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중원 변호사
내가 감히 인간의 냉혹한 운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운명다운 운명과 조우하여 그것에 맞서 격렬하게 싸워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 삶의 운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로 진행되었을까 하고 한번쯤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지금쯤, 내 삶의 한 끄트머리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순전히 우연 혹은 행운 덕분에 이리저리 우회로를 거쳤지만 크게 옆길로 벗어나지 않은 운명 말이다.

그러나 이건 고백이나 짧은 회고록 따위는 아니다. 뭐랄까?

그것은 결코 자기 자신을 진실하게 내보이는 것이 아니다.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거짓말쟁이이며 모든 고백에는 위선적인 동기, 과장, 미화, 자화자찬, 변명 또는 교묘한 선전이 숨어있다. 진정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 말할게 별로 없는 법이다.(폴 발레리)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이걸 말하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필 이 시점에서 일까?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또는 일어날 것인가. 세월의 무게 때문일까. 이미 체념했기 때문인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일까. 나의 과거에 대해 말한 것을, 더욱 많이 행간에 암시한 모든 것을 그들은 알아들을 수가 있을까. 그들의 고단한 삶과 연쇄적인 상호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을까. 그들은 허위의식에 찬 이걸 읽고 냉담하고,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혹은 의혹을 품을 것인가. 차라리, 오랜 버릇대로, 만취해서 그때마다 혀 꼬부라진 소리로 나의 분신, 제2자아에게 웅얼거리는 게 낫지 않을까. 내 얼굴에 내 삶의 궤적이 그대로 각인되어 있는데 새삼스럽지 않은가.

내가 지금 울고 있을 리는 없다. 그러면 웃고 있을까. 자신을 비웃고 있을까. 희미한 미소를, 밝은 아니면 어두운……

 

하긴 젊은 시절,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전쟁터에 끌려가서 야전병원에서 40여 일간 입원하여 생사의 기로를 헤맨 일이 있긴 하다. 하지만 그건 밀림에서 벌어진 치열한 야간 전투에서 어디선가, 어둠 속에서 적의 저격수가 날려 보낸 총알이 몸에 박혀 부상을 입어서가 아니라 뜻밖에 정체불명의 열대병에 걸렸던 것이다. 그것도 수천 명의 백마부대 30연대 부대원 중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만 걸렸던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너무나 건강했는데 말이다. 글쎄, 왜 하필 나였을까. 그러니 나는 지금까지도 그 영문을 모르겠다. 모질고 억센 운명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연대 의무대 군의관은 자신이 손쓸 방법이 없음을 알고 신속하게 야전병원으로 후송한 것이었다.

나트랑. 십자성부대. 102 야전병원.

그런데 그 병의 증상은 이렇다. 처음에는 온몸이 불덩어리가 되었다가 열이 조금 식으면 다시 열병인 것처럼 발작적으로 오한이 엄습하여 전신경련을 일으키고, 그때 의식이 까무러치며 마구 헛소릴 내뱉는 것이다. (그러나 그 헛소리는 나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잠재되어 있던 영혼의 알아들을 수 없는 격렬한 외침이 아니었을까.) 하여간에 내 몸은 계속해서 번갈아 찾아오는 불덩어리와 발작적 오한 때문에 근 보름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오직 수액에 의지하고 있었으므로 몹시 피폐해졌다. 의식은 가끔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환청, 환각, 착란, 망상에 시달렸다.

그 당시, 감수성이 극도로 예민했던 20대 초반 그 시절에 남몰래 흘린 눈물, 고통, 혼란, 체념 등에 대한 생생한 기억들이 지금까지도 나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고, 그래서 아주 일찍부터 단념할 줄 알았다. 그리고 바보처럼 단순한 운명론자가 되어 버렸다.

나는 그때 담당 의사와 간호 장교의 암묵적인 대화와 중환자실의 환자에 대한 죽음의 은유를 의미하는 행동에서 짐작하건데, 내가 지금 죽어가고 있음을 놀랄 만큼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나는 틀림없이 죽을 것이고,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죽을 것이고, 죽은 뒤에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자아의 부재에 대해 단념한 것이다.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다. 육체는 거의 죽어 있었는데 의식은 희미하게나마 살아있어서 그들의 대화를 다 듣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의사가 말했다. 호프리스 hopeless야. 뇌가 완전히 망가진 거지. 약이 들어먹어야 말이지. 이미 죽은 거야. 끝장이 난 거지. 간호 장교가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모르지만 계속 깊은 잠에 빠져있다, 어쩌면 지금 꿈을 꾸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일시적으로 착란을 일으키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깨어나고 싶었다. 나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비명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나는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랬으니 김규현이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명징한 의식의 흐름을 나는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내가 바로 그랬으니 말이다. 나는 야전병원의 침대에서 의식이 깨어날 때는 하염없이 누워서, 길고, 의식적이고, 자의적인 꿈과 환상 속을 헤매었으니까. 그러면,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이나 그때나 무신론자여서 톨스토이의 소설 속 인물인 이반 일리치처럼 죽어가는 그 순간 위대한 신과의 대화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순간 내가 죽어도 살아 있다는 생각, 내가 죽어도 영혼만은 절대 죽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어느 순간 갑자기 의식이 돌아왔을 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안간힘을 다해 유서와 다름없는 편지를 써서 고국의 아버지께 보냈었다. 이번 편지가 늦게 된 건 순전히 군사작전이 길어졌기 때문에 편지 쓸 틈이 없었다고, 그 작전은 부대 주둔지에서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국경 근처의 밀림으로 출동한 장기 작전이었다고 둘러대고, 나는 지금 너무너무 건강하고 잘 복무하고 있다고, 우리 가족은 잘 살아야 된다고, 아버지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등등. 지금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또, 그 당시의 일과 관련해 그 40여일 중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날이 있다. (이건 추억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열대지방의 늦은 오후.

