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
민귀식(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중국학과) 교수의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입니다. 공감가는 부분이 많아 공유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해당 글 전문입니다.

조국이 버려졌다. 청량하게 느껴지던 아침바람이 뉴스가 나온 오후에는 쌀쌀함을 넘어 쓸쓸하게 다가온다. 가슴 앞뒤로 휑한 바람이 훑고 지나간다. 촛불이 부정당했다. 검찰개혁과 제도개혁의 동력을 만들었던 그 촛불이 말이다. 정치권이 갈팡질팡할 때, 들불처럼 일어나 작은 촛불로 이루어낸 그 개혁의 동력이 말이다. 오늘은 우리 손으로 일으켜 세운 개혁 깃발이 아스라이 멀어진 느낌이다. 불과 이틀 전에 “검찰개혁 최후통첩”을 선언했던 그 함성이 이렇게 부정당해도 된단 말인가! 국민의 뜻을 받아내지도 못하는 무능한 집권세력 때문에......

조국의 사퇴는 검찰의 압박 때문이라고 볼 수 없다. 조국은 그것을 이미 각오한 것이고, 더 이상 있을 수 없을 만큼 까발려졌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개혁입법을 위해 물러난 것도 아니다. 민주당이 자한당을 그 정도로 설득할 능력도 없거니와 그걸 약속할 자한당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 민주당이 그런 전략과 능력이라도 가졌으면 천만다행이겠다. 또한 거악으로 변해버린 검찰 수뇌부 전체를 제거하기 위해 논개전법을 실현했다고도 볼 수 없다. 검찰은 그 정도로 스스로 물러날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조국이 물러난 것은 그 알량한 지지율에 목매는 청와대와 머릿 속에 총선 밖에 없는 민주당의 내부 총질 때문이라고 본다. 개혁이 뭔지도 모르고, 그저 정치공학으로 계산하는 그들 때문에 개혁의 동력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형국이다.

“개혁은 힘을 모으는 명분과, 그것을 담아내는 상징(의지)과, 힘을 집중하는 세력과, 힘을 쏟는 타이밍을 하나로 묶어낼 때만이 겨우 성공할 수 있는 매우 힘든 과정이다.”

왜냐하면, 개혁은 기득권을 해체하고 새롭게 판을 짜는 권력투쟁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혁은 처절해야 이길 수 있다. 저항하는 자들은 목숨을 걸고 덤비는데, 개혁하는 자는 표 계산이나 하는 한가로운 자세로 무엇을 이뤄낸단 말인가.

“전장에 있는 장수는 군주의 명도 거절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이러니하게 윤석열은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 누구에게도 보고하지 않고 “검찰의 제도권력”을 거리낌 없이 만끽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오늘 우리는 개혁의 상징인 장수가 전장에서 해고되는 꼴을 보았다. 어떤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해도, 이것은 의지의 박약이고, 전략의 실패고, 인사의 참사이다. 그냥 개혁을 막으려는 저 무뢰한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혹자는, 이제 검찰개혁의 국민적 명분을 확보했으니, 조국을 내리고 다른 인물을 내세워 개혁을 완수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어차피 입법은 국회에서 하는 것이니 야당에게 명분을 주고, 중도층을 달래려는 고육지책이었다고도 할 것이다. 조국 집안에 대한 결정적 혐의가 없다고 판단되는 형국이라, 조국을 희생해서 검찰 수뇌부 전체를 쓸어버릴 명분을 마련하기 위해 사전에 물러나게 했다는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소위 “살을 내주고 뼈를 치는” 한방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다 좋다. 그렇게 보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안 그러면 촛불을 들었던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 같은 찝찝함과 허탈함 그리고 불쾌함을 떨쳐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조국을 지금 물러나게 한다고 개혁이 성공할까? 40%를 위협한다는 대통령 지지율이 회복될까? 정치력이라고는 1도 없는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 촛불민심을 개혁으로 엮어낼 수 없는 무능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지지를 계속 받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은 개혁을 위해 힘을 몰아주었을 뿐이다. 개혁을 해내지 못한다면, 국민이 돌아서는 것도 한 순간이다. 촛불민심은 매우 “이성적”이며 “합목적적”이다. 처음부터 자연인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국으로 “상징되는” 개혁의 불씨를 지키고 키우려고 나왔던 것이다. 지금 조국의 낙마를 보는 입장도 이와 같다.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은 조국으로 상징되는 검찰개혁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것에 분노하는 것이다. 다시 검찰공화국이 계속되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하는 것이다. 자신이 힘을 보태고 있는 사회진보가 좌절을 겪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개혁이 실패한 경우를 보자. 조광조의 실패도 왕이 신임을 거두는 순간에 일어났다. 더 많은 실패는 기득권의 힘을 제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기득권은 강력하다. 개혁이 성공한 드문 사례는 모두 최고 통치자의 강력한 신임과 지원이 있어서 가능했다. 진나라 상앙(商鞅)의 개혁은 효공(孝公)이 끝까지 밀어주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진정한 개혁가는 효공이라는 말도 있다. 개혁에 대한 최고지도자의 흔들림 없는 신념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개혁저항세력은 대나무 뿌리보다 강하게 얽혀있고, 고목 뿌리보다 깊고 넓어서 보통의 수단으로는 뽑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개혁도 마찬가지이다. 재벌-검찰-사법부-언론의 기득권동맹 뿐만 아니라 극우반공과 친일친미 기독교세력 그리고 기득권과는 아무관계도 없으면서도 기득권에 세뇌당한 불쌍한 영혼들로 가득찬 사람들이 넘쳐나는 곳이 바로 한국이다. 이를 뚫고 나가야만 하는 험난한 과정이 바로 우리의 개혁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민주당은 이들과 처절하게 싸울 신념을 가지고 있는가? 국민이 지펴낸 개혁에너지를 모아낼 전략전술을 가지고 있는가? 만약 지금 그 개혁에너지를 헛되게 만든다면, 역사에 빚을 지는 것이고 촛불시민에게 빚을 지는 것이다. 더 이상 빚을 진다면 이미 진 부채에 더해져 파산할 것이다. 방법은 개혁을 위해 전진하는 길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개혁은 멋진 옷 차려입고 한가하게 소풍가는 것이 아니다. 개혁은 전쟁이다. 처절한 승부만 있을 뿐이다. 그런 측면에서 자한당과 극우세력의 저 악다구니는 권력투쟁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청와대와 집권당에 말한다. 개혁 성공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는 것을 먼저 인정해라. 그래서 비상한 각오와 실천력 치밀한 전략이 없다면 실패한다는 사실을 공유하라. 그리고 개혁을 이끌 선봉장을 내세우고 보호하라. 어쭙잖은 표계산으로 개혁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에게 총질하지 마라. “연탄재 함부로 차지마라” 그리고 “역수의 물은 차다(易水寒)”고 노래하며 건너간 이의 절절한 심장을 보호하라. 함부로 “불쏘시개”로 사용될 인재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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