영국과 우리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미국과 친한 우방일까. 당연히 영국이다. 그런데 영국은 쿠바와 수교를 했다.

캐나다와 우리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미국과 더 가까운 우방일까. 당연히 캐나다다. 그런데 캐나다도 쿠바와 수교를 했다. 일본과 우리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가 미국과 가까운 우방일까. 당연히 일본이다. 그런데 일본도 쿠바와 수교를 했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자기들의 우방이라면서 왜 우리와 쿠바의 수교를 못하게 하는 것일까. 그것은 미국이 우리나라를 친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졸개로 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쿠바와 수교를 안 하고 있는 나라는 단 2개국인데, 그것은 한국과 이스라엘이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쿠바와 수교를 못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 외교의 현실이고 민낯이다.(이는 집회 때마다 성조기를 드는 인간들에게 물어 보아야 할 문제다. 자주 독립 대한민국은 아직도 요원하다.)

전 세계 150곳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나라와 미국은 행정협정을 맺고 있다. 그것을 소파(SOFA)라고 한다. 한미소파, 미일소파, 미독소파 등등이 있다.

그런데 이 소파가 나라마다 내용이 다르다. 미국과 독일 간의 소파에는 ‘미군기지내 환경오염의 원상복구 책임은 미군이 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한미소파에는 ‘미군기지내의 환경오염은 미군이 책임지지 않는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독일 여성과 미군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그 부양책임은 미군이 진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미 소파에는 그런 규정이 없다. 그러니까 미군이 한국에서 애를 낳아 놓고 도망가 버리면 그걸로 끝이다. 그걸 독일식으로 바꾸자고 했더니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이 나를 빨갱이라고 성토했다.

우리의 외교정책은 미국의 의사에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국의 외교는 눈물겨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겪고 있을 힘들고 어려운 외교 전쟁을 이해하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

1965년에 박정희가 일본과 체결한 한일조약을 보면 어느 한 군데도 일본이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구절이 없다. 당시에 우리나라가 받은 3억불은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 축하금’이었다. 그것이 일본 의회의 속기록에 기재되어 있다.

일본은 가해자이고 우리는 피해자다. 그러므로 일본은 사과할 의무가 있지 축하할 자격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일본으로부터 3억불을 받음으로써 일제 36년간의 식민 지배가 합법적인 지배였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될 여지가 생겨버렸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은 것은 그들의 잘못으로 인한 배상금이 아니라 독립에 대한 축하금이었으니까.

국제법에 의하면 유네스코 문화재 협약이 있는데, 이에 의하면 모든 문화재는 원소유국가에 되돌려 주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한일조약 가운데 문화재 협약 부분에 의하면 일제가 약탈해간 수십만점의 우리 문화재에 대해 일본의 소유를 인정해 버렸다. 이것은 아주 굴욕적인 조약인 것이다.

필리핀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도 전후에 일본과 협약을 맺었다. 필리핀의 경우 일본이 3년간 지배했는데, 협약의 제목 자체가 우리와 다르다. 우리는 제목이 ‘한일조약’인데 일본과 필리핀사이에는 ‘배상조약’이라고 명기되었다. 그리고 배상금도 5억 4천만불이나 받았다.

우리는 36년간 지배를 받고도 고작 3억불에 불과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돈을 1965년에 받았는데, 필리핀은 1956년에 받았다. 우리보다 9년이나 앞서 받았으니 인플레를 생각하면 그 액수는 우리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이제는 기한이 지나 비밀이 해제된 미국 CIA 자료에 의하면, 박정희가 일본으로부터 많은 뒷돈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아시아의 여러 나라 지도자들 중 뒷돈을 받은 사람은 박정희 밖에 없다. 뒷돈을 받았으니까 배상금을 적당히 깎아 준 것이다.

기본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전시의 여성인권 해결에 대한 규범이 있는데, 박근혜가 2015년에 일본과 체결했던 한일위안부 합의는 그 규범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그러니까 문재인 정부에서 이것이 잘못되었으므로 바로잡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그 동안 친일반민족 세력들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이렇듯 불평등 조약들을 맺어 온 것이 일본에게는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것이 통하지 않으니까 아베와 일본 우익들은 문재인 정부를 바꿔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경제 보복을 하게 되면 민심이 이반되어 일본이 원하는 친일정부가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판단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승만이 대통령이 되어 국군통수권자가 되자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들을 육군참모총장에 임명했다. 1대부터 21대까지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들은 모두 독립군을 토벌하던 자들이었다.

그 중에서 살아 있는 유일한 자가 한 사람 있는데, 그가 백선엽이다. 어떤 사람이 백선엽을 방문해 ‘당신은 훌륭하다. 당신은 국군의 아버지다’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그 자가 독립군을 토벌하던 앞잡인데 그런 인간에게 그렇게 말하면 국민들이 얼마나 절망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랬더니 이 말을 야당과 재향군인회에서 알고 우리 국군의 아버지이자 우리의 영웅인 백선엽 장군을 비난했다면서 나를 빨갱이라고 성토하며 내 사무실 앞에서 데모와 시위를 하는 일이 발생했다.

만주에서 독립군을 토벌하던 간도특설대가 있었다. 대장은 일본사람이고, 그 밑에는 다 조선 사람이었다. 그들은 일본의 입장에서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들의 만행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피부를 벗기는가 하면 여자들은 강간을 했다. 독립군들에게 식량을 대준 마을은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 간도특설대에 몸담았던 백선엽이 우리 국군의 영웅이라고 한다면 그들에게 죽은 이름없는 우리 독립군들은 무엇이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가 있는데,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천진군) 총사령관인 ‘시라카와 요시노리’ 대장을 죽였다. 그런데 백선엽은 평소 이 시라카와 요시노리를 가장 존경하고 흠모하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일본식 이름을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창씨개명까지 했다.

이런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한국군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윤봉길 의사는 어떻게 되는가. 이게 제대로 된 나라인가. 이 대한민국이 왜구의 재산인가.

이승만 치하때 8.15가 되면 나의 아버지께서는 친구들에게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단하에서 박수치고 있는 사람들은 광복군이고, 단상에서 박수 받고 있는 자들은 다 친일파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에 이승만이 국민에게 단결하라고 했는데, 그 말의 의미는 친일파를 상전으로 모시고 단결하라는 의미였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일제 때의 내선일치와 무엇이 다른가. 이것은 살아있는 독립군들의 증언이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하면서 국제회의 등에서 일본인들을 만나면 독일처럼 과거를 청산하고 잘못을 인정하라고 나무랬다. 그리고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랬더니 그들은 “너희들의 국립묘지에 갔더니 거기엔 야스쿠니 신사의 졸개들이 잔뜩 묻혀있더라. 그곳에는 왜 참배를 하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 ‘한일합방은 조선인의 행복’이라는 사설을 쓴 조선일보가 한국에서 제일 애독하는 신문이라던데, 과거청산을 하려면 늬들이나 똑바로 해!”라고 말했다.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우리가 그런 고민도 하면서 현 시국을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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