석양이 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야전병원 화장터의 긴 굴뚝 위로 죽은 병사들의 시체들 모아 태우면서 나오는 하얀 연기가, 가냘픈 연기가, 슬픈 연기가, 영혼을 상징하는 연기가 곧게 피어올라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바람에 실려 시체 타는 냄새가 병동까지 날라 들었다.

화장터 담당 김 병장은 항상 술에 얼큰히 취해서 불콰한 얼굴로 시체들을 잘 태우기 위해 긴 쇠꼬챙이로 타다 남은 살점과 뼈들을 뒤적여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더 깊은 화덕 속으로 밀어 넣는 일을 했다. 그리고 암암리에 김 병장에 대한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열대 지방의 우기에 접어들면 몇 달 동안 억수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이 계속되고, 그 우울한 날에는 그는 어김없이 노릿노릿하게 구워진 주로 종아리 살점을 안주 삼아 술을 통음한다는 것이었고, 술에 만취하고 나면 무어라고 계속 웅얼대면서 장대 빗속을 몽유병자의 몸짓으로 몇 시간씩이나 흐느적거리며 동생을 찾으러 다닌다는 것이다.

내가 상당히 회복되고 난 후 맑은 공기를 쐬기 위해 병원 주변 숲 속을 어슬렁거릴 때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외로운 사람인 그와 가끔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 나도 너무 외로웠으니까. 말동무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는 의외로 순박한 사람이었고 식인종처럼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눈은 하나 밖에 없고 치즈나 우유를 주로 먹고 살다가 가끔씩 사람 고기로 포식하는 외눈박이 거인 퀴클롭스는 아니었다.

야전병원을 둘러싼 열대의 숲은 무겁고 음산했다.

그날 오후, 하늘은 낮고 거대한 먹구름이 뒤엉킨 채 몰려왔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천둥이 쳤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스콜이 그치고 잠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나나 나무의 넓은 잎들이 하늘거린다.

그날도 여전히 술에 몹시 취한 채 그가 말했다.

비오는 날은 싫어. 지긋지긋하지. 슬프고 우울하단 말이야. 불의 유혹을 견딜 수 없어 꼭 죽고 싶다니까. 불꽃이 동생 얼굴로 변하지. 동생이 환하게 웃고 있는 거야. 그럴 땐 화덕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싶어. 불꽃이 활활 너울거리며 춤을 추고 위로 솟구칠 때는 그 유혹을 참기 힘들지.

그 아인 비밀에 가득 찬 수수께끼였지. 난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 유령처럼 신비로운 존재였지. 항상 반쯤 꿈꾸는 듯 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거야. 단지 내가 짝사랑했을 뿐이야. 그리고 불같은 질투와 격렬한 감정, 알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굉장한 고통을 느꼈던 거야. 그 고통이 납덩어리처럼 가슴을 억눌렀지. 난생 처음으로 그런 감정을 느꼈지. 그런데 그가 감쪽같이 사라졌던 거야.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것은 중대한 정신병이라고 하면서 …….

그 유혹을 뿌리치려면 술을 진창 퍼마시고 지워버려야만 하지. 그런데 술에는 고기 안주가 필요하거든. 약간 짭짤하긴 한데…… 허벅지 살은 닭고기 가슴살처럼 퍽퍽하고 종아리 살이 질기면서도 쫄깃쫄깃하다고. 종아리 살에는 하얀 지방질은 전혀 없는 거야. 그 살코기는 씹는 질감이 최고이지. 맛있어서 눈물이 나지.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남자의 다리, 종아리에 매력을 느꼈던 거야. 여자의 음부 같이 무릎 안쪽 우묵한 부분에서부터 완만하게 튀어나와 젊은 여자의 엉덩이 혹은 젖가슴처럼 부드럽고 매끈매끈하고 정맥의 푸르스름한 핏줄이 보일 듯 말듯 감춰져 있는 살덩이. 나는 온몸을 쥐어뜯고 태워버릴 듯 한 짜릿함, 죽음처럼 불안한 짜릿함을 느꼈지.)

나는 울면서, 울면서 꼭꼭 씹는 거야. 그리고 꿀꺽 삼키는 거지. 중대한 정신병을 치료해야 하니까.

워낙 은밀한 소문이었다. 그가 영창에 가지도 않고 또한 조기 귀국을 당하지 않는 것을 보면 병원의 장교들은 틀림없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어떤 병사도 밤마다 귀신이 출몰한다는 화장터의 화덕을 담당하는 직책을 결사적으로 기피 하였으므로 그 이외에는 당장 할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귀국 만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관계자의 끈덕진 종용에 따라 귀국을 연기하면서까지 그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퀀셋 병동.

