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은 18일 경기도 수원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의 모습.
[신소희 기자] 한국 범죄사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았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사건 발생 33년 만에 특정된 가운데, 이 용의자는 1994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처제성폭행살인사건의 범인으로 파악됐다.

19일 경기남부경찰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분석을 통해 특정한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는 현재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56살 이춘재라고 밝혔다.

경찰은 화성 사건 피해자에게서 확보해 보관하고 있던 DNA 증거물을 최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 의뢰했으며, 그 결과 교도소에 수감돼 있거나 출소한 전과자들의 DNA를 관리하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일치하는 대상자가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경찰은 이날 부산교도소로 프로파일러를 보내 이씨를 조사했다.

이춘재는 1994년 1월 충북 청주시에서 처제를 강간 살인한 혐의로 기소돼 한때 사형이 선고됐다가 이듬해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경찰 관계자는 SBS와 통화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이춘재는 지난 1994년 청주 처제 살인사건 범인이 맞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화성연쇄살인사건과 관련된 사건 10건 가운데 3건에서 나온 DNA와 이 용의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0건의 살인사건 중 5차(1987년 1월), 7차(1988년 9월), 9차(1990년 11월) 용의자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미제사건수사팀이 기록 검토와 증거물 감정 등의 절차를 진행하다 DNA 분석과 대조를 의뢰하게 됐다고 밝혔다.

DNA 분석 기술의 발달로 수십년이 지나도 검출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는 것이다. 국과수 관계자는 "유전자 검사 기술, 특히 검사 시약이 최근 수년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며 "과거 DNA가 극소량만 검출돼 판별 불가 판정을 받고 보관 중이던 증거물도 새 시약을 이용한 재검사를 거쳐 판별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A씨의 DNA가 나온 증거물은 피해 여성의 속옷 등 유류품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확인된 유력 용의자 이춘재는 지난 1994년 저지른 성폭행과 살인으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범행 대상은 처제였다. 그는 1993년 12월 18일 아내가 가출한 후 앙심을 품은 것으로 전해졌다.

1994년 1월 충북 청주 흥덕구 자신의 집을 찾아온 처제(당시 20세)가 마시는 음료수에 수면제를 타 먹인 후 잠자는 처제를 성폭행했다. 이후 범행이 알려질 것을 우려해 처제를 살해했다. 피해자의 시신은 집에서 1㎞ 정도 떨어진 곳에 유기했다.

1심 재판부는 "범행이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이뤄진 데다 뉘우침이 없어 도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며 A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 역시 사형을 선고했으나 대법원에서 "성폭행 이후 살해까지 계획적으로 이뤄졌는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파기환송됐다. 이후 무기징역수로 복역 중이다.

 
경찰은 앞으로 용의자 수사, 수사기록 정밀 분석, 관련자 조사 등 용의자와 화성 연쇄살인 사건 간의 관련성을 철저히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 A씨를 상대로 사건 당시 실제로 화성에 있었는지 등 사실관계를 추가 보강 조사해야 한다"며 "화성 사건과 관련된 다른 DNA와 A씨의 DNA가 일치하는지 여부도 추가로 감정 중에 있다"고 밝혔다. 10건에 이르는 화성 범죄가 단일범의 소행이 아닐 수도 있다는 관측은 사건 당시부터 제기됐다. 현장 감식에서 A형, B형, AB형 등 3종류의 혈액형이 검출돼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씨가 화성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지더라도 처벌은 어렵게 됐다. 1991년 4월 마지막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도 이미 2006년 4월 만료됐기 때문이다. 살인죄는 2015년에야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은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주변에서 발생했으며,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었고 성폭행당한 뒤 살해됐다. 1986년 9월 딸 집에 다녀오던 70대 여성이 살해된 사건부터 시작돼 1991년 4월 역시 딸 집에 다녀오던 60대 여성이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사건까지 모두 10차례 발생했다. 피해자는 10대 중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있었으며, 범인은 피해자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시신을 흉기로 훼손하거나 이물질을 넣어 놓는 등 잔혹하고 엽기적인 행태를 보였다.

당시 전국적인 관심과 더불어 연인원 180만명의 경찰이 투입됐지만 수사 기법의 한계로 인해 끝내 미제로 남았다. 이 사건은 2003년에는 봉준호 감독에 의해 영화 '살인의 추억'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범인은 주로 버스정류장과 피해자 집 사이로 연결된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 있다가 범행을 저질렀다. 또 속옷을 얼굴에 씌우거나 두 손을 뒤로 묶는 데 이용하는 등 당시로써는 충격적인 범행 수법을 동원했다. 8차 사건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體毛)와 DNA가 일치하는 진범이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 모방범죄로 밝혀졌고 다른 사건과는 연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이 추정한 범인은 20대 중반으로 키 165~170㎝의 호리호리한 체격이었다. 용의자 몽타주에 기술된 인상착의는 '(얼굴이) 갸름하고 보통 체격' '코가 우뚝하고 눈매가 날카로움' '평소 구부정한 모습'이라고 표현됐다. 경기남부경찰청은 19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유력 용의자를 특정하게 된 경위 등을 밝힐 예정이다.

한편, 경찰은 19일 오전 9시 30분 브리핑을 통해 지금까지 파악한 용의자와 화성 사건의 관련성, 이후 수사 방향 등을 밝힐 예정이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

1986~1991년 경기 화성군(현 화성시) 일대에서 여성 10명이 연달아 살해당한 사건. 피해자 시신 대부분에서 성폭행 흔적이 발견됐다. 8번째, 10번째 사건은 모방 범죄였고, 8번째 사건은 범인이 잡혔다. 그러나 나머지는 범인이 잡히지 않아 대표적인 장기 미제(未濟) 사건으로 남았다. 2003년 이 사건을 다룬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돼 다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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