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연주 변호사
[김승혜 기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 이후 검찰개혁 법안의 처리 방향을 둘러싸고 여야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여검사는 투명인간 취급하는 남성 중심적 조직"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던 검사 출신의 이연주 변호사.

지난 1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2002년 2월 검사 생활을 그만둔 이연주 변호사는 "처음 발령을 받았을 때 모 부장이 수사계장과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다는 취지의 조언을 하면서 '룸살롱 데려가서 XXX도 하고'라고 말하는 등 여검사는 투명인간이었다"며 자신이 왜 검사직을 내려놓았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검사들은 스폰서를 '친한 친구'라고 표현하는데, (이렇게 표현하는 건)인식 자체를 마비시키려는 행동으로 보인다"며 "가정이 있는 부장이 미인대회 수상자를 소개받아 호화 요트를 빌려 놀러간 얘기를 하고 부원들은 '휼륭하다, 대단하다'고 반응하는 그 속에 제가 살았다"고 말했다.

그런 이 변호사가 24일 정경심 교수 구속과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다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제하의 글 전문이다.

페친들, 너무 잔인한 날이야. 잔인한 이야기로 시작할 수 밖에 없겠어.

얼마 전에 친구랑 이런 이야기를 나눴어.

“검찰이 조국 장관 동생의 수술까지 방해한 건 너무했어, 제네바협약인지 뭔지에 의하면 전쟁 중에 적국의 포로도 치료해 주기로 되어 있는데 이게 뭐냐” 라고 하대.

내가 그랬어.

전쟁이면 서로 무기를 들고 싸우니 공평하기나 하지, 이건 사냥이니까. 언론은 몰이꾼 역할. 사냥의 끝은 만찬이지. 아직 피가 도는 사슴의 부드러운 뿔을 잘라 내 녹혈을 마시고, 심장이 뛰는 곰의 배를 갈라 웅담을 꺼내야지.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던 날 창 밖을 내다보며 웃던 홍만표, 이인규를 떠올려 봐. 사냥감을 손에 넣은 듯 득의만만한 표정을 짓지.

그 분은 당신이 죽어야만 이 잔혹한 게임이 끝난다는 걸 아셨던 거야. 말갛게 마음을 비워낸 그 분의 유서를 떠올리면 아직까지 슬픔이 가슴에 차 올라.

검찰에게 정의나 공익이란 없어. 우리의 민주주의가 경각에 걸리거나 말거나, 남의 인생이 망가지거나 말거나 이지. 그들의 전리품을 위해서 움직일 뿐야.

윤춘장이 원세훈의 댓글공작을 기소한 일에 대해서 검사들 일부가 “다음에 정권이 바뀔 줄 예측하고 도박에 성공한 거지”라고 하더라고. 검사들의 시각이 이렇다고.

주민집단소송 사건을 대리하던 변호사와 사건 브로커가 맞고소전을 벌인 사건이 있어.

그 변호사와 브로커 모두 검사 혹은 수사관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고 의심받았는데, 김형렬이나 진동균, 김형준 등 검사들의 범죄에 너그럽기 그지없던 검찰이 갑자기 수사정보 유출 등을 이유로 검사들 둘을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치면서 난리를 떨어.

검사들은 그 수사를 뭐라고 할까.

그 수사를 기획한 자의 의도에 대해서 내부 검사들의 비리에 단호한 검사라는 명망을 얻어 초대 공수처 처장 또는 검찰총장을 노렸던 거래. 이 검사가 또 기자 인맥이 튼튼해서 엄청난 지원사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나. 문제된 변호사의 로비대상에는 자신의 인사경쟁자 및 야당 관계자가 연루되어 있다는 첩보가 있어 이들을 제거해서 받는 이익도 있고.

이게 진실인지 아닌지보다는, 검사들조차 수사가 이례적으로 기민하게 이루어질 때에는 대단한 전리품이 걸려 있다고 감지한다는 거지.

그리고 이런 민감한 수사에 대해서는 “사건 잘 말았냐” 라거나 “사건이 똘똘 잘 말려 있어 돌파하기 힘들텐데”라고 말해. 안 되는 사건을 억지로 엮었으니 김밥 옆구리 터지지 않게 조심해야 하겠지.

위 사건에서 피의자인 한 검사는 굉장히 성실하고 평이 좋았던 사람이라 동료검사들이 수사관의 범죄를 무리하게 뒤집어 씌운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보다 못한 다른 검사가 검찰총장에게 면담을 요구하는 항의메일을 보내고, 수사팀에 파견된 검사는 지시에 저항하여 다시 원 검찰청으로 복귀되기도 하지만 기소를 막지를 못했다고 해.

이런 지경인데, 검찰이 합심해서 똘똘 만 정경심 교수는 어쩔 도리가 있었겠어.

검찰 수사관이 검찰 게시판 이프로스에 이런 글을 올려.

우리가 근무하는 검찰청으로 수사와 기소, 형집행을 담당하는 기관이지 절대로 정의를 세우는 기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이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정의를 세운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수사기관이 무슨 정의를 세우는 기관인가요. 그리고 사람은 누구도 완전무결한 정의를 세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런 솔직하고 정직한 분이 너무 좋아.

20년 이상을 근무하면서 못 볼 꼴 많이 보았겠지. 그래서 “우리는 정의를 세우는 기관이 아닙니다. 정의를 요구하지 마세요”로 도피해 버렸어. 정의를 세운다는 과잉된 허위의식보다는 이 편이 훨씬 나아.

페친들, 마음이 지하로 마구 마구 떨어지는 느낌일 때 뭘 생각해?

나는 과거에 옳은 말 한 마디, 옳은 행동 하나를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그 길을 갔던 사람들을 생각해.

그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어둡긴 하지만 달도 있고 영롱한 촛불 하나하나가 점점이 박힌 듯한 은하수도 있지.

그리고 나는 민주주의는 자전거와 같다고 생각해, 우리가 페달을 굴리지 않으면 쓰러져. 춘장이 제일 쿨하다고 여기는 그 대왕쥐 시절에 우리가 눈뜨고 민주주의를 도둑맞은 적이 있잖아. 페달을 계속 굴려가야만 아름다운 꽃밭도, 너른 바다도 만날 수 있어.

그래서 나는 이렇게 페친들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거야. 계속 서로의 빛이 되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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