그날도 나는 잠깐 의식이 회복되었을 때 침대에 누워 그 흰 연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조만간, 며칠 내로 흰 연기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생각하자 눈물이 두 뺨으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나를 옭아매고 있던 뿌리 깊은 냉혹한 공포감과 고통스러운 자아로부터 해방감을 맛보았다. 그리고 안도감을 느꼈다.

그 눈물이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흘린 것이었다. 그 후로 눈물 같은 것은 흘린 일이 없었다. (내 기억에는 그렇다.)

나는 그때서야, 눈물을 쏟은 후에서야 우리에게 지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황불이 활활 불타고 있는 지옥은 땅 속 수 백 미터, 수천 미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을 터인데 영혼의 하얀 연기는 하늘나라로,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 그런 거야. 우리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무슨 흉측한 죄악을 지을 틈도 없었는데, 아직도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하고 변성기이거나 막 지났는데, 동정이고 밤이면 몽정을 하고, 젊은 여자애만 보아도 미칠 듯이 가슴이 울렁거렸는데, 어떻게 무슨 이유로 심판을 받고 지옥으로 떨어질 수 있겠는가. 나는 무신론자이지만 어떻든 천국으로 올라가는 거였다. 나는 희열을 느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살아나서 회복기에 있을 그때는 가벼운 죽으로 연명하였지만 여전히 계속되는 두통 증세로 신경이 예민해져 심한 불면증 때문에 고통을 받았다. 나는 죽음과 같은 혼수상태에서 보름여를 보냈는데 이제는 겨우 깨어나서는 반대로 고도의 불면증 때문에 계속적으로 깨어있어야만 했다. 잠은 생리적으로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데 잠을 못자서 죽게 된다면 이 얼마나 끔찍한 죽음일 것인가. 나는 그 때문에 또다시 죽음의 고통 속에서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 끊임없이 비현실적이고 모호한 성격의 상상과 망상, 꿈과 환영 속을 헤맸다.

(물론 그때 죽어가면서 명료한 의식 속에서 끊임없이 꿈꿨던 꿈의 내용을 지금은 하나도 기억해낼 수 없다. 너무 오랜, 까마득한 세월이 흘렀다. 내가 애써 기억해낸 기억의 파편과 부풀려 지어낸 것, 제멋대로 상상한 것들은 한 덩어리로 얽혀있어 분리하기가 불가능했고 함께 망각 속에 묻혀 있었다. 40여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40년의 시간. 과거. 침묵. 망각.—그것은 시커먼 구멍이다. 기억은 그 속으로 사라진다.)

내가 회복하여 퇴원할 때 중위 계급장을 단 담당 의사는 말했었다. 유 상병은 오랫동안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어. 깨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 줄만 알았지. 도대체 병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그만 포기하였지. 의학 교과서에도 나오지 않는 병이야. 그냥 열대지방의 지랄병이라고 할까. 또는 염병이라고 할까. 완쾌될 확률은 일 퍼센트도 안 되었지. 그래서 필사적으로 약을 이것저것 처방했지. 유 상병이 살아난 게 도저히 믿을 수 없지. 기적 같은 것이 일어났다고 생각하지. 신이 도왔을 거야. 군목 장교가 병자성사를 했었거든. 어쨌거나 네가 살아나서 내가 기쁘다구. 그때는 의사로서 한계를 절감하고 죽고 싶을 만큼 자포자기 했으니까. 지금이니까 말할 수 있는 거야.

그랬었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전 죽어도 상관없는데…… 자신의 존재 자체가 여분이라고…… 잉여라고…… 느끼고 있었거든요. 전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데 살아남은 거죠. 순전히 우연 때문이겠지요.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하여튼 다시 살아나서 원대복귀하게 되어 감사합니다.

야전병원의 검문소 입구에서 나트랑 시가지로 쭉 뻗어있는 직선 도로의 오른쪽으로 ‘성병유 요치료’라는 스탬프가 찍힌 빨간 딱지를 소지한 병사들을 수용하는 ‘성병환자 수용소’가 보였고, 왼쪽으로 헌병 중대와 보안대, MIG 막사, 보급창 그리고 멀리 미군 헬리콥터 대대가 주둔하는 비행장이 보였다. 나는 새삼스럽게 나트랑 시내를 내려다 봤다. 바다에서 잔뜩 습기를 품은 해풍이 불어왔다. 햇빛이 눈부시다.

나를 태운 앰뷸런스가 부대를 향해 출발했다.

나는 원대복귀 하였다. 그러나 그때 병원에서 퇴원하긴 하였지만 여전히 몸 상태가 완전한 것은 아니어서 내가 희망하면 바로 조기 귀국을 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사경을 헤매었어도 그 전쟁을 원망하지도 않았고, 왜 전쟁이 일어났는지, 그게 무슨 전쟁인지, 누굴 위한 것인지, 누구 잘못인지도 몰랐고, 그러므로 전쟁의 승패 여부, 이해득실을 따지지도 않았다. 그 전쟁은 허무맹랑했다. 물거품 같은 거였다. 어쨌거나 나는 국가의 준엄한 명령에 의해 그들 간의 코미디 같은 전쟁에 단지 어릿광대의 단역으로 출연한 거였으니까, 그 전쟁은 나와는 무관한 것이어서, 전혀 중요하지도 않았고, 무의미했고,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원대복귀한 후 얼마 지나서 연장 근무를 신청하여 1년여를 더 복무하였다. 그 기간 중에 김 병장 사건이 있었다. 김 병장은 작전 중 실종 전사한 것으로 상부에 보고되었지만 그 후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때 절박한 심정으로 인간 성체가 되기 위해 호되게 부화의 과정을 거쳤다.

2년 차 고참병의 특권. 무시로 외출과 외박. 수진에서의 몽유병자 같은 끝없는 배회. 일차에서 십차까지. 대취. 만취. 마리화나. 단골 꽁까이. 고독. 망상. 환상. 환멸.

그리고 1970년 가을 경에 나는 상처와 고통이 치유되기는커녕 여전히 심연 깊은 곳에 앙금처럼 쌓인 채로 귀국하였다. (세월이 훨씬 지나서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그것들은 인간 실존에 있어서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것이어서 치유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카렌다에 동그라미를 그려가며 귀국특명을 손꼽아 기다린 것도 아닌데 귀국 날짜가 잡힌 것이다.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난 도피처가 필요했던가. 난 지금부터 어떻게 될 것인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귀국하는 장병들을 싣고 캄란항을 출발한 미 해군 수송선 발레호(Ballet)가 부산항 제3부대에 정박하였다. 그때 떠날 때 들었던 동원된 학생들의 그 무성의하고 맥 빠진 함성소리가 내 가슴 속에서 되살아났다. ‘백마부대 용사들아……’, ‘백마부대 용사들아……’ 그 함성소리에 분명히 김규현의 우울한 목소리도 들릴 듯 말듯 섞여 있었으리라. (그는 그 무렵 부산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으니까.)

그때는, 내가 귀국할 때에는 제3공화국 박정희 대통령의 원대한 꿈이 마침내 영글어서 그 밑그림이 거의 완성될 무렵이었다. 그 얼마 후 우리 시대의 저주이자 악몽, 망령인 유신체제가 엄숙하게 선포되었다.

 

그러나 무사히 귀국하였다는 안도감은 들지 않았다. 대신 전쟁에 대한 기억들이, 악몽들이 무섭도록 생생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호찌민 루트. 칠흑 같은 밤. 마름모꼴 남십자성. 모기떼와 거머리들, 군복 속을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지랄같이 엉겨 붙는 불개미들이 득실거리는 늪지. 갈대밭. 가시덤불. 비 오듯 쏟아지는 땀. 사타구니의 습진. 상처투성이. 베트콩. 월맹 정규군. 그들의 출현을 기다리는 고통스럽고 지루한 시간. 매복. 참을 수 없는 갈증. 불안. 공포. 팬텀기 편대. 105밀리 곡사포의 포탄. 조명탄. 시누크 헬기의 굉음. 드륵드륵 연속 발사되는 M16 소총. AK-47 소총. LMG의 속사음. 클레이 모어, 부비트랩이 터지며 나는 귀를 찢는 듯 한 폭발음. 로켓포 소리. 수류탄 터지는 소리. 화염병사기의 무차별 난사. 화약 냄새. 시체 타는 냄새. 피 묻은 파편. 눈물. 고함. 욕설. 비명. 신음. 절규. 아우성. 광기. 잔혹한 학살. 피. 시체. 죽음의 냄새. 허무. 망상. 환영. 고통을 잊기 위한 또는 황홀경을 위한 마리화나. 꽁까이. 성병.

이 세상에는 직접 몸으로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전쟁이 바로 그렇다. 전쟁이란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도, 예측도 할 수 없는 처절한 몸부림이고 고통인 것이다.

 

김○○ 병장.

6개월 과정의 월남어 교육대 출신의 대민 심리전 요원. 실종자(혹은 탈영병).

그는 월남 파병 동기였고 나이는 한 살 위였다. 그는 어김없이 형님, 그것도 큰형님 행세를 하였고 나는 이를 긍정하였다. 나는 흉내조차 낼 수 없게 멋있게, 악기를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것처럼 휘파람을 불 수 있고, 성숙한 인간이었으니까. 어쨌거나 우린 친했고 서로 모든 걸 털어 놓을 수 있는 사이였다.

그가 맨날 내 귀에 못이 박히도록 심문(또는 고문)하는 고정 메뉴가 있었다.

넌 순진하긴 한데 쪼다라고 할 수 있어. 완전한 쪼다. 순진한 게 좋은 게 아니야. 그건 병신 머저리라는 말의 완곡어법에 불과한 거지. 넌 담배도 못 피우지…… 술도 안마시지…… 붕붕도 못하지…… 노름도 못하지. 도대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 말이야? 그것들이야 말로 인간 성체의 징표인데 말이지. 너 혹시 독실한 예수쟁이 아니야?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목사 아니면 전도사 집안인 거지?

황금 십자가와 묵주는 어디에 숨겨 놓은 거야? 네놈이 월남까지 왔으면 기념으로 붕붕쯤은 해야 될 거 아냐. 딱지를 떼란 말이야. 너 같은 놈만 있다면 말이야, 수진 마을에서 젊고 예쁜 여자 2,000명이 날이면 날마다 목을 빼고 남잘 기다리고 있는데…… 그러면 걔들은 도대체 뭘 먹고 살겠어. 물만 마시고 사느냐 말이야. 너는 도대체 말이야, 인간의 본성인 연민의식이 없는 거야.

난 전투 수당을 몽땅 수진에 갖다 바쳤어. 내가 공짜로 시켜줄게. 제발 좀 따라만 와주라. 진짜배기 아라비아산 낙타눈깔도 줄게. 그게 말이야, 신비한 요물이거든. 여자가 환장을 하는 거지. 남자도 덩달아 환장을 하고 말이지. 이 형님의 당면한 소원이 뭐겠어. 네놈 물건이 퉁퉁 부어 가지고 농이 질질 흐르는 꼴을 보는 게 나의 소원이지. 알겠어? 입에서 아직도 젖비린내 나는 놈아,

그걸 고상하게 말하면 유상구취라고 하는 거야. 그런데 말이지, 그래야만, 네가 비로소 인간이, 사내가 되는 거야. 너에겐 지금 하나의 과정이 필요한 거야. 인간 성체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 넌 알에서 하루 빨리 부화해야 하는 거야.

나는 늘 똑같이 반응했다. 또, 쓸데없는 소릴……. 나도 부화할 때가 있겠지. 반드시 부화할 거야.

4월 20일. 20일. 20일.

그날 저녁, 어스름 빛 속에서 나무들을 말끔하게 베어낸 개활지와 늪지대를 지나 조림된 고무나무 밭과 검고 칙칙한 열대의 숲이 멀리 보였다. 그러나 강에서부터 기어오른 짙은 회색 물안개가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입에서 여전히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다. 김 병장이 마리화나를 피워 물며 말했다.

이건 정신적 고통을 완화시켜주는 진통제이거든. 온몸이 노곤해지고, 그리고 황홀해지지. 며칠 전 수진에 갔다 왔지. 근 한 달 동안이나 못 만났거든.

뻔할 뻔자지, 보고 싶었던 거지. 그게 아니고 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 그렇게 좋아? 그 여자 이제 지겹지도 않아?

그 앤 그런 여자가 아닌 거야. 단순한 배설구는 아니었지. 내 여자이지. 영혼만은 순결하지. 난 랑린의 순수하고 달콤한 냄새를 맡고 들이 마시지. 그 앨 보면 오히려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야. 작은 물고기가 내 혈관 여기저기를, 심장에서 모세혈관까지 헤엄치고 다니는 기분이 들지. 하지만 그 앤 가끔 눈물을 보일 때가 있는 거야. 메콩강을 그리워하는 거지. 자신은 그 강의 일부라고……. 그 앤 내가 사준 은팔찌를 항상 차고 다녔던 거야. 그 앤 내 아이를 갖고 싶어 해.

얼씨구, 열녀 춘향이가 따로 없네. 아예 결혼해서 한국으로 모시고 가지 그래.

야, 임마, 난 이래봬도 뼈대 있는 종갓집의 장손이야. 그 낡고 고루한 집안에서 용납하겠어. 야단법석, 난리가 나겠지.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내가 다급하게 랑링을 찾자 마담 년이 뚱했어. 여기에 없다는 거야. 내가 신경질 부리고 눈을 부라려도 그 년은 비웃었지. 자기는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거야.

그러면서 그 앤 결코 돌아오지 않을 거라구, 죽은 셈 치라는 거야. 다른 애들이, 새로 온 여자 애들이 있으니 마음대로 고르라는 거였어. 마담 밑에는 모두 열명의 아가씨가 있다는 거지. 그년은 철저히 장삿속인 거야. 다른 집에 단골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지.

개 같은 년, 내가 1년 동안이나 다른 애들은 쳐다보지도 않고 일편단심 그 애만 만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야. 그래서, 단도를 빼들고 마담의 목을 겨누었지. 그때는 눈이 뒤집혀서 정말 목을 따버릴 작정이었어. 그제서야 마담이 털어놨어. 랑린이 고향으로 이미 떠났다는 거야. 몬순 계절이 되면 메콩강 델타는 엄청나게 범람한다는 거지.

그 전에 서둘러서 메콩강 하류에 있는 빈롱으로 출발하였다는 거야. 고향에는 늙은 홀어머니가 계시지. 아버지도, 두 오빠도 전쟁 중에 죽었거든…….

나는 어떤 아득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어쩔 셈인데?

나에겐 랑린 밖에 없는 거야. 나도 떠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탈영하는 거지. 그 앨 찾아서. 이게 사랑인지, 뭔지 알 수는 없지만……. 람브레터 또는 지붕에 승객을 태우는 장거리 버스를 교대로 타고서 무작정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는 거지. 빈롱까지 가는 거야. 여기서부터 천릿길이 되겠지. 나는 원래 방랑자적 기질이 있으니까……. 이런 여행쯤이야. 돈이 좀 필요하지. 네가 가지고 있는 걸 몽땅 내놔야 할 거야.

지금, 제 정신이냐! 제 정신이냐구? 대관절 사랑이 뭔데! 그렇게도 사랑 때문에 단맛, 쓴맛을 봤으면서……. 지금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거야.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의 여윈 얼굴에 피로한 눈빛과 냉소적인 미소가 어려있다. 그가 다시 마리화나를 피워 물었다.

그만 해둬. 부대는 잠시 난리가 날 거야. 그러나, 걱정하지 마라. 그건 잠깐 뿐일 거야. 작전 중 행방불명이나 사고사로 처리하겠지. 전쟁터에서 병사가 탈영하면 부대장의 경력에 엄청 흠이 되는 거지. 진급에도 악영향을 끼칠거고. 그러니까 헌병대나 보안대에 신고는 못 할 거야. 쉬쉬할 거라구. 수배령도 내리지 않을 거구. 그렇게 하면 탄로나니까. 월남에서 허위 보고는 식은 죽 떠먹기지.

나는 당황하였다. 헤아릴수 없는 짧은 침묵이 그 순간을 짓눌렀다. 갑자기 뱃속이 울렁거린다. 연민과 분노와 당혹감 때문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터질듯 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절망적으로 말했다.

형은 그럴 수 없어! 형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야!

그의 얼굴 표정에 비장한 것이 서려있다. 어떤 헤아릴 길 없는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나를 뚫어져라 쏘아 보았다. 나는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잘 들어라. 어느 날 내가 감쪽같이 사라지면 그렇게 알라구. 넌, 날 말릴 수 없어. 너마저 그러면 M16으로 내 머리통을 갈겨 버릴 거니까. 악랄한 내 주인에게 총을 쏴버리는 거지. 우린 오늘 밤이 마지막이야. 우리 서로 Cool 하자고. 울지 마라. 넌 아직도 눈물이 남아 있니. 넌 알고 있을 거야. 내가 고국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정말 싫지. 쓰라린 과거를 생각나게 하는 곳이지. 너만 그런게 아니지, 나 역시 옛날, 입대하기 전 일은 지겹고, 역겹지. 그건 악몽이었어. 우린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포유동물인 거지. 전쟁터에서 그 분노를 폭발해버리면 치유가 되는 줄로 알았지만……. 그때 일들은 기억상실증에 걸렸어야 하는데……. 그러나, 나는 도망가는 게 아닌 거야. 내 길을 찾아가는 거지. 자기 자리를……. 여기에 처박혀 넉맘 냄새를 실컷 맡으며 살고 싶은 거야. 이 난리 통에 가능할지 모르지만…….

밤이 완전히 내려앉았다. 짙은 어둠 속에서 C포병 중대에서 발사하는 105미리 곡사포의 포탄 터지는 소리가 밤의 유령이 토해내는 괴성처럼 아득히 들려왔다.

(그때의 생생한 장면, 대화 내용, 내 가슴 속에 각인된 김 병장의 비장한 얼굴을, 그의 의지를, 욕망을, 내가 느껴야 했던 그 무력감을 어찌 오랫동안 잊을 수 있었겠는가. 날카로운 가시 면류관을 쓴 채 피를 뚝뚝 흘리는 김 병장의 모습이 그 후 한 세대 동안이나 자주 꿈속에 나타났다. 그런 게 아니라 나타났다고 생각하였다. 김 병장을, 그를 끝내 붙잡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나의 강박관념이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한 때 그 강박관념을 몰아내기 위해, 망각을 위해, 알코올 의존자가 되어 살아야 했다. 매일 알코올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남아있는 유일한 해결책. 폭탄주. 폭탄주. 폭탄주.

만취해서 인사불성이 되고 머릿속 찌꺼기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면. 필름이 완전히 끊겨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를 마음껏 분출할 수 있다면. 울부짖는 짐승이 된다면. 분노의 순간에 격정을 폭발할 수 있다면. 나를 산산이 파괴할 수 있다면. 섹스에 탐닉할 수 있다면.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면. 사랑은 최고의 축복이자 저주이고, 진실이고 거짓이고, 애정이고 욕망이고, 은혜이고 동시에 분노이고, 식어버리고 사라져버린 사랑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사랑의 기쁨은 잠시이고 덧없이 사라진다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끝내 좌절하고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유아기적 껍데기를 깨고 인간 성체로 성숙할 수 있다면. 자기 자신을 찾을 수가 있다면.

그러나 나는 길에서 왝왝 토하는 일 외에는 항상 말짱했다. 도대체 취해지지가 않았다. 그러므로 술이라면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계속 마셨지만 말이다. 그것으로는 나를 어쩔 수 없었다. 지나치게 예민한 감수성과 상처 받기 쉬운 기질이 문제였던 것이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초여름에 마을 냇가에서 친구들과 물놀이를 하다가 왼쪽 무릎을 심하게 다쳤는데, 그 당시 두메산골—고향 동네 송정리는 면사무소에서도 10리를 더 들어간 산골짝에 있다.—에서 속수무책으로 방치하였다가 관절염이 심하게 악화된 것이다. 내 무릎은 주위가 빨갛게 되어 통통 부어오르고, 물이 차고 고름이 차고 나중에는 굽혔다 펼 수조차 없게 되면서 그 때문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사람을 탈진하게 하는 신열과 오한, 피로감, 구역질 등에 시달려야 했다.

온갖 민간요법과 떠돌이 돌팔이 의사의 마구잡이식 침 놓기, 이웃 동네 도사 할머니의 신통한 주문과 비방도 소용이 없었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문전옥답 논을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도시의 병원으로 가게 되었는데 의사는 희미하고 검고 회색의 엑스레이 사진을 이리저리 들여다보며 완치하기 위해서는 무릎 위부터 잘라야 하거나 아니면 무릎 수술을 해도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심하게 절 수 밖에 없다고 냉정하게 선언하였다. (그때부터, 유년의 저 깊은 심연 속에 뿌리 내린 냉혹한 공포감이 평생 동안 나를 따라다녔다.) 두말할 것도 없이 사색이 된 아버지는 몇 군데 병원을 전전하다가 어쨌거나 정형외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고 오랜 물리 치료와 끝없이 길고 긴, 지루한 재활 훈련 끝에 기적처럼 완치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무릎을 절단하는 수술, 혹은 무릎 수술로 내가 심하게 다리를 절게 되었다면 내 운명은 어찌 되었을까. 우선 군대도 안가고 전쟁터에도 안 끌려가고. 그러나 내 인생은 지금과는 송두리째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의 아내와도 만나지 못하였을 것이고, 그러면 내 두 딸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내 직업, 사고의 체계, 탐닉하는 열정의 대상, 아버지와의 관계, 추억과 기억, 꿈과 환상, 삶에 대한 태도 등.

그리고 나의 정체성마저 바뀌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와는 전혀 다른 누구였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성격상 나이가 들어갈수록 심하게 좌절한 나머지 우울증과 폐쇄공포증에 시달리고, 매일같이 독한 술을 마시며 알코올에 의존해야 되었을 것이고, 그래서는 변변한 직업도 없이 평생을 고통 받고 자포자기한 삶을 살았을 터였다. 그랬으니 결혼도 못했을 것이고 미구에 자살했을 지도 모른다. 그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젊은 시절 삶의 고뇌에 허우적거리며 헤어나지 못할 때 존재론적 회의에 빠져서 몇 번씩이나 자살의 충동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햄릿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근원적 물음을 던졌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인으로서 이 케케묵은 물음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자살에 대해 가장 많은 말을 하였지만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던 햄릿은 결코 자살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두 번의 경우 모두 내게는 커다란 행운이 뒤따랐다. 그렇지만 그들 행운은 내 자유의지와는 상관없이 결정된 것이고, 그것은 어떻든 오래 전부터 미리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어떤 은총을 입은 게 아닌 것은 확실하다.

내게 또다시 파랑새가 하늘 높이 비상하는 행운이 계속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운명의 여신인 포르투나 Fortuna처럼 행운은 눈이 멀었으니까, 누가 혜택을 입을 지에 관해 전혀 무관심한 것이다.

눈 먼 행운.

그러므로, 내가 물놀이에서 무릎을 다친 일이나 열대지방의 정글에서 정체불명의 병에 걸리고 기적적으로 회복된 것은 아주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건 운명이었고 우연이란 막다른 운명의 다른 이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종착지에 이르기까지 구불구불한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삶을 결정짓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오로지 운명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결국에 가서 이기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이 세상인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운명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운명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운명은 팔자이니 운명에 맡기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체념이나 단념이야말로 인간의 미덕이 된다.

그런데 기독교적 운명론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웅대한 예정론에서는, 칼뱅의 예정설에서는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렸으니, 그렇다면 운명이야말로 신적神的인 것이다.

 

정글과 열대. 살과 피가 튀는 야만적인 전쟁.

그것은 나의 삶을 분명하게 두 부분으로 쪼개버렸다. 비록 과거의 그 어떤 상처가 치유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전쟁 전과 전쟁 후의 나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나는 인간의 죽음과 광기, 선과 악을 뼈저리게 체험했고, 천천히 절망과 미망에서, 해체되어 고통 받고 있는 자아로부터 깨어났다. 심연과 같은 깊은 동굴 속에서, 묵시록의 어둠 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것이다. 그랬으니 전쟁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전환점이었다.

그러나 과거는 망각일 뿐이다. 과거가 나를 만든 것이 아니다. 나는 과거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니 나의 과거는 사라지지 않았고, 놀랍게도 나의 과거는 추억이 되었고, 현명한 지혜로 바뀌었다고, 자신을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긴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라는 공동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단절과 균열, 이질감,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저주인) 소외, 외로움을 느꼈고 (나는 비사교적이었지만 매우 순종적이었다. 그러나 나의 내부에는 항상 해소할 길이 없는 욕구불만과 분노가 들끓고 있었으니 결코 평생 동안 그들과 융화되지 못하였으며), 그 집요한 강박관념 때문에, 외로운 인간, 국외자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내 어둠 속 내면으로 다시 돌아가 움츠러들었다. 그리고 자신을 경멸하고 그 반사작용으로 그들을 경멸하였다. 나는 (호모 폴리티쿠스이고, 호모 섹슈얼리스이고, 호모 파베르이고, 호모 알쿨리크스이고, 호모 사피엔스인) 인간 종 모두를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로 여기고 불신하였다. 그리고 서로 간에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관계가 되었다.

그러므로, 20대, 젊은 날에 그들 운명적 사건의 경험을 토대로 내가 인간 본성 (특히 그것의 상대성)에 대해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랬더라면 인생의 우여곡절과 좌절을 맛보지 않고 좀 더 충실한 삶을 살았을 터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통과의례인 사랑의 감정과 배신과 고통은 어떠한 (감상적인 말이거나 수사적 표현이 아닌) 상처를 남겼던가?

그때 나는 벌써 일종의 허무주의에 빠져있었으니, 항상 분열되어 있었으니, 자신의 밖으로 나아가서, 자신을 벗어나서 타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었으니, 평생 동안 따라다닌 불안감을 여전히 떨쳐내지 못했으니, 내 인생의 명확한 길과 목표가 세워질 수 없었다.

신비와 공포의 상징물이었던 바다, 사막.

멀리 달아나 버린 꿈.

장밋빛 인생은 없었다. 한 순간인들 삶의 고결한 순간이 있었던가. 삶의 좌절에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지 않았던가.

그때는 언제나 눈앞이 캄캄하고 막막했다. 나는 벌써 마지막 항해를 끝내고 자신의 항구로 귀향한 늙은 선원이 된다. 얼빠진 사람, 살과 뼈가 없는 무기력한 인간, 여전히 세상이라는 거친 바다가 야기한 공포에 몸을 떠는 인간, 바다의 폭풍우 속에서 악마의 얼굴을 보았던 인간, 끊임없이 근원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인간.

그러나, 나는 삶이 얼마나 느릿느릿 지나가는지를, 삶을 보다 가볍게 여겨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죽은 것처럼 비존재로 살아야 했으니, 시간의 흐름에, 희망이 없는 단조로운 일상에 자신을 맡기기로 모종의 타협을 하였다.

나는 오랜만에 (근 10여년 만에)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송정리 고향집에 내려갔고 한때 꿈과 몽상에 젖어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그러나 이미 가슴 속에서 지워져버린 남쪽 바다를 다시 만났다. 나는 해안선을 따라 만의 동쪽 끝 동백나무 숲까지 하염없이 걸었다. 반나절 동안 아무 생각 없이 걸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그때 불혹의 나이이었음에도 여전히 인간의 삶을 명료하게 이해하기에는 자아 형성이 되어있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너무 미성숙했다. 단정적으로 말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에서는 삶의 고단함을 깨우쳐줄 어떤 스승도 없었다. 미성숙에서 성숙으로 이행과 자아의 정체성 확립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그걸 희미하게나마 깨닫기 시작한 것은 인생의 단맛 쓴맛을 어느 정도 겪고 난 다음인 이순의 나이 이후가 아니었을까. (자식을 키우며 먹고 살려고 분투하는 사이 세월은 미쳐 깨달을 새도 없이 빨리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 이후 비로소 인간의 정신은 만성적으로 병든 상태가 오히려 정상적이라는 사실, 인간 정신의 평정 상태는 없다는 것,

혼돈 그 자체라는 것, 안식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헛된 일이라는 것, 그러므로 영원한 불안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이 뼈아픔에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다는 사실을 긍정하였다.

그리고 이때쯤에 점차 소멸 되가는 추억의 희미한 발자국을 반추하면서 인생의 결산 또는 가결산을 통해 나의 굴곡진 삶의 총체적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일이 비로소 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그러나 평생을 자신의 밀실 속에 갇혀 사는 고질적 몽상가인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성공과 좌절의 명확한 인과관계를 밝혀서 결산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실존적 또는 존재론적 토대 위에서 원인과 결과의 영역 밖에 있는 성찰 (이 얼마나 철학적이고 이해하기 어렵고 전율을 느끼게 하는 말인가)에 대한 것이리라.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솔직하게 말해야 하리라. 누굴 속일 수 있겠는가. 더욱이 자신을 더 이상 속여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언제 진지하게 자기 성찰을 한 일이 있었던가. 그것은 무용한 짓이 아니었던가. 자기 만족, 자기 분열, 자기 기만이면서 결국 자기 학대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것은 경멸, 증오, 반항, 분노, 수치심이 아니었던가. 누군가 말했다. (누군지는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하여튼 그가 말했다.) ‘내부의 짐승을 몰아내자’고. 그렇다. 그렇고말고. 그렇게 되었다. ‘나 자신을 알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나의 삶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거기에 대해 특별히 덧붙여 설명할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비록 내 인생은 지금까지 이루어지지 못한, 여전히 완성하지 못한 스케치 상태로 남아있긴 하지만) 이 세상 그 무엇에 대해서도 선과 악을 선명하게 구별하고, 좋고 싫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거나, 절대적, 단정적 평가를 내리는 일은 삼가하게 되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동네의 얕은 산을 오른다. 그건 산이 아니라 언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언덕. 언덕 너머에 뭐가 있어서 나를 기다리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언덕에는 신이 살고 있다.

나는 인간과 세상이 한없이 두렵게 느껴지면서 이 세상과 인간을 지배하는 무수히 많은 신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인간이 결코 자율적인 주체가 아닌 얼마나 하찮고 왜소하다는 사실을, 이 세상에는 인간 이외에 타자가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신을 몰아내고 신이 사라진 언덕에 인간이 대신 올라설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래서 신의 존재를 믿기까지는 가혹하고도 평생에 걸친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강력한 생존 본능의 소유자였고 현실주의자였고 신들의 존재를 확실히 믿었지만 결코 신앙인이나 종교인이 될 수 없었던) 내가 그 모든 신들께 무릎을 꿇고 경건하게 기도까지 할 필요는 없으리라. 기도란 나에 대한 일종의 가혹한 시험이 아니겠는가.

 

호메로스는 말했다. 인간들은 누구나 신들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신들도 인간들